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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ung Kim Aug 29. 2023

뭉치면 살고, 흩어져도 살고.

우리는 가족

'ㅇㅇㅇ는 나에게 아픈 손가락이다'

내가 즐겨 구독하는 유튜브 채널 '핑계고'에 어느 배우가 나와 후배 배우를 거론하며 한 말이 마음에 남았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아픈 손가락이란 유독 마음이 가고 관심을 두게 되고 자꾸만 살펴보게 되는 조금은 약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딱히 좋고 나쁨의 뉘앙스를 따질 수 없지만 나는 이 말이 측은지심에서 비롯한 인간의 본성이라 생각된다.

누군가 마음을 깊이 나누는 대상이 아프거나 힘들어하면 지켜보는 이의 마음 또한 저리고 아프다. 당사자만큼 힘들겠냐마는, 그 아픔이 내 것인 것 마냥 자꾸 신경 쓰이고 돌보게 된다. 앞에서 말한 배우는 후배를 두고 아끼는 마음으로, 더 신경 쓰이고 챙긴다는 의미로 이야기했지만, 나는 본래의 의미로 돌아가 '조금은 약한 자식'과 삶을 공유하는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내가 삼 남매 엄마라는, 여전히 놀랍고 자주 버거운 이 현실이 크게 요동칠 때가 종종 있다. 아롱이다롱이라고 셋 다 생김새도 성향도 성격도 완전히 다르다 보니 세 녀석이 동시다발적인 요구를 할 때도 있고, 치고받고 싸울 때도 있다.(나이차이는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잠깐 지나가는 일에 불과하기에 어느 정도 평정심(내면의 평화)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평정심은 내가 모르는 사이,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에는 가이드라인이 없어서 크게 요동치고 만다. 지금은 지나간 일이라 덤덤하게 써 내려갈 수 있지만 그때 당시는 며칠 밤 잠을 못 이루고 울었던 기억이 있다.


아픈 손가락 옆에 마음이 아픈 손가락

학기 초, 둘째 윤제와 막내 채원이는 같은 유치원(다른 반)에 다녔다. 작년에 윤제가 먼저 순회학급으로 (등원수업 없이) 다니기 시작했기에 자연스레 채원이도 같은 원에 입학시켰다. 윤제가 월에 한 번~두 번 정도 등원수업을 했는데 (총 4번) 윤제를 돌보기 바빠 채원이는 늘 눈으로만 인사해야 했다. 채원이 반 친구들이 인형같이 휠체어 유모차에 앉아있는 윤제에게 우르르 다가와 인사할 때, 채원이는 큰 목소리로 '나랑 쌍둥이 윤제야'하며 친구들에게 소개해주기도 했다. 늘 밝고 씩씩한, 과격하지만(?) 사랑스러운 채원이가 유치원에 잘 적응해서 잘 지내고 있구나 안심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밤, 채원이의 잠자기 전 기도를 듣고 심장이 덜컥했다.

'유치원 친구들이 자꾸 윤제를 못생겼다고 해요. 윤제는 마음이 새까맣다고 놀려요. '

이게 무슨 말일까 싶어 물어보니 그림 그리는 시간에 친구들이 윤제를 그린 그림을 새까맣게 칠해버리고 못생겼다고 했다는 것이다. 말문이 턱 막혀 그냥 채원이를 위해 기도해 주고 재웠다. 아이가 하는 말만 듣고 단정할 수 없었지만 가슴이 쿵쾅거려서 나는 한숨도 잘 수 없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는데, 채원이가 비슷한 말을 또 했다. 친구들이 자꾸 윤제를 밉다고 해서 속상하다고 했다. 며칠을 고민했지만 당장에 루션이 생각나지 않아 그저 속상했을 채원이를 달래주었다.

먼저 윤제의 순회학급 선생님께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다. 사실 세상과 연결된 어떤 관계와도 단절되다시피 한 나에게 어른 사람으로, 교육자로, 특수교사로 내가 의지하고 당장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은 선생님뿐이었다.

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듣고 놀라는 낯빛도 없으셨다. 올 것이 왔구나 하는 표정으로 담담히 이야기를 해주셨다. 채원이의 이야기가 어느 정도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채원이는 좋든 싫든 유치원 생활을 하면서 윤제의 영향을 아주 많이 받을 거라고 했다. 온전히 채원이만의 유치원 생활의 즐거움을 누려야 할 텐데 윤제가 꼬리표처럼 따라붙어서 채원이의 유치원 생활에 혼란을 줄 수밖에 없다는 거다. 누구누구의 동생, 누구의 누나, 형이라는 수식어를 한 번쯤이라도 들어본 사람은 이해할 것이다. 내가 온전한 내 이름으로 불리지 않고 ~의 동생, 누나, 형이라 불리는 것이 좋은 기억만은 아니라는 것을.

하물며 유치원 아이들에게 첫인상부터 강렬했던 조금 특별한 아이, 아픈 아이를 형제로 두었으니 그 꼬리표가 얼마나 길고 길까.

선생님은 분리등원을 추천하셨다.(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장애가 있는 아이는 형제자매와 보통 분리등원을 한다고 한다. 나는 이런 기본 상식조차 없었다!!!!) 가장 확실하고 효과 있는 방법이지만 윤제를 받아줄 다른 특수유치원이 없으니 채원이가 유치원을 옮겨야 한다. 갑자기 유치원을 옮기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까, 일단 가까운 곳에 자리가 있기는 할까, 옮긴 곳에서 다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더 알아보지 못했던 지혜롭지 못했던 스스로를 향한 원망도 잠시, 빨리 해결방법을 찾아야지 않나..


전화위복

집 주변 유치원 몇 곳에 전화를 해 봤는데, 마침 큰 아이 주원이가 다니는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에 결원이 생겨 자리가 비었다고 했다. 도보 5분, 최적의 거리에 등하교를 큰 아이와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은 지금보다 굉장히 유리한 조건이었다. 올해 초에는 자리가 없어서 입학신청이 안 됐는데(병설유치원이다 보니 7세 아이들이 초등학교 입학 전 과정으로 입학정원보다 꽤 많은 아이들이 지원했다고 한다. 우리 채원이는 다둥이에, 형제자매가 같은 학교에 다니는 탄탄한 조건에도 탈락했던 곳이다) 이렇게라도 자리가 열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다니던 유치원 담임 선생님과 상담을 하고, 전원 할 유치원 선생님과 상담까지 일사천리로 마쳤다. 채원이에게 그달 마지막까지 다니고 다른 유치원으로 바꾸는 게 어떠냐고 물으니 (큰 오빠가 다니는 학교 유치원이라는 정보를 흘렸다) 단번에 좋다고 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며칠을 설명하고 이해했는지 물었음에도 채원이는 '전학'이 다른 유치원으로 잠깐 놀러 갔다 다시 돌아가는 것으로 단단히 오해하고 있었다. 새 유치원에서 또다시 적응해야 하는 시간을 겪으며 채원이는 이전 유치원 선생님, 친구들이 보고 싶다고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 모습 역시 안쓰러웠지만 이런 일쯤이야 살면서 언제고 겪을 일들 중 하나라며 그건 스스로 잘 이겨내 주길 기다리며 나도 단단히 마음먹었다. 사실 걱정을 아주 안 할 수 없었으니 의지할 것은 큰 아이였다. 다행히 티격태격하긴 하지만 등하굣길에 둘이 나란히 가는 모습을 보며 여러모로 마음이 안심이 되었다. 물론 큰 아이는 적잖이 시끄러운 여동생을 챙기는 일이 귀찮기도 할 것이다. (그래도 동생이 걱정되어 쉬는 시간에 종종 찾아가 보기도 한다고 선생님이 오빠가 참 다정하다고 하셨다) 친구들과 놀다가 동생 데리고 오는 걸 깜박하는 날도 있지만, 동생을 잘 돌봐야 한다는 보호자로서의 의무감이 큰 아이에게 자칫 부담과 상처가 될까 봐 놀고 싶은 날은 미리 연락을 주라고 당부했다. 집에서는 형제자매이고 서로가 서로를 돌보고 돕는 게 당연하지만, 집 밖에서만큼은 그 관계에 너무 얽매이게 하지 말아야지 계속 다짐하게 된다.

'아픈 손가락'이라는 말도 더 조심하게 된다. 어쩔 수 없이 손이 더 갈 수밖에 없지만 편애가 되지 않도록, 아픈 손가락으로 다른 손가락을 또 아프게 하지 않도록 늘 조심해야겠다.


가족은 가정 안에서 뭉치면 더 단단해지고, 가정 밖에서 잘 흩어져야 건강해진다는 것을 이렇게 또 배운다.
큰 아이의 바람으로 무더위에 온 가족이 애버랜드에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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