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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ung Kim Jan 15. 2023

뿌리가 흔들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을 함께 살자

2022년의 마지막과 2023년의 시작에 온 가족이 감기로 대동단결했다. 큰 아이는 독감, 다행히 나머지는 경미한 증상이었는데 문제는 역시 우리 둘째. 노란 가래가 나오면서 기관지에서 낡은 금속 기계 긁는 소리가 난다. 청진기가 없어도 들릴 정도이고, 숨 쉬는 것도 힘들어한다. 부리나케 미리 처방받은 약(뮤코미스트, 벤톨린, 폴미칸을 번갈아가며 사용)으로 호흡기 치료를 하고 등 마사지를 해준다. 아이는 데굴데굴 구르며 필사적으로 막아보지만, 기관지 염증을 치료하고 기관지나 폐포에 달라붙은 가래를 최대한 빨리 배출시키려면 등을 두들겨줘야 한다. 안쓰러워도 사명감을 가지고 아이와 씨름을 한다. 꼬박 하루 열이 오르락내리락하고, 기침과 가래가 폭발하는 격정의 시간이 지나고 나니 아이는 한결 편해져서 고른 숨소리로 잠이 든다. 이렇게 한 차례 폭풍이 지나고 나면 일회용 석션 카테터, 일회용 멸균식염수, 일회용 멸균 장갑, 소피트벤트 등등 아이의 생명과 평균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되는 의료소모품들의 잔해가 한 무더기가 된다. 평소에는 정해진 만큼 사용되는 것들이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한 달치를 하루 만에 사용하게 된다. 길게 설명했지만, 돈이 어마하게 든다는 뜻이다. 지난번 코로나에 걸렸을 때도 폐렴에 걸렸을 때도 이번 감기에도 , 병원에 가기 전까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최대한 빨리, 가래를 빼주고 호흡을 편하게 해주는 것. 그러기 위해서 의료소모품을 아낌없이 사용해야 한다. 응급실을 가는 것보다   여러 가지 면에서 훨씬 낫다.

다행이었던 것은 지난 1년 간 서울대어린이 병원으로부터 후원을 받아 의료소모품을 지원받았다는 것이고(후원기간이 끝나가는데 재후원이 불가능해짐), 지난 5 년간 산정특례법으로 윤제의 병원 치료비가 감면받았다는 것이다. 말도 안 되게 후덜덜한 치료비며 유지비용에 대한 큰 걱정 없이 지난 5년을 살아왔다는 것에 새삼 감사함을 느낀다.

윤제가 다니는 대학병원에 가면 참 아픈 아이들이 많다. 작은 유모차에 그보다 작은 아이가 산소발생기, 산소포화도모니터, 석션기등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불과  몇 년 전 윤제 모습). 10대 청소년일 것으로 추정되는 아이들이 휠체어형 유모차에 반 누워있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혹시 몇 년 후 윤제 모습일까 봐 걱정). 병원에서 뭐 웃을 일이 있겠냐마는, 웃음기 없이 그 아이들 곁을 지키는 보호자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나는 나도 모르게 저들의 표정을 살핀다. 괜스레 눈물이 핑 돈다. 어떤 마음으로 저만큼 키웠을까, 얼마나 마음이 고단할까. 저만큼 자라느라 애쓴 아이도 안쓰럽고, 아픈 아이를 돌보는 것이 얼마나 잔인하게 힘든 육체적, 정신적 고통인지 잘 알기에 그 부모가 안쓰럽다. 또 저 휠체어는 얼마나 비쌀까, 산전특례가 끝났을 텐데 병원비는 어떻게 감당할까..  쓸데없이 남의 현실적인 고민을 하다 보면 그게 곧 나의 고민이 될 것 같아 마음만 더 무거울 때도 있다. 이제 진짜 시작인 것만 같아서 두렵기도 하다. 아기 때는 그나마 숨길 수 있던 아이의 장애는 어느 정도 크면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명품을 하는 사람이 상대의 명품을 보고 한눈에 견적을 내듯, 장애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언뜻 보고도 다른 아이의 아픔을 알아본다. 아이가 타고 있는 유모차(유모차형 휠체어인지 자세교정용 유모차인지)를 보고, 그 안에 담겨있는 가방(의료소모품용 가방)을 보고 가늠한다. 아이가 제대로 숨 쉬고 먹고 그냥 하루를 사는데 가끔은 가혹하리만큼 너무 큰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생각이 마음을 짓누른다. 그렇게라도 사는 게 맞는 건가 싶다가 그렇게라도 살아줘서 감사하다 했다가.

기적을 바란다면, 아이의 희귀 질환의 완치지만, 기적이 우리를 목적지로 향해 오고 있다면 희망을 놓아서는 안된다고 다짐하고 또 한다. 아이가 어제보다 오늘 한 걸음 더 걷고, 힘 없이 흘러내리는 안면근육을 마사지해주며 오늘은 조금이라도 부드럽게 움직여 준다면 기적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고 믿고 매일 반복되는 오늘을 살아야 한다고.


시쳇말로 '집안 기둥을 뽑아라'라는 말이 유행이다. 물가가 고공행진인데도 외식, 가방, 옷 사고, 영화도 다 보면서 온라인 미디어 구독료 결제하면 기둥뿌리 뽑는다고 핀잔주는 말이란다. 돈의 용도별 체감차이라나 뭐라나.

한 아이를 키우는데 한 마을이 필요하다면, 한 장애 아이를 키우는 데는 한 집안의 기둥을 뽑아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우스갯소리지만 뼈아픈 이야기다. 아직 뿌리는 안 뽑혔지만 뿌리가 휘청거릴 정도로 위기가 더 많이 찾아올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오늘을 같이 살아야 한다. 언젠가는 기초비용이 줄고, 세상을 배우고 즐기고 나누는 삶을 살아가는 인생수업 비용이 늘어나기를. 그렇게 내 아이가 어엿한 한 사람으로 우리와 함께 살아갈 희망을 품어본다.


진지하게 뽀로로 컴퓨터 하는 순간 컷. 그럴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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