brunch
매거진 작심일일

버킷리스트의 확장과 부담

호기심 천국

by 현진형

하고 싶은 게 많다. 새로운 일, 새로운 것, 새로운 길에 대한 호기심이 많다. 그러다 보니 늘 하고 싶은 게 쌓여있다. 요즘처럼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것들이 나오는 세상에선 궁금한 게 매일매일 생겨난다. 해보고 싶은 건 많은데 할 수 있는 건 몇 개 없으니 그런 것들은 버킷리스트라는 이름으로 차곡차곡 쌓여간다. 고르고 골라 선별했다고 해도 양이 제법 많다. 버킷리스트는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이라는데 이 많은 것을 다 해내려면 난 오래오래 살아야만 한다.


밴드를 하면서 메인 포지션은 기타였지만 늘 다른 파트를 궁금해했다. 결국 베이스도 독학으로 배워서 공연도 한 번 했다. 휴직 때 피아노도 배웠다. 드럼도 배우고 싶은데 실천은 못했다. 이렇듯 뭘 하나 하게 되면 가지가 뻗어 나가듯 호기심이 자라난다. 모든 것들을 다 해 볼 순 없지만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싶다.


읽고 싶은 책도 쌓여만 가고, 테스트해보고 싶은 기기들도 점점 늘어나고, 가보고 싶은 장소도 줄어들지 않는다. 맞벌이의 삶에 얽매여 있다 보니 상황이 허락하지 않는 것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나의 호기심이 아직 너무 왕성하다. 호기심이 많은 건 좋다. 늘 반짝거리는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으니까. 하지만 하고 싶은 것들이 해야 할 일처럼 변질되면 그때부턴 약간의 스트레스가 동반된다.


버킷리스트는 하고 싶은 일이지 해야 하는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꾸 해야 할 것처럼 느껴진다. 나의 문제다. 일을 클리어하지 않으면 뒤가 찝찝한 것처럼 하고 싶은 것들도 하지 않으면 마음에 부유물처럼 남아있다. 버킷리스트가 확장될수록 마음의 부담도 같이 확장된다. 새로운 하고 싶은 일이 나타나면 신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론 지난번에 하고 싶던 일도 아직 못 했는데 하는 생각이 든다. 아직 둘 다 하지도 못한 일이고 진짜 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을 가지고 이렇게 고민하는 건 우스운 일이다. 남들이 보면 그 시간에 뭐라도 하나 하라고 할 것 같다. (그런데도 남들이 보는 플랫폼에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 또한 굉장히 신기하다.)


생각해 보면 이런 부담감이 내 삶의 원동력인 것 같기도 하다. 부담을 느껴야 시작을 할 수 있으니까. 오늘도 하고 싶은 일이 새로 생겼다. 그 일을 하기 전엔 다른 일을 마무리 지어야 할 것 같지만 이것도 버킷리스트에 올렸다. 남들보다 몇 배나 되는 버킷리스트를 가졌지만 하고 싶은 게 없는 것보단 낫다. 부담을 끌어안고 오늘도 버킷리스트에 도전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눈을 감고 열 발자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