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응징하는 사회

전업주부의 쓸데없는 신세한탄

by Eunjung Kim
열심히 공부하고 계속 연구해라. 오래 살기만 한다면 혹시 노벨상 받을 일이 있지 않겠느냐.


십 년도 훨씬 넘은 일이다. 대학교 1학년 일반화학 시간에 한 교수님께서 2시간짜리 강의에 좀이 쑤셔하는 풋내기들에게 하셨던 말씀이다. 내 기억에 의존해서 적은 문장이라 토시까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핵심은 열심히 공부하면, 노벨상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모호하게 흘리셨다는 것이다.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해라.

그때 나는 열심히 공부했다. 한국말로 번역된 전공서를 보면서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이론들을 붙잡고 씨름했고, 두꺼운 원서를 떠듬떠듬 읽느라 밤을 새우며 절규했었다. 그뿐인가.

남들보다 한 학기를 더 다녔고(재수강을 해서 전공과목 점수를 B+이상으로 만드느라 졸업학점이 모자랐다;;), 그것도 모자라 지긋지긋하다고 이를 갈면서도 대학원에 진학했다.

국가과제로 밤샘 실험을 밥 먹듯 했고 데이터 수집과 분석하느라 컴퓨터 앞에서 살았으며, 그 와중에 수업용 발표 자료를 만드느라 세상 정신없었다. 그러다 문득, 공부는 하는데 나는 무언가 더 나아가지 못하고 성과 없이 시간만 흐르는 것에 초조해했다.

나는 열심히 하는데 왜 안 되지?


내가 이런 고민을 털어놓았을 당시, 나의 멘토이셨던 지도교수님께서 두 가지 말씀을 해주셨다.




'공부를 할 때, 책이건 논문이건 어떤 비판도 없이 다 맞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의심이 나면 물어보고,

이해가 안 되면, 이해가 될 때까지 설명해줄 누군가(그것이 사람이든, 또 다른 책이든)에게 계속 물어서 답을 찾아라.'













이 말은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나는 책에 나온 누군가가 한 말은 다 믿곤 했다. 이해가 될 때까지 다시 보고, 안되면 그냥 외워버렸다. 이 집념은 소소한 장점이자 큰 단점이다.

하지만, 왜?라는 질문을 하지 않기에, 의심 따위도 하지 않았다.


교수님은 나에게 이 말을 하신 이후로 틈만 나면, '은정, 이해했어?' 혹은, '은정, 질문 없어?'라고 물으셨다. 어느 수업에서는 '은정이가 이해하면 이 수업은 모두 이해한 걸로.'라고 하셨다. 처음에는 자존심 상해서 수업이 집중이 안됐지만, 이후에 나는 능동적 질문형 인간으로 조금씩 개조되었다.

열심히 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니었다. 수동적으로 잘 정리된 이론과 연구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은 잘 차려진 밥상에 앉아 밥 먹는 일만큼 쉬운 일이다.(물론 나는 그것 마저도 어려워서 수 없이 신세 한탄하며 울었지만) 무엇이 어디에 어떻게 좋고, 왜 그런지 무엇 때문인지를 묻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자신에게 주어진 몫인데도, 주입식 교육을 받은 우리에게는 결핍되어 있는 부분이다.


또 한 번은 대학원 막바지 시절 논문을 준비하면서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점점 확신이 없었다. 늘 남의 떡이 더 커 보였다. 어떤 친구들은 괜찮은 연구소에서 일찌감치 일하면서 제법 이름 있는 저널에 세컨드 저자로 논문을 쓰기도 하고, 해외학회에서 발표도 종종 하는데, 이렇다 할 중간 성과도 없었고, 심지어 논문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 답도 없는 문제로 씨름하고 있는 루저가 된 기분이었다.

남들은 첨단과학의 최전선에서 소위 돈이 되는 연구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나는 책상과 실험대를 오가며 실패를 반복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때 교수님께서 두 번째 조언을 해주셨다.


'네가 할 일은 최전선에서 싸우는 게 아니라 후방에서 전력보급 및 보수하는 거다.'



100%공감하지는 못했으나 나름 위안을 얻었다.


'그래, 나는 남들이 알아주지 않지만, 열심히 기초를 점검하고 보수하는 일을 하는 거야.'


하지만 실제로 교수님이 말씀하신 후방은 쓸쓸했고 초라하였다. 후방은 다음 단계로 나가지 못한다. 석사 논문 발표도 마쳤고, 졸업도 했건만 몇 년동안 뚜렷한 결과물이 없이 마침표를 찍었다. 적어도 나를 아는 주변의 지인들은 그것을 '실패'라고 하지 않았지만, 단지 내가 써 내려간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로만 나를 아는 누군가에게 나는 별볼일 없는 취업준비생이었다. 씁쓸한 웃음만 나왔다.


그러면 나는 왜 스스로 실패했다고 느끼는 것일까. 나는 이 물음을 이 사회 시스템에게 던지고 싶다.

이 나라 대한민국은 짧은 기간 내에 비약적인 경제 발전을 이루었다. 그러다보니 성장의 주축을 이루었던 산업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들이 너도나도 앞다투어 성과를 내놓게 된다. 성과 중심의 사고를 당연하게 여긴다. 그래서 정부도 기업도 교육도 '최초의 최고의 최대의' 성과들만 주목한다. 정부는 보여주기식 사업에만 혈안이고, 기업은 성공할 만한 일에 투자를 하고, 학교는 명문대 합격에만 전투력을 보인다.

그래서 중요한 오류를 수정, 보수하는 일-돈벌이 안되는데 예산과 시간만 잡아먹는- 또는 기초연구를 하는 일에는 좀처럼 관심을 갖질 않는다.

기초가 중요하다고 귀에 못이 박히게 떠들지만 정작 현실은 이와 동떨어져있다.

노벨상 수상국들의 모습과도 거리가 멀다.


건강하게 자라나는 내 아이를 보면 세상 내가 제일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고 토닥토닥 위로를 하면서도, 결혼하고 육아하느라 공백인 내 이력서를 들여다보면 패배감이 몰려온다. 누구도 나에게 실패했다고 말하지 않는데도 쪼그라든 자신감은 좀처럼 펴지지 않는다.

인정하기 싫지만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는 이런 패배감을 느끼게 함으로써 실패를 응징한다.


인생의 목적이, 그리고 행복이 꼭 무언가를 이루어야만 하는 것은 아닌데, 정작 매일을 살고 있는 이 사회 시스템은 너무 빨리 성공의 결과물을 내놓기를 요구한다. 숨이 막힌다.


괜히 취업 사이트 뒤적이다가, 몇 년 동안 업데이트되지 못한 나의 이력서를 들여보다가 괜히 욱해서 밤 잠을 이루지 못하고 만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아날로그 감성을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