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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ung Kim Mar 16. 2017

너무 예쁘게 말하는 아이의 마음 들여다보기

아들 자랑 대잔치 1

엄마, 오늘 정말 즐거운 하루다!


김유정 문학관 입구에 걸린 그림.


지난 토요일, 날씨도 봄 날씨라 야외활동 하기 딱 좋았다.

그러나 7살 아들은 아침부터 파이팅 넘치게 신나게 집에서 놀고 싶다고 했다.

(But,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특히 외동아들, 딸을 키우는 가정이라면 쉬는 날은 밖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선호할 것이다-아님 말고 )

아이의 당찬 포부와 달리 우리 부부는 오전 시간에 적당히 놀아주고 점심은 교외로 나가 바람도 쐴 겸 외식을 하자고 일종의 모의를 해두었다.

신나게 몸싸움해가며 농구도 해주고(집 안에서) 레슬링도 몇 판 하고, 복싱도 하고.

(아들을 키우는 엄마이다 보니 레슬링을 하게 된다.)

 다들 힘이 쭉 빠져서 이제 좀 쉬었다가 점심 먹으러 가자 하며 자연스레 메뉴를 물었다.

(우리 부부는 아이가 어른식을 하게 되면서부터 늘, 아이의 먹고 싶은 것을 먼저 묻곤 했다. )


김밥에 라면이 먹고 싶어.


아뿔싸.

"삼겹살이나 스파게티는 어때?"

아이가 좋아할 만한 다른 메뉴를 읊어가며 어떻게든 외식을 해보려 이런저런 감언이설로 아이를 회유해 봤지만 정말인지 아이는  밖에 나갈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괜히 내가 입이 퉁퉁 불었다.

애써 감정을 억누르며 아이와 함께 김밥을 만드는데 자꾸 김밥 옆구리가 툭툭 터졌다.

접시에 간신히 옮겨 담으니 더 볼품없다.

컵라면에 물을 붓고, 상을 차리는데 베란다에 햇살이 한가득 들어와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우리 소풍 가자.


베란다에 작은 교자상을 펴고 앉을 만한 것을 찾아 되는대로 앉았다. 눈이 부셔서 다들 캡 모자도 착용했다.

 봄 날씨에 적당한 노래로 선곡해서 뮤직 스타트.


호로록. 촵촵촵. 엄지 척!


역시 엄마는 최고의 요리사야.


겨우 김밥에 컵라면에 최고라는 찬사를 듣다니.

좋으면서도 외식에 대한 아쉬움으로 여전히 시큰둥한 나는, 속 좁은 엄마다.


라면과 김밥을 클리어하고, 후식으로 커피와 쿠키를 준비했다.

자신의 등받이 의자에 반쯤 누운 상태의 아들은 정말로 편해 보였다.


엄마, 하늘이 그림같이 예쁘

오늘 정말 즐거운 하루다!


아!

햇살을 가득 머금은 반달 눈웃음을 하고, 그 예쁜 입으로 저토록 아름다운 말을 했다.

아이는 진짜 행복한 표정이었다.


나는 정말 너무 웃음이 나와서 깔깔 웃었다.

 아이가 하는 그 한 마디 한 마디가 너무도 절묘했으며 진심이 전달되었기에 덩달아 나도 즐겁다고 느꼈다.

남편도 같은 마음이었으리라.


그렇게 디저트를 먹고 각자 좋아하는 책을 보고,

보드게임을 몇 판하고,

뒹글 뒹글 놀다가

저녁은 떡볶이를 해서 먹고

또 그렇게  놀다가 잠들었다.




우리, 부모라는 존재는 종종 자녀들을 좋은 곳에 데려가 다양한 것을 보여주고, 체험할 수 있게 해주면, 아이에게 행복한 경험을 차곡차곡 쌓아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주말이 멀다 하게 각종 체험학습장이며 놀이공원, 유원지를 찾아다니느라 바쁘다.

그렇게 아이들을 끌고(?) 나온 부모들은 내 아이가 뭐라도 하나 더 건지길 간절히 바라는 표정이다.

마치 어디든 다녀오기만 하면 마일리지처럼, 포인트처럼 체험 감성이 쌓인다고 믿는 것 같다.

그것이 틀리지는 않지만, 나 역시 경험의 힘을 믿고 있고, 그래서 어디든 나가서 보고, 듣고, 느끼는 체험을 하기를 바라는 부모이지만, 가끔은 아이의 말속에 담긴 진심을 놓치지는 말았으면 한다.


진짜 아이가 바라는 것은 어쩌면 사소해서 지나치는 일상의 평범한 것일 수 있다.



자녀를 바라보는 부모의 시선은 정말로 한 끗 차이가 아닐까.

한참 이것저것 질문도 많고, 알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가지고 싶은 것도 많은 사랑스러운 내 아이에게 무엇이든 다 해주고 싶은 천상 부모의 마음이었다가, 말대꾸에 눈 흘기기, 울며 떼쓰기로 한바탕 속을 뒤집어 놓으면 원수였다가.


그러나 아이의 천진난만한 본성이 가득 담긴 순수한 웃음을 보았을 때,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너무 적절한 말을 했을 때, 나는 생각한다.


그 맑은 미소 속에, 어여쁜 말 한마디에 아이의  이 자라고 있구나.

경험으로  채울 수 없는, 내면의 평안과 진실된 기쁨(정작 아이들 본인은 이러한 것들이 내면화되고 있다는 것을 모르지만), 그리고 사소한 것에 대한 감사가 아이의 인격을 완성시켜주는 것이구나.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주말이었다고, 방콕 했노라고 퉁퉁거릴 뻔했는데, 그날 주말은 정말인지 집에서 뒹굴거리고 놀면서 끝났어도 행복했다.

아이는 늘 열린 문과 같다.

7살 아들 자랑질이기도 하고, 7살 아들에게도 배울게 많다는 것을 깨달은 철부지 엄마의 고해성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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