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그리고 나를 사랑하게 된 이야기
가십걸(Gossip Girl)에서 내 최애 캐릭터는 Blair Waldorf이다.
한동안, 그리고 여전히 나의 추구미인 Blair는 뉴욕에 대해서 이런 말을 한다.
I love New York, you're never alone but you're always on your own.
뉴욕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은 정말 많지만, 이 한 문장이 가장 정확하다.
'혼자는 아니지만, 늘 혼자다.'
벌써 뉴욕에서 사계절을 한 바퀴 보냈다.
그 사이 나는 많이 변했다. 아주 긍정적인 방향으로.
처음 이사를 왔을 때를 기억해 보면
인지하지는 못했지만 혼자라는 걸 강하게 직감했다.
불안했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겉으로는 자신감 넘쳐 보이려 애쓰면서
사실은 불안 속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높은 건물에서 안전장치 없이 떨어지는 것 같은
막연한 위기감도 들었고,
회사에서 처음 만난 또래들 사이에서는
어떻게든 소속감을 느껴야만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문제는, 그들의 삶의 방식이 나의 본질과는 너무 멀리 있었단 거다.
그런데도 마치 그게 내가 추구해야 할 인생인 양,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다.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그야말로 영혼 없는 몸뚱이로 살아가고 있었다.
살은 어느새 많이 쪄서 외모에 대한 자신감은 바닥을 쳤고, 가족과의 관계도 엉망이 되어있었다.
2024년 9월 3일(날짜도 정확히 기억이 난다),
더는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갑작스레 헬스장에 등록하고 운동을 시작했다.
그날부터, 나를 사랑하는 삶이 시작되었다.
새벽이 오기 전이 가장 어둡다고들 하는데,
내가 완전히 무너졌던 그 방황의 시간이
내게 가장 어두웠던 시간이 아닌가 싶다.
고독의 시간과 정면으로 마주했다.
오롯이 나를 위해 일 년을 살아보기로 결심했다.
내가 바로 설 수 있도록.
가장 많이 변한 건 식습관이다.
방황하던 시절의 나는 술도 좋아하고
자극적인 음식도 생각 없이 즐겼다.
하지만 지금은 가공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질 좋은 음식을 먹이며 그 속에서 큰 즐거움을 느낀다.
좋은 걸 먹으니, 생각도 조금씩 맑아졌다.
예전엔 그냥 달걀을 샀지만
이젠 3배나 비싼 목초 유기농 달걀을
아무 고민 없이 집어든다.
'나를 위해서'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내가 나를 보살피고 있다는 느낌이 얼마나 기쁘던지.
나를 이렇게 돌볼 수 있게 월급을 충분히 주는 회사에게 고마웠고, 내 건강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지원도 아끼지 않는 부모님께도 깊은 감사를 느꼈다.
겉으로 보기엔 그저 식습관만 변한 것 같지만,
You are what you eat.
'내가 무엇을 먹는지가 곧 나다'라는 말의
진짜 의미를 뼈저리게 이해하게 된 과정이었다.
무엇을 먹을 것인지는
결국 나를 얼마나 아끼는가와 맞닿아있다.
그리고 이렇게 식습관을 서서히 바꾸고,
내가 나를 위해 직접 요리를 하며
최고로 좋은 것을 먹일 수 있도록 애쓰는 과정은,
내가 나 자신에게
‘너는 소중해’라고 알려주는
가장 중요한 시간임을 알게 되었다.
또 달라진 점이 있다면,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나는 비 오는 날을 정말 싫어한다.
날씨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비를 좋아해 보려고도 애써봤지만, 여전히 싫다.
옷과 신발이 젖지 않도록 더 신경을 써야 하고
우산은 바람에 자꾸 뒤집히고,
짐 많은 날엔 우산까지 들고 다니느라 에너지를 너무 많이 소진한다.
예전 같았으면 절대로 하지 못했을 생각이지만
요즘 나는 비가 오면 무조건 택시를 탄다.
뉴욕 택시비는 정말 비싸지만 택시를 탐으로써 하루가 덜 고단다 하면 충분히 가치 있는 소비다.
삶의 질이 너무 좋아져서 놀랐다.
이제는 비 오는 날 = 택시 타는 날이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비가 반가울 때도 있다.
얼마나 웃긴 변화인가.
나는 인생 25년 차에 비로소 나와의 대화를 시작하게 되었다. 내가 뭘 싫어하는지, 뭘 원하는지, 무시하지 않고 들어주는 법을 배웠다.
보이지 않던 내가, 이제는 제법 또렷하게 보인다.
절대 혼자이진 않은데, 늘 혼자였던 이상한 고립감 속에서
나는 나를 똑바로 마주하게 되었다.
사계절을 지나면서 사소해 보이는 선택들을 달리 하기 시작했고,
나를 챙기는 연습을 하게 되었다.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내가 나한테 어떤 사람이고 싶은지,
그걸 날마다 묻고, 들어주고, 반영하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나와의 대화를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예전엔 보이지 않던 내가 선명하게 보였다.
처음으로,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 시작은 뉴욕이 건네준 고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