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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ung Kim Aug 07. 2024

서로에게 짐이 아닌

힘들 때 생각나고, 의지하고 싶은 존재로.

6월부터 무더웠고, 7월은 장마로 습하고 무더웠고, 8월은 푹푹 찌고 무덥다. 우리 집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구슬땀을 흘리며 노는 아이들 덕분에 일찌감치 에어컨의 혜택을 누리고 있지만, 오랜 무소식에도 꾸준히 읽어주시는 고마운 독자님들의 여름은 안녕하신지, 뜬금없이 안부를 전하고 싶은, 어설픈 날씨이야기로 긴 침묵을 깨고 싶은 그런 날이다.


아이들 방학이 시작되고 얼마 전, 밥상머리에서 이런저런 대화가 오가다가 남편이 던진 말이 화제가 되었다.


'아이고, 내가 몇 살까지 일을 해야 하나. 우리 윤제 돌보려면 80살 까지는 일해야 하나~'


100세 시대에 사는데 아이 셋에, 매달 윤제에게 들어가는 비용이 많아 생활이 빠듯하다 보니, 노후준비는커녕 당장 생활비마저 버거운 외벌이 남편이 종종 하는 레퍼토리다.


그런데 묵묵히 밥만 먹던 큰 아이가 한 마디 툭 던진다.


'그럼 제가 윤제 돌봐야죠'


순간 침묵.

잠깐 생각을 하다가 내가 큰 아이에게 말을 했다.


'아니야, 걱정하지 마. 네가 걱정할 일이 아니야. 엄마 아빠는  윤제가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최대한 도울 거야. 혹시 엄마 아빠가 없더라도, 윤제는 센터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준비해 놓을 거야. 그러니 너는 걱정 말고 네 삶을 열심히 살아'


말을 하면서도 내 스스로 울컥했다.

남편이 한 마디를 보태어준다.


'그래, 주원이 너는 가끔 윤제 좋아하는 선물 사가지고  '형아 왔다!' 하고 한 두 번 들러주면 돼. 그거만 하면 돼.'


이럴 때는 마음이 찰떡콩떡 어찌나 잘 통하는지. 내심 남편에게 고마웠다.

철없는 사춘기인 줄 알았는데, 어째 저런 깊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은연중에 우리가 아이에게 '장남'이라는 부담감을 주었었나, 돌아보게 되었다.


그러다 문득 예전에 봤던 드라마가 생각났다.

그러라고 널 낳았어.
출처:tvN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

주인공 문강태가 자기 엄마를 회상하는 장면에서 엄마가 어린 상태에게 건넨 말이다.

강태의 형은 장애를 가지고 있었고, 강태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남편의 제삿날 받아놓은 술에 취한 엄마는, 잠에서 깬 강태를 부드럽게 불러 품에 안아주며 말한다.


'너는 죽을 때까지 네 형 옆에 있어야 해,.
엄마가 너 그러라고 낳았어'


순간, 엄마를 끌어안았던 강태의 손이 스르르 풀리고 동공은 갈길을 잃고 헤맨다.

두 아들을, 게다가 장애인 아들을 홀로 키우는 고단한 엄마가 안쓰러웠다가, 어린 강태가 받은 충격을 생각하면 엄마의 말은 기이하다 못해 기괴해서 나도 모르게 소름이 끼쳤다.

물론 취중에 실수로 한 말일수도 있겠지만, 과거 강태의 추억들을 조합해 보면, 엄마는 강태를 '형을 지켜주고 곁에 있어주는 존재'로만 대했음을, 그래서 그런 말도 스스럼없이 나왔음을 알 수 있다. 같은 엄마의 입장에서 변명이라도 해주고 싶지만, 이 비틀어진 모성애를 지지해 줄 말이 없을 것 같다.


나 역시 세 아이의 엄마이고, 장애와 비장애가 공존하는 육아를 하다 보니, 집안의 대소사가 비장애 아이의 편의에 맞게 계획되고 진행된다. 그러나 필요에 맞게 각자도생을 하려고 노력한다.

(여기에 대해 예전에 썼던 글을 참고해 보셔도 좋겠다).

》》뭉치면 살고 흩어져도 살고


지난 6월에 둘째 윤제를 중증소아단기보호센터인 "도토리하우스"에 맡기고 우리는 짧은 휴가를 다녀왔다. 1박 2일의 여행이었지만, 큰아이와 막내가 원하는 곳을 가고, 맛있는 것을 먹고, 늦게 까지 놀고, 늦게 일어나서 먹고, 또 놀고. 사실 윤제와 함께 움직이면 제대로 소화할 수 없는 일정들을, 짧은 시간임에도 여유를 부리며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감사하고 좋았던 여행이었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아이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윤제 걱정을 하고 윤제가 보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는 흩어져서도 잘 살고, 함께 있을 때는 서로 돕고 살아야 하는 건강한 가족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그랬는데, 큰 아들의 의미 심장한(?) 한 마디가 우리 부부를 게 만들었던 것이다. 물론 그렇게 말해 준 아들에게 고맙다 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인데도 마음에 긴 여운이 남는 이유는 뭘까.

혹시라도 내가 윤제와 함께하는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는 언행이나 모습을 보였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그게 아이에게도 짐이 되고 부담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자기반성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정리하자면, 나는, 아니 우리 부부는 큰 아이가 장애인 동생을 자기 인생과 자동세트로 연결하지 않길 바란다.

큰 아이가, 또한 윤제와 막내가 그저 각자 인생의 몫을, 스스로가 주인인 삶을 사는 것이 우리 육아의 공동 목표이자, 최종목표이기 때문이다.


 건강한 각자도생

각자가 제 삶을 잘 살아내기만 하면, 가족은 기회가 되면 모이고 서로를 찾게 될 것이다. 힘들 때 생각나고 의지하고 싶은 존재, 기쁜 일이 생겼을 때 함께 나누고 싶은 존재가 가족, 형제자매라면 더할 나위 없이 건강한 가족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훗날 아이들이 서로 만나서 이런 대화를 나누었으면 좋겠다.


"잘 지냈어? 윤제야, 보고 싶어서 왔어. 내가 너 좋아하는 빙글빙글 사 왔다, 어? 우리 채원이는 더 예뻐졌네"


"오빠, 얼굴 좋아 보인다, 오빠가게 요즘 핫하다고 입소문 자자하더라? 축하해.

윤제야, 너 이번에 새로운 직업체험한다며? 너 잘한다고 사회복지사님이 칭찬하시던걸?"



한편 트라우마에 발목 잡혀 살던 강태는 어떻게 되었을까?

출처:tvN사이코지만 괜찮아.캡처
상태: 동생은 그러라고 엄마가 낳아준 게 아니야,
원래는 형이 동생 지키는 거야... 내가 널 지켰어.
강태: 그러네, 나 지키라고 형이 있는 거였네.
상태: 아, 근데 이제 너도 어른이니까 너는 네가 지켜.


상태는 더 이상 동생이 지켜야 할 장애인 형이 아니었다. 형제는 서로가 서로를 돕고 밀어주는 버팀목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런 형과의 진심 어린 대화 가운데 강태도 성장하게 된다.


#장애와_비장애의공존#서로에게_버팀목#삼남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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