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unjung Kim Oct 22. 2022

엄마라는 따뜻하고 낯선 이름

기쁠 때는 기쁘고 슬플 때는 슬픈 이름

늦은 밤, 어쩌다 잠에서 깨어 나란히 누워 자는 세 아이를 볼 때면 문득 낯선 감정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분명 익숙한 모습인데, 언제 어떻게 갑자기(?) 내가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을까 새삼스럽고 기분이 묘하다. 뿌듯하고 든든한 기분이 아닌, 맞지 않는 꽉 끼는 옷을 입은 불편한 이 감정에 적지 않게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장애 아이와 비장애 아이를 키우는 다둥이 엄마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 아직 나는 내 현실이 비현실이길 바라는지도 모르겠다.

며칠 전, 큰 아이 학교에서 학부모 참여수업이 있었다. 일주일 동안, 총 3번의 참여수업의 기회가 있었는데, 사실 나는 애초에 갈 생각이 없었다. 아니,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게 맞겠다.

알다시피 둘째, 셋째가 가정보육 중이고, 우리 둘째는 장애를 가졌다. 혼자 갈 수도, 데리고 갈 수도 없는 상황인지라 큰아이에게 미리 고지했다. 엄마는 못 간다고.

그런데 참여수업 날짜가 하루 지나고 또 지나서, 마지막 한 번의 수업이 이틀 앞으로 남았는데, 큰아이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엄마나 아빠가 왔으면 좋겠다고.


'엄마가 갔으면 좋겠어? 윤제  유모차에 태우고, 채원이 업고, 너네 교실에 가면 좋겠어?'


나는 큰아이의 마음을 모르는 채 하며 물어보았다.


'그냥, 와서 보면 좋겠다고요. 엄마나..  아니면 아빠나.'


끝을 흐리는 아이의 대답에 마음에 쓰렸다.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내 이틀 뒤 오전에 시간을 내라고 일러두었다. 사실 둘째는 남편 말고는 맡겨본 적도 맡길 수도 없다. 내가 반드시 외출을 해야 한다면, 남편은 반차든 연차를 내야 한다. 이미 둘째의 병원 외래, 재활치료로 남편에게 남은 연차나 휴가는 없지만, 그래도 꼭 필요하면 없는 연차도 끌어 써야 했다. 그게 우리 현실이고 남의 도움 없이 장애아이를 키우고 돌보는 우리만의 방식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 장애아이를 키우는 부모들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누구를 믿고 누구에게 아이를 맡길 수 있단 말인가.)

그리하여 참여수업 마지막 날에 나는 큰아이의 선택(?)을 받아 학교로 갔다. 평소에는 늘 집에서 편한 트레이닝복 차림이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 단정하고 멋지게 차려입었다. 30대 초반부터 수두룩했던 흰머리도 전날 말끔하게 뿌리 염색으로 커버해두었다. 큰아이가 매일 오고 갔을 길을 따라 학교 운동장을 가로질러 삼삼오오 모여있는 학부모들 틈을 지나 큰아이의 교실로 갔다.


'오늘 이 시간만큼은, 주원이의 엄마로 보내야지. 아이를 맘껏 응원하고 칭찬해줘야지.'

괜스레 다짐하게 된다. 창문으로 익숙한 뒤통수가 보여 톡톡했더니 동그란 눈으로 큰아이가 바라본다. 반가워도 절대 티 내지 않는 아이지만, 분명 가려진 마스크 뒤로 안도의 숨을 내쉬고 있었을 것이다.

모둠별로 지난 수학여행에 관련한 탐방보고를 했는데 누구 하나 빠짐없이 참여할 수 있도록 돌아가며 발표를 하는 자뭇 진지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귀 기울였고, 아이들 특유의 짓궂은 모습이 보이면 웃음이 삐죽나왔다. 모든 학부모들이 그렇겠지만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내 눈에 내 새끼만 보이니 자꾸 내 아이만 찾아서 눈 마주치려고 안달 난 사람 같았다. 큰아이도 엄마의 부담스러운(?) 시선을 의식했는지 아니면 엄마가 있어서(?) 그런지 한껏 깨방정을 떨었다. 친구들과 장난치기도 하고 다른 친구 엄마들과 너스레도 떠는 모습이 내 아이가 맞나 싶기도 했다. 그렇게 수업이 끝났고 나 혼자 애틋해하며 큰아이 뒤통수에 대고 ' 이제 엄마 갈게'를 수백 번 외치고도 아쉬워서 몇 번이나 더 뒤돌아봤는지 모르겠다.

오늘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곱씹으며, 큰아이가 다행히도 잘 커주고 있다는 안도감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내가 장애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생각만으로 이미 너무 많은 가능성과 기쁨, 당연한 것들을 스스로 포기하고 있지는 않았나 생각해본다. 여전히 삼 남매의 엄마, 장애아이의 엄마라는 타이틀이 낯설고 무겁지만, 아이들 하나하나가 주는 기대와 기쁨을 만끽하기 위해 매일 조금씩 더 노력해야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오늘도 나란히 앉아있는 세 아이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찬찬히 눈에 담아보다 슬그머니 미소 짓는 나는 세 아이의 엄마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라면 어땠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