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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ung Kim May 20. 2023

이미 그러니 어쩔 수 없다.

불행 해지지 않기 위해.

오래 사용하지 않은 물건에 먼지가 소복이 쌓이듯이, 오랫동안 돌보지 않은 나의 마음에도 먼지들이 자리 잡았다. 불안이라는, 불행이라는, 두려움이라는 이름의 마음들은 한 번 자리를 내주면 그 무게에 못 이겨 '쿵' 내려앉을 때까지 정신없이 쌓이기 십상이다.

잊을만하면, 브런치에서 넌지시 알람을 보내온다. 내 마음의 문에 똑똑 노크를 하며, 작가님, 거기 잘 계시냐고 묻는다. 아직은 잘 지낸다 답을 하고 싶지 않아 모른 체 하면 또 조금 지나 '작가님~'하며 어서 오래 먼지 쌓여있는 이야기들을, 서랍장을 돌아보라고 다정하게 재촉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지부동 주인장이 제 글들을 돌보지 않았더니 구독자수가 줄어들어있었다. 더 이상 새 글을 선보이지 않는 게으른(?) 나를 서랍장에서 아웃시킨 소중한 구독자분들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가, 그냥 이참에 브런치를 탈퇴해버릴까 하는 속 좁은 마음이 불쑥 들었다가. 이런 소인배주제에 무슨 의미 있는 글을 쓰겠냐, 고마 다 때려치우자,  마음이 저 밑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처음마음을 생각하게 된다. 누군가를 위한 의미 있는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나를 살기 위해 글을 쓰겠다던 첫 마음. 그래, 그거면 되었지. 한 명이라도 구독자가 있다면 그것으로 감사하고 꾸준히 하면 되지, 스스로를 돌아보고 정신 차리면 되었지.


올해 들어 가장 큰 변화는 쌍둥이들이 유치원 생활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막내 채원이는 첫 원생활이 설레고 즐거우면서도 새로운 환경에서 관계를 이해하고 배우는 데 적잖이 힘들겠지만 아직까지는 유치원이 좋은 듯하여 안심.

윤제는 작년 2학기부터 순회학급을 시작하였지만, 올해부터는 한 달에 한 번, 유치원으로 등원수업을 하게 되었다. 말이 등원수업이지 사실 아직은 1시간 정도, 자유놀이시간이나 특별활동이 있는 날, 선생님께 안겨 다른 친구들과 어울려 있는 연습을 하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청각,  시각, 촉각. 오감이 민감한 윤제가 견디기에는 버거운 시간들이지만, 지금으로서는 차츰 시간을 늘려가며 세상으로 나가는 것에 의미를 두려고 한다. 더불어 윤제의 주중 스케줄이 많아지며 덩달아 나는 주 5일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되었다. 순회학급 수업이 없는 날은, 새로운 장난감이나 교구에 익숙해지기 위해 윤제를 자극에 노출시키는 연습을 해야 하고 그로 인한 윤제의 스트레스가 고스란히 나의 스트레스가 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큰아이와 막내가 하원하고 돌아왔을 때 기쁜 마음으로 맞아주며 사랑해 줄 여력이 없다.


'지겹다, 지친다'를 읊조리며 꾸역꾸역 버텨내는 기분이 들 때가 많았지만, 주말이 돌아오고 세 아이들과 집에서든 밖에서든 함께 몸을 부대끼고 웃으며 시간을 보내다 보면 무거웠던 마음도 하늘에 빠르게 흩어져 흘러가는 구름처럼 사라졌다. 함께 보낸 시간의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는 변명이라도 해가며 그렇게라도 살아내려 노력했다.


윤제가 순회학급 수업을 하면서, 옆에서 보조역할을 하다 보니, 윤제가 생각보다 지시따르기(complience training)가 잘 되고, 호기심도 많다 보니 선생님으로서는 계속 다음단계로 도전해보고 싶은 똑똑한 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그전에도 윤제가 아주 세상 똘똘하다고 입이 침이 마르게 자화자찬하는 고슴도치맘이지만)

무엇보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윤제가 가지고 있는 유전질환으로 인한 발달장애, 연하장애, 기관절개관으로 인한 언어장애, 오랜 병원 생활로 발달지연 등등 늦되고 어려운 부분이 많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되지 않는 윤제의 행동양상들이 있었다. 꿈에도 생각 못했다가, 설마 했다가, 혹시나 의심했다가..  

아이를 키우며 아는 게 힘일 수도 있고, 모르는 게 약일수도 있지만 꼭 알아야만 하는 것은 피해서는 안 되는 것을 이미 너무 많이 경험했다.

그래서 조심스레 입에 올린 말. 윤제가 자페스펙트럼장애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사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인정하고 나니 알 수 없는 윤제의 행동들이 상당 부분 이해되었다. 아, 그래서 그랬구나, 이제 알겠네. 앎에 대해 기뻐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슬퍼하거나 더 아파할 것도 없다. 윤제가 우리 가족으로 이렇게 만났고, 만남의 시간이 깊어져가다 보니 알지 못했던 사실을 뒤늦게 안 것뿐이라고, 너무 늦게 알아서 미안해하지도 말자 했다. 사실 지금으로선 크게 달라지는 것도 없다. 계속 재활치료를 받고, 특수교육을 받으며 또래와 비슷하게 발달하게 도우며 천천히 사회로 흡수되길 바라는 노력을 할 뿐이다.

그간 마음이 여기에 닿기까지 온통 시끄럽고 아프고 복잡했다. 괜찮아지기까지 여간 고통스러웠다. 때로 불행이 왜 원치 않는 초대장처럼 자꾸 날아오는지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러다 결국 원점이다. 나는 이것을 받아들이기로 했고, 그냥 이런 삶도 살아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 다시 이런 삶이라도 써 내려가려고 한다. 깨끗이 다 닦아내지 못하더라도 소복한 먼지를 살살 불어가며 마음을 돌보기로 했다.




"이미 그렇다는 사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라. 그런 태도야말로 모든 불행을 극복하는 첫걸음이다." 윌리엄 제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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