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가 아파서 가는 곳이 병원인데, 태어나서 지금까지 병원을 쉬지 못하는 우리 아이는 여전히 아프는 중이다. 사실 치료를 받으러 가는 날보다 검사를 받거나 상태를 확인하고 약을 처방받기 위해 가는 날이 많고, 완치되는 항목들보다 새로운 증상과 검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아이와 병원에 가는 날은 늘 긴장이 된다.
외래와 다음 외래 사이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 병원에서 3~4시간 보내야 하는 날, 이제는 익숙해질 때도 되었는데 병원 주차는 늘 어렵고, 진료대기~지연은 늘 당혹스럽다. 진료 중 아이의 특이사항을 의사에게 잊지않고 전달하고, 의사에게 의미 있는 정보를 하나라도 들으려면 정신을 똑바로 챙겨야 한다.(어버버하다가는 쫓겨나듯 나와야 한다) 검사가 있는 날은 주의사항도 많고(컨디션 조절;콧물만 나와도 검사 취소, 금식은 기본) 아이의 협조를 받아내기 위해 최대한 기분을 맞춰주려 애를 써야 하니 아이도 부모도 함께 고생이라 후유증이 하루정도 지속된다.
어떤 외래는 보호자로서 숙제 검사받는듯한자리이기도 하다. 숙제라는 표현이 그렇긴 하지만, '(특이사항이 없으니) 다음 외래 때 뵙겠습니다'라는 의사의 말이 나에게는 '보호자분 더 분발하세요'라는 말로 왜곡되어 들린다.더 나빠지지 않아서 다행이었던 시절도 있었으니 이제는 좋아지고 있다는 말을 들어야 돌아오는 길이 한결 가벼운데아이와 내가 분발한다 해도 분량의 숙제를 다 채우지 못할 때가 더 많다.
병원은 상처를 받는 곳
며칠 전 신경과 외래와 재활의학과 외래를 다녀와서 나는 조금 우울했다. 아이를 가장 가까이 오래 지켜봐 온 보호자로서, (이제는 때가 되지 않았을까, 더 늦기 전에) 예전에 다른 신경과 교수가 언급했던 안면 전기자극치료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담당 의사에게 물어보았는데 대답이 회의적이었다.
아이가 전기자극치료를 지속적으로 받을 만큼 충분히 의사소통이 되지 않을뿐더러, 지금 상황에서 전기자극치료를 받는다고 그 효과가 크지 않을 거란다.
지금 상황이라는 건 어떤 상황인가?
우리 아이는 말초신경 마비에 의한 안면마비일 가능성이 큰데(원인불명), 안면신경핵 무형성(이름도 마저 무자비함)인 경우라면 전기자극을 주어도 반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쉽게 설명하자면 얼굴에 자극을 전달하는 신경이 없으니 허준이나, 신의神醫 화타가 환생한들 소용없다는 얘기다.
아이가 초미숙아로 태어나 입원생활을 하면서부터 숱한 불가不可선고宣告를 들어왔고 들을 때마다 내 심장은 바닥으로 내리 떨어졌다. 병원은 당장 '며칠이 고비이다'에서부터 시작하여, 말을 못 할 거라고 아이의 성대에, 걷지 못할 거라고 아이의 두 다리에, 질병 자체에 불치不治를 선고했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지만 그 한마디가 주는 타격감은 후폭풍이 꽤 오래간다.
오랫동안 자녀 간병생활을 하신 어떤 분의 曰,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말고 잘 버텨내라'
이 말을 지금껏 온몸으로 배우며 상황에, 환경에 함몰되지 않으려 정말 애썼다. 또 '힘내라'는 말보다 '잘 버텨라'는 말이 더 위로가 되었던 이유를 굳이 생각해 보니 둘 다 '힘'이 필요하지만 전자는 없는 힘까지 끌어다 쓰는 사채 빚이라면, 후자는 남아있는 힘을 융통하는 '현금'이라는 현실적인 자체 해석 덕분이기도 했다.
병원은 환자와 의료진이 협업하는 곳
아직 원인도 모르는 희귀 난치병은 당장 치료가 아니라(치료방법이 현재 없기 때문에) 현재 상태보다 얼마나 더 나아지느냐를 목표로 하는 마라톤과 같다. 때문에 의사도 당장 모르는 현상에 대해 함부로 속단하지 말고, 부단히 연구하되 말은 아껴야 한다. 또한 환자는 목표한 치료에 이르지 못했다고 너무 자주 좌절하지 말고, 보호자는 숙제를 아직 다하지 못했다고 죄책감을 갖지 말되 주어진 숙제를 밀리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감히 말해본다. 또 어차피 가야하는 병원이라면, 병원이 의료진과 환자, 그리고 보호자가 협업하여 유종의 미를 조금씩 자주 거두며 그러다 종종 기적이 일어나는 곳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