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이렇게 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월요일 아침부터 남편과 나는 여느 부부라면 한 번쯤은 해보았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다.
'만약 우리가 그때 만나지 않았다면'으로 시작된 이야기.
올해 37살인 남편에게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오빠는 날 만나지 않았다면 아마 950번쯤 선을 봤을 것이고, 그중 3번째 선을 봤던 여자랑 우연히 만나, 37살에 결혼했을 거야. 그리고 한 40살 돼서 늦깎이 아빠가 됐을 거야.
내 덕분에 피부 고울 때 장가가고, 내년에 학교 가는 아들이 있는 걸 감사하게 생각해.
그리고 나는... 나는 그때 오빠 안 만났으면 결혼도 안 했을 거야. 처음에는 멋지게 일하는 여성이라 결혼은 생각도 없었을 거고 나중에는 콧대만 높은 노처녀라 못 갔을 거고."
내가 아주 거들먹거리며 이야기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웃던 남편이 받아서 말했다.
"그러게. 내가 네 덕분에 장가가서 이런 아들 얻었지. 그런데 내가 노총각으로 장가가서 40살에 아들을 낳았어도 아들 이름은 지금과 같을 거야."
"헐.. 나랑 결혼도 안 했는데 이런 아들이 어디서 나와?."
나는 순간 내가 시작한 쓸데없는 '만약에' 말놀이에 살짝 감정이 격양됐다. 하지만 이어지는 남편의 말은 작업 멘트, 속된 말로 끼 부리는 말이었다.
"그때 너를 안 만났으면 나는 독일로 유학 갈 꿈도 안 꿨을 거고, 저기 지방에서 작은 회사 다니며 소박하게 살았겠지? 950번씩 선을 보면서. 그런데 37살인 어느 날, 교회 수련회를 갔는데 거기서 한 여성을 만났어.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여자는 3번째로 선봤던 여자였고 우린 결혼했지. 그게 바로 너였고. 그래서 낳은 아들이 지금 아들이랑 같은 아들인 거고."
어쩌다 보니 간질간질 로맨틱한 대화로 끝나버렸지만 나는 하루 종일 이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전혀 다른 선택을 했는데도 다시 만나 부부가 됐을 거라는 남편의 말에 내가 잘 살고 있구나, 사랑받고 있구나 하는 안도감과 만족감을 느꼈다. 그렇지만 철학자들의 말을 빌려 조금 무게감 있게 글을 마무리해보고 싶다.
우리는 종종 현재의 나를 평가할 때 과거를 돌아보며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더 좋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거기에는 예측 불가능한 사건도 없고 모든 것이 순조롭고 이상적인 상태의 행복한 삶이 있을 것이라고 가정한다. 그러나 삶은 다른 선택을 해서 더 행복해졌을 거라고 하지 않는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삶의 결과들은 그 자체로 지금 주어진 삶과 새롭게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라고 말하며 오히려"스스로 계산하지 못하고 예측할 수 없었던 일이 어우러짐으로써 매 순간 우리에게 행동의 여지를 마련해준다"라고 했다.
<<불확실한 날들의 철학>> 중, 나탈리 크납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로서 우리는 단 한 번뿐인 삶을 산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처럼 누구도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돌이킬 수 없는 삶이기에 이미 지난 선택에 대한 후회 또한 의미가 없다. 과거의 선택이 현재의 삶의 방향을 좌우할 수 있었지만, 현재의 삶 자체를 주장하지는 못한다. 반면 현재는 힘이 있다. 전혀 다른 미래를 만들 수 있는 힘이 있다. 주어진 삶과 조화를 이루며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 현재를 산다면, 설령 비껴간 운명이라도 예측하지 못한 미래의 어떤 순간에 다시 만날 수 있게 만드는 힘이 현재에 있다.
너와 나, 우리의 연결고리는 과거에 있지 않다. 현재 나의 최선의 선택과 맞닿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