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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ung Kim Apr 26. 2016

안경잡이 탈출기

소소한 일상 속에서 굼벵이처럼 느리지만 조금씩 변화하기

지난 20년간 안경인으로 살아와서 나에게 안경은 신체의 일부나 마찬가지다. 아주 불편하지만 필요한 신체의 연장이랄까.

세상의 모든 안경의 입장을 대변할 생각은 없다.

그런데 요즘에 들어서 나는 왜 이 불편함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조금이라도 나아지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됐다. 그렇다고 의학의 힘(라식 또는 라섹)을 빌려볼 생각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안경, 이 녀석의 도움 없이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강한 의지가 갑자기 샘솟는다.

안경라면 누구나 봄, 여름, 가을, 겨울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할 것 없이 눈뜨면 안경이 필요하다. 그 녀석 없이는 눈 뜬 장님이나 마찬가지니까. 그러다보니 정확한 시력을 요구하는 상황이 아님에도, 충분히 일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우리는 안경을 장착했을 때 비로소 안심한다. 일종의 습관화된 안정감이다.  어떤이들에게는 그저 패션 아이템일 수도 있지만, 안경 없이 집을 나서 본 적 없는 나는 안경에 의존하는 안경에 특화된 사람이다.

출처http://cfile25.uf.tistory.com/image/1602BA514E279A23090CFD


얼마 전부터 등산을 시작했다. 등산은 잡생각을 없애주고 찌뿌둥한 몸과 마음을 개운하게 해준다. 문제는산 정산에 오르기까지 안경을 수없이 벗고 쓰고를 반복한다는 것이다. 얼굴이 선블록과 땀으로 범벅되었다. 그러다보니 가뜩이나 낮은 콧대 위에 간신히 버티고 있던 안경 녀석이 자꾸 흘러내린다. 게다가 겨울도 아닌데 몸에서 난 열기로 자꾸 안경렌즈가 뿌옇게 된다. 즐거운 등산이 순간 짜증으로 변하며 안경을 벗어버린다.

출저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3/0423/IE001571622_STD.jpg

얼마가지않아 시야 확보를 위해 본능적으로 양미간을 찌푸린다. 곧 두통이 찾아왔다. 시신경 전달에 오류가 생기자 귀도 먹먹한 듯하다. 산 정상에서 나는 잠깐, 아주 잠깐 어지럽기도 하고, 뿌연 시야 때문에 갑갑하고 심장이 빨리 뛰면서 심지어 호흡이 가쁘다고 느꼈다. 시력에 안 맞는 렌즈를 착용했을 때처럼 바닥이 실제보다 굴곡져 보였다. 그렇게 한 십여분을 허우적거리며 걷는다. 산을 내려올때는 온 몸이 더 긴장을 한다.

그렇게 집에까지 무사히 귀가했다. 처음으로 '의도적으로' 안경 없이 무언가를 했다.


그 이후 의식저인 행동에 조금씩 변화를 주었다.

운전할 때, tv 시청할 때를 제외하고 거의 안경을 쓰지 않는다. 안경 없는 밋밋한 내 얼굴이 어색하지만(우리 안경인들에게 안경은 메이크업과 같은 효과를 주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이제 진심 내가 된 것 같고 분위기 전화도 된 듯하다. 무엇보다 몸에 좋은 음식, 특히 눈에 좋다는 음식들을 의식적으로 찾게 됐다.

출저http://cfile25.uf.tistory.com/image/2233DD4453DBDFB22E217F



처음보다 미간을 찌푸리는 일도 줄었다. 잘 안 보이면 좀 더 가까이 가서 보는 수고를 하면 되었다. 멀리 보고 자연스럽게 보면 된다.

어제는 길을 가는데 10 m 전방에 있는 간판의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한 번에 딱! 은 아니지만 마치 카메라 렌즈가 초점을 맞출 때 앞뒤 좌우로 몇 번 움직이듯  몇 번의 조정 과정을 거친 후에 글씨가  정확히 보였다.


안경 착용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불편함을 개선하기 위해 계속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이제 깨닫게 됐다. 삶 속에서 약간의 노력들이 모이면 당연한 불편들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란 자그만 소신이 부디 탈 나지 않기를 바란다. 다시 말해 자연스럽게 안경 없이도 볼 수 있어서 세상 안경인들에게도 희속식이 되길.


이제 시작에  불과하지만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매일매일 노력하는 내가 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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