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하루들

혼자서, 꾸준히, 조용히, 확실하게

by KAY 케이

초등학교 때 나는 정말 잘난 척이 심했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똑똑하고, 잘하는 것들은 꼭 어필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내가 나를 그렇게 표현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것만 같았다.


나의 그런 태도는 자연스럽게 친구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던 것 같다.

결국 반에서 주도적인 친구들이 나를 살짝 미운 눈으로 보기 시작했고,

그 분위기에 따라 나를 멀리하는 아이들도 하나둘 있었다.

그땐 참 억울하고 서운했지만, 이제 와 돌이켜보면

친구들이 그럴 만한 이유가 분명히 있었던 것 같다.


그땐 몰랐다.

누군가의 인정을 바라는 마음이 오히려 나를 더 외롭게 만들었다는 걸.

지금 생각해도 참 멋없던 어린 시절이었다.


1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많이 달라졌다.

목표가 생기면 혼자 조용히 숨어서,

원하는 것을 이룰 때까지 꾸준히 묵묵히 걸어갈 힘이 생겼다.


지난 6개월은 그런 꾸준함의 기반이 될 여러 습관을 쌓아 올린

너무나도 귀한 시간이었다.


나는 천재는 아니지만, 성실함 하나만큼은 자신 있다.

누군가는 ‘무식하게 열심히 한다’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경험과 노하우가 많지 않은 나는 본능적으로 복리의 힘을 믿었다.


매일매일 꾸준히 하는 일이 가장 어렵지만,

오랜 기간 쌓이면 가장 강력한 힘이 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건, 매일 해낼 수 있는 적절한 양과 강도를 찾아

지속 가능한 습관을 만드는 일이다.


1. 하루의 문을 여는 조용한 의식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어서 내 소파는 항상 이렇게 책으로 된 탑이 있다.

나는 매일 아침 다섯 시 반에 일어난다.

일어나자마자 물을 끓인다. 뜨거운 물과 찬물을 반씩 섞어 음양탕 한 컵을 들이켜며 유산균 하나를 삼킨다. 물이 끓는 동안엔 요가 매트 위에 선다. 온몸을 사정없이 늘이며 자는 동안 굳어 있던 근육을 깨운다.


여섯 시 반까지는 무조건 책을 읽는다.

아침엔 소설을 잘 읽지 않는다. 감정이 흔들리는 이야기를 마주하면 하루의 시작이 무거워지기 때문이다. 대신, 명언이 가득한 『Tribe of Mentors』나 『Tools of Titans』, 혹은 성공한 이들의 자서전, 금융 관련 도서를 펼친다. 그날을 이겨낼 좋은 지혜를 찾고, 마음을 긍정적으로 세팅하려는 의식 같은 시간이다.


아침에 책을 읽느냐 읽지 않느냐는 생각보다 차이가 크다. 너무 피곤한 날엔 잠을 조금 더 자고 서둘러 출근을 할 때도 있는데, 그런 날은 왠지 내 안에 중심이 잡히지 않은 듯한 불안함이 따라붙는다. 아침 독서 시간은 내가 자신 있게 하루를 시작하기 위한, 작은 의식이자 필수조건이 되었다.


물론 매번 순조로운 것만은 아니다.

너무 졸려서 같은 문장을 몇 번씩 읽고도 이해를 못 할 때도 있고, 고심 끝에 고른 책이 생각보다 별로여서 아침 시간을 허비한 것 같아 속상할 때도 있다. 하지만 하루에 20~30페이지씩 읽은 날들이 쌓여, 어느덧 6개월 만에 20권 가까운 책을 읽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은, 조용히 나를 바꿨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다.

나는 알람을 5분 간격으로 세 개 맞춰놓고 잔다.

늘 세 번째 알람이 울릴 때까지 침대에서 실랑이를 벌이지만, 그 알람엔 반드시 일어난다. 더는 울릴 알람이 없다는 걸 알기에, 자칫하면 회사에 늦는다는 긴장감이 나를 깨운다.


특히 겨울 아침은 고역이다. 춥고 깜깜해서 더더욱 일어나기 싫다.

그래도 겨우겨우 눈을 떠 창밖을 내다보면, 불이 켜진 집이 몇 되지 않는다.

그럴 때면 괜히 뿌듯해진다.

남들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 내 성장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멋지게 느끼게 한다.

불이 켜진 몇몇 창문들을 보면 왠지 모르게 내적 동질감도 느껴진다.


2. 운동은 나와의 약속

집으로 휴가를 갔을 때도 운동을 꼭 챙겼던 나

나는 주 5회 운동을 간다. 아파서 침대 신세이거나, 탈진할 정도로 회사 일이 힘들었거나 천둥번개가 치고 비가 너무 많이 오는 날들 빼고는 보통은 퇴근하고 나서 간단히 뭔갈 챙겨 먹고 유산소 운동을 30-40분 정도 해주는 편이다. 주말에는 필라테스 개인레슨도 받고, 요가 수업도 종종 간다.


솔직히 말해, 운동을 가고 싶은 날보다 가기 싫은 날이 압도적으로 훨씬 많다. 그래서 나는 ‘운동’이 양치나 세수처럼 별생각 없이 당연하게 이뤄지길 바라며, 퇴근 후에는 운동을 가든 안 가든 일단 운동복으로 갈아입는다. 운동복을 예쁘게 갖춰 입으면, 그 옷을 입은 내 모습이 마음에 들어서라도 몸을 움직이고 싶어질까 봐.


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스포츠는 정말 즐기지만, 혼자 하는 유산소 운동은 크게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편이다. 그래도 월가에서 일하는 나에게 체력과 지구력은 필수다. 몸을 움직이며 해소되는 스트레스의 양도 무시할 수 없고, 식사 후 소화에도 도움이 되니 웬만하면 빠지지 않으려 한다. (솔직히 헬스장 회원비도 만만치 않아서 돈값하려면 자주 가야 하기도 하고.)


운동은 나와의 약속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평생 젊지 않을 것이고, 언젠가 하고 싶은 건 많은데 체력이 따라주지 않아 놓쳐야만 하는 날이 올 수도 있다.

그건 내게 너무 미안한 일이 될 거다.

그리고 체력은 하루 이틀로 길러지는 게 아니다.

조금씩, 천천히, 꾸준히 — 그렇게 강도를 높이며 만들어가는 것이다.

6개월 정도면 습관이 되었을 법도 한데, 여전히 운동하러 나가는 건 스스로와의 싸움이다.

매일 같은 이 싸움 속에서 지는 날도 물론 있었지만, 아니, 꽤 많았지만, 다행이도 이긴 날이 더 많았다.


3. "나는 매일 도시락 싸다녀요"

된장찌개 끓이려 손질해 둔 야채들

나는 거의 매일 회사에 도시락을 싸 간다.

최근엔 엄마가 미국에 오셔서 도시락 반찬들을 많이 준비해 주셔서 훨씬 수월해졌지만,

엄마가 오시기 전까지는 매주 일요일 저녁마다 밀프렙을 했다.


야채를 썰어 통에 넣고, 샐러드를 미리 구성해서 만들어두고, 매주 닭가슴살, 새우, 소고기 중 하나를 골라 단백질을 요리해 뒀다. 아침 식사는 꼭 한식을 먹고 싶어서, 된장찌개나 미역국, 호박죽 같은 걸 하나쯤은 꼭 끓여두었다.


회사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밖에서 밥을 사 오거나, 구내식당에서 간단히 해결한다.

그런데 나는 도시락을 싸 다니는 게 훨씬 마음이 편하다. 첨가물이 적고, 당분이 높지 않은 자연식 위주로 먹으려 하다 보니, 외부 음식은 어떤 재료가 들어갔는지 알 수 없고 대부분 달고, 짜고, 자극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즘 밥값이 많이 올라서, 매일 사 먹으면 그것도 꽤 큰 지출이다.)


우리 회사는 자기 자리에서 업무를 하면서 점심을 먹는다. 내가 매일 먹는 샐러드와 내 보온도시락(feat. Bloomberg 키보드)

물론 도시락을 챙기는 일은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간다.

아침 독서를 마치고 나면 샐러드 한 팩을 준비하고,

그날 가져갈 메인 반찬을 전자레인지에 데워 보온 도시락에 담는다. 드립 커피를 내리고, 아몬드 우유를 데워 라테를 만들어 보온병에 넣는다. 수저, 간식, 회사에서 챙겨 먹을 비타민까지 하나하나 빠뜨리지 않고 챙긴다.


나는 손이 빠른 편이 아니라, 메뉴를 고민하는 데 시간을 조금이라도 쓰면 출근 준비가 촉박해진다.

그래서 거의 매일 비슷한 걸 먹는다.

질릴 법도 한데, 나를 위해 준비한 한 끼라 오히려 점심시간이 기다려진다. 내가 나의 안티팬이 될 순 없으니, 질려도 ‘질린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책임감 있게 다 먹어내며 느끼는 뿌듯함에 더 집중하려고 한다.



4. 고요 속에서 들려온 나의 목소리

요즘 나는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있다.

밖에 나가도 관심 있는 이야기는 잘 없고,

대부분 가십이나 시시한 고민들뿐이라 대화가 재미없다.

나는 술도 안 마시는데, 친구들은 술자리에서 더 친해지는 것 같아

서로 편하게 어울리지 못하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처음에는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낯설고, 심심하고, 불안했다.

집에 돌아오면 ‘뭘 해야 하지?’ 하는 막막함이 밀려오고,

누군가와의 대화가 그리워지기도 했다.(사실 지금도 때때로 사람과의 만남이 그리울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런 시간들이 나도 모르게 쌓이면서 점점 달라졌다.

내 몸이 오늘은 어떤 상태인지,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오늘은 좀 무리하지 말자’ 하는 날은 쉬엄쉬엄 하루를 살 수 있는 계획을 세우고

내가 가장 잘 쉴 수 있는 방법도 찾았다.

혼자 산책하면서 멋진 하늘 사진 찍는 건 항상 재미나다.

얼마 전부터 자기 전에 20~30분씩 스트레칭하는 시간을 가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자주 붓는 몸을 순환시켜 주려고 시작했는데, 어느새 그 시간이 하루 중 가장 기다려지는 순간이 되었다.


몸이 개운해지고, 마음도 환기되는 느낌이 들었다.

매일 시간을 가지다 보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트레칭 자세도 생겼고, 유연성도 점점 좋아져서 작지만 성취감도 느끼기 시작했다.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것들, 순간순간 느끼는 작은 행복들을 기억하며 나와의 소중한 추억들이 조금씩 쌓여간다.

아이유가 스물다섯에 부른 ‘팔레트’ 가사처럼,

스물다섯 인 나도 '이제 조금 알 것 같아 날'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모든 시간은 정말 조용히 흘러갔다.

가족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에게도 내가 알리지 않았기에,

내 노력을 알아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 묵묵히 이어가는 일상의 반복일 뿐이었다.


초등학생 때의 나는 이룬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었다.

그래서 그저 인정받고 싶고, 눈에 띄고 싶어서 애썼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외부의 인정에 기대지 않는다.

조용히, 성실히 노력하는 시간을 지나오면서

내가 나로서 많이 온전해 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과정은 남들이 알 수 없는 일이어서

그들의 인정은 사실 크게 신경 쓰지 않게 됐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나만의 속도로 천천히 걸어간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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