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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ung Kim Dec 16. 2022

가지않(았던)은 길

후회하지 않는다면 거짓말

코로나19 사태가 3년째 지속되고 확진자 수도 여전하지만 방역은 눈에 띄게 완화되었고 우리 삶도 이전으로 돌아가려는 모습들을 종종 볼 수 있다. 하루 종일 집에만 있는 나는 체감하기 어렵지만 인친들의 SNS가 업데이트되는 것을 보면서 아, 그렇구나 실감하게 된다. 가까운 제주도 하늘길이 열리고, 일본, 동남아, 먼 유럽까지 입출국이 까다롭던 해외여행의 문턱이 다시 낮아졌다. 눈이 펑펑 내리는 영하의 추위 속에서 초록으로 물든 지구 반대편의 광경을 만끽하는 여행자들의 사진을 보면서 부러운 마음 반, 아쉬운 마음 반에 약간의 기대 한 스푼.

'나도 언젠가 비행기 타고 여행 갈 날이 오겠지?'

그러다 문득, 나는 새파랗게 젊던 (지금도 젊지만) 그 싱그럽고 자유의 몸이었던 그때, 왜 마음껏 여행을 하지 못했을까? 왜 학교-집-교회 밖에 모르고 경주마처럼 살았을까. 선택하지 못한 답안지라 자꾸 돌아보게 되고 그래서 가끔 서글프지만 그래도 그때 열심히 살았고 잘 살아왔다고 마음을 토닥여본다.


3년 전쯤, 재택근무하며 계약직으로 회사를 다녔을 때, 재계약을 앞두고 대표님과 상담할 일이 있었다. 대표님은 윤제가 아픈 것도 아셨고, 전적으로 내가 아이를 케어해야 한다는 것도 아셔서 업무에 대한 부담감도 주지 않으셨고 남편 일정도 많이 배려해주셨다. 대표님도 장애를 가진 남동생분이 있으시다며 장애인 가족의 고충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칠십이 넘는 자신의 노모가 여전히 오십이 다 된 아들 뒷바라지하고 대표님이 치료비며 경제적인 부담을 다하고 계신다 했다. 대표님은 칠십 평생 여행은 다녀본 적 없는 노모가 참 안쓰럽다며 나에게 절대 본인의 커리어를 놓지 말라고  조심스럽게 아이를 전문기관에 맡기거나 전문 돌봄 간호사나 재활치료사를 고용하는 게 어떠냐고 하셨다. 비용이 만만치 않을 테니 풀타임 워커로 일하면 연봉도 많이 받을 수 있고, 그러면 기관에 맡기든 사람을 쓰든 경제적 어려움은 없을 거라고 다정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너무 혹할 만큼 좋은 제안이었지만 예의상 대표님께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감히 그 선택을 할 수 없었다. 장애아이를 돌보는 일은 힘들고 지치고, 또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마라톤을 뛰는 일과 같다. 언제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고 원망과 불만으로 내 삶을 갉아먹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연 내가 살자고, 내 삶을 살자고(대표님의 칠십 먹은 노모가 훗날 내 모습일지라도) 아이로부터 도망치는 게 맞는 일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두려웠다. 아픈 아이를 누군가에 에 맡기고, 혹시라도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그 죄책감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내가 생각만 하고 고민하고 있는 사이에 회사에서는 퇴직 통보서를 보냈다. 내가 할 수 없는 선택이라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나는 여전히 두 아이를 돌보고 있고, 장애가 있는 아이와 매일 힘 싸움, 눈치 싸움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연말이 되어가니 직장인들은 송년회를 한다. 나는 내 아이들과 한 해 연말 결산을 해본다. 큰아이는 작은 일로 조용히 속 썩이는 타입이지만, 건강하게 착하게 잘 자라주었고, 막내는 유치원은 못 갔지만 윤제 병원 외래와 재활치료를 잘 따라다녀주었고 정서적으로 나에게 많은 위로를 해줄 정도로 잘 커주었다. 윤제는 특수 유치원에 입학한 뒤로, 수업 활동에 관심을 보이기도 하고 가끔은 참을성을 가지고 열중하기도 한다. 로봇 재활을 시작하고 5살이 채워져 가는 지금, 손을 잡아주면 한 두 걸음 걸을 수도 있다.

지난 한 해 나는, 아이들을 키우고 내가 살기 위해 애를 썼다. 부정적 감정에 함몰되지 않으려 하루하루 해야 할 일들을 메모하고 그것들을 해내려고 노력했다. 아이들에게 양질의 음식을 먹이고, 나 역시 잘 먹고 몸과 마음이 건강하려고 노력했다. 집을 쓸고 닦고 가꾸고, 가끔 주변도 돌보며 여전히 내가 쓸모 있는 사람임을 인정받기위해 노력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하지 못한, '가지 않은 길'을 자꾸 돌아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런데도 가끔, 심장이 쿵 내려앉는 느낌과 함께 내가 한없이 작아지고 못난 기분이 들 때면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 '가지 않은 길'을 자꾸 돌아본다. 후회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그럴수록 더 깊은 자기 연민에 빠지다가 자책하다가,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고나면 있던 기운도 다 빠져버린다. 그래서 후회의 감정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때 그 선택을 했다면, 직장인으로서 성과도 직업으로써 성취감도, 커리어에 대한 자부심도 느낄거야. 내가 나로, 내 일로써 인정 받으면 얼마나 기분이 좋겠어. 그렇지만 그런 날보다 스트레스 받는 날, 당장 해결해야 할 업무량에 숨도 쉴 수 없이 바쁜 날이 더 많을거야. 그렇지만 지금처럼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는 가정주부, 애엄마로서 삶보다는 나을거야. '


한 해가 저물어가고 폭설과 강추위로 몸도 마음도 움츠러드는 오늘 같은 날은 꿈보다 해몽이어도 좋으니 가지 않아서 더 커 보이는 그 길을, 그 선택을 하지 않은 것이 후회된다고 나 스스로에게 솔직하게 말해본다. 딱 거기까지만.

그리고 다시 마음을 정리해본다. 여전히 아이들을 사랑하고, 아이들이 소중하고, 이 행복을 지켜내고 싶다고.

내일을 잘 살아내려고 이렇게라도 감정적 일탈을 해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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