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갑자기 롯데월드를 가고 싶단다. 인간은 어리석고 과거의 실수를 반복한다고 했던가. 난 과거의 내가 얼마나 처참하게 쓰러졌는지를 까먹고 망각의 동물답게 흔쾌히 콜 했다. 자, 이제부터는 돈 쓸 일만 남았다. 아이랑 둘이 가는데 제일 좋아하는 후룸라이드를 90분씩 기다리는 건 내 체력으론 절대 무리. 하지만 친절하기도 이런 나를 위한 제도가 있다. 매직패스. 돈으로 시간을 산다. 50% 할인받는 입장권보다 2배는 비싸지만 효과는 엄청나다. 한 번 써보면 돈의 위력을 알 수 있다. 아, 이래서 부자들은 돈으로 시간을 산다고 하는 거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고, 나도 부자가 되고 싶다는 동기부여도 된다. 여러모로 가격을 제외하고는 참 좋은 제도다. (가격이 전부인 제도지만)
아이가 주말 언제 가자고 할지 몰라서 예매는 미리 하지 않았다. 애들 마음이란 언제 바뀔지 모르니까. 일요일 오전에 가기로 결정하고서야 매직패스 생각이 났다. 어차피 오후에 갈 거니까 그럼 여유롭게 사볼까 하고 앱을 여는 순간 아찔했다. 잔여 0. 응? 5회권이라 그럴 거야. 더 비싼 7회권은 남았겠지. 응? 왜 다 잔여가 0이지. 이거 원래 이렇게 매진되는 거였나. 멘붕이 찾아온 멘탈을 붙들고 검색해 보니 일 한정수량으로 판매되고 그마저도 이틀 전에 오픈해서 주말은 순식간에 매진된다고 한다. 아, 망했다.
- 당근에 있을 거 같은데?
와이프가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급하게 확인해 보니 역시나 있었다. 있긴 한데 당연한 얘기겠지만 프리미엄이 더 붙어있었다. 봄이 찾아와서 그런지 판매하시는 분도 따뜻한 마음으로 2월보다 프리미엄을 더 붙여두셨더라. (도대체 어디가?) 정가보다 50% 정도가 더 비싼 티켓값 앞에 망설여졌다. 기차표처럼 무한 리프레쉬 하다 보면 나오지 않을까? 1시간 해보다가 포기했다. 근데 신기하게도 눈앞에 티켓이 보이자 빨리 내가 안 사면 다른 누군가에 뺏길 것만 같았다. 매직패스 없이 롯데월드에 가 있는 나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 틈을 타 내 손가락은 채팅하기를 눌렀고 홀린 듯 2장이요!를 외치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티켓은 아무 이상 없었고 우리는 만족스럽게 매직패스를 소모하고 왔다. 하지만 당근에서 매직패스를 사는 동안 이런 생각이 계속 들었다. 웃돈에 웃돈을 얹고 있네. 프리미엄에 또 프리미엄이 붙었어. 시간이란 그렇게 가격이 뛰고 또 뛰는 건가. 어제 내가 지불한 시간당 금액만 놓고 보지면 내가 어릴 때의 시간보다 지금의 시간이 몇 십배는 비싸다. 그때의 한 시간과 지금의 한 시간은 그렇게 다른 가치를 가지고 있는 걸까.
그 때나 지금이나 시간의 속성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1분은 60초로 이루어져 있고, 1분이 60번 지나가면 1시간이 된다. 하지만 예전엔 돈으로 시간을 사는 걸 왜 터부시 했을까? 잘난척하는 거 같아서? 불평등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거니까? 우리는 다 같이 잘 살아야 하니까?(근데 그건 자유시장경제가 아니잖아. 다 같이 잘 살자는 건 다 같이 잘 살거나 못 살거나 공동체로 살자는 거니까.) 어쨌든 시간이 지나며 그런 개념들은 조금씩 희미해졌고 이제 어느 누구도 매직패스와 같은 시스템을 활용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에 웃돈을 한 번 더 얹는 행위는 조금 다르다. 애초에 사용하려고 구매한 티켓이 아닐뿐더러 당연히 재판매가 금지되어 있다. 판매자도 나름 매크로를 열심히 돌려서 티켓을 구했으니 그 노동에 대한 대가 정도는 프리미엄을 붙일 수 있지 않나라고 할 수 있지만, 아시다시피 암표는 불법이다. 누군가의 기회를 박탈하고 그의 간절함을 볼모로 가격을 협상하여 올려 받는 범법 행위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니 '저는 처음부터 맘 편히 당근에서 구매해요'라는 글도 종종 보인다. 그럴 수 있다. 인간은 편하게 살기 위해 지금까지 진화해 왔으니까. 하지만 내가 지금 지불하고 있는 돈이 정당한 행위에 전달되고 있는지는 생각해 보아야 한다. 정상적인 구매자(그들은 롯데월드와 계약을 맺은 것도 아니니 리셀러로서의 자격이 없다.)와 정상적인 판매자 사이에서만 거래가 이루어졌다면 내가 추가로 웃돈을 한 번 더 내야 할 필요가 있었을까. 물론 현실세계에서 이상적인 상황을 항상 요구할 순 없다. 보이지 않는 손도 완벽히 동작하지 않고 또한 인간은 합리적이지 않으니까.
길고 길었지만 이건 웃돈에 웃돈을 주고 사야 했던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게을러서 구매를 빨리 못 한 덕에 정상가보다 돈을 더 지불해야 했던 한 인간의 스토리다. 인간은 합리적이지 않기 때문에 이런 상황은 쉽게 개선되지 않을 것이고, 또한 인간은 어리석고 잘못을 반복하기 때문에 다음 롯데월드 방문 때도 아마 난 당근을 찾게 될 거다.
그렇지만 하나만 생각해 보자. 시간의 가치. 우리는 시간에 정말 제대로 가치를 지불하고 있는지. 그 가치에 합당하게 시간을 소비하고 있는지. 당신은 지금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