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지않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만난 진심

by Eunjung Kim

일주일 내내 30도를 웃도는 무더위가 계속되었다. 하늘은 비 소식을 기다리는 모두의 바람을 비웃기라도 하듯, 아침에는 구름 낀 하늘로 시작했다가 한 여름 불볕더위로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녹초로 만든 다음에야 하루를 마무리하곤 했다. 바깥일 하는 이도, 에어컨 밑에서 일하는 이도 지치고 힘들고 지치는 한 주였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주일을 꽉 채워 놀이터에서 노는 내 일곱살 아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태권도 학원까지 마치고 집에 오면 가장 더운 시간이라 1시간 정도 선풍기 바람아래서 간식먹으며 쉬어주고, 그나마 강렬한 열기가 살짝 누그러들때쯤 자전거와 물통을 들고 집 앞 놀이터로 향한다. 올해 초부터 연습했던 두 발 자전거를 타고 바람을 가르며 씽씽 달리는 아들의 꽁무니를 쫓아 놀이터에 도착하면 어느새 등에 땀이 흐르지만 한참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가 마음껏 뛰어 놀아야 엄마인 내가 편하다. 그 와중에 내가 좋은 엄마라는 착각도 한다.

그런데 지난 금요일은 어쩐일인지 아이가 놀이터에 나가지 않겠다고했다. 몸이 좀 피곤해서 집에서 놀고싶다고했다.


"그럼 뭘 할까."


버퍼링도 잠시, 휴지심 몇 개를 가지고 오더니 로케트를 만들겠다고 한다. 잘 때 빼고 쉼 없이 꼼지락 거리는 이 녀석의 머릿속이 궁금해지는 순간이 한 두번이 아니다.


"엄마, 테이프 자르는것 좀 도와주세요."


아이의 요청에 기계적으로 가위를 들고, 아이가 잡고 있던 투명 플라스틱 테이프의 중간쯤을 잘랐다.

순간 아들의 표정이 굳었고, 나는 직감적으로 잘못 잘랐음을 깨달았다.


"미안, 미안. "


민망한 마음에 얼른 테이프를 원하는 곳에 붙이고는 ,


"이렇게 하면 괜찮지?"


하고 얼버무리려했다.

아이는 조용히 내가 붙였던 테이프를 떼어서 원래 자기가 자르려했던 테이프에 다시 연결시켰다. 테이프를 길게 붙이려했던 모양이다. 안타깝게도 2 mm정도가 부족했다. 내가 중간을 잘라버리는 바람에 구겨져서 그런것같았다. 낑낑대며 테이프 양끝을 딱 맞추려 애쓰던 아들이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엄마 때문에 짧아졌잖아, 쪼글쪼글 종이가 묻었잖아. 엄마 미워."


이렇게 쏟아 붓고는 세상 서럽게 펑펑운다. 이마에 땀까지 송글송글하게 맺히며 우는 모습에 나는 어쩔줄몰랐다. 나는 연신 미안하다고 말하며 정확히 똑같은 길이의 테이프를 다시 잘라주었다.


"아니야, 하나도 안 괜찮아. 하나도 안 괜찮아!"

이 말을 남기고 아들은 10분을 넘게 더 울었다. 나는 하는 수 없어 그 앞에 죄인처럼 앉아, 우는 아이의 모습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무슨 말로 위로한들 본인이 괜찮지 않다는데 어쩔도리가 없었다. 10분 남짓한 사죄의 시간 동안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평소같으면 입만 비쭉거리고 말았을 일이 새삼 이렇게 서럽고 속상한 이유가 무엇일까. 괜찮지 않다는 아이의 마음은 도대체 어떤 마음일까.


첫번째는 내가 아이의 노력을 하찮게 여긴다는 것을 아이가 알아차린것이었다. 아이가 스스로 하는 모든 일은 매일 우주에서 일어나는 가장 소중한 일인데도 어른인 나는 가끔 그 사실을 잊어버린다. 생각없이 대답하고 적당히 상대해주는 식으로 말이다. 아이가 로케트를 만든다고했을 때 '또 쓰레기거리 하나 느는구나'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러저리 고민하며 꼼꼼하게 길이를 맞추어 테이프를 재단하려고 했던 아이의 원대한 계획을 나는 생각없는 가위질로 망쳐버렸다. 멋진 로케트에 덕지덕지 이어붙인 테이프 마감처리를 한다니, 아이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엄마가 자신의 일을 진심으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 배신감이 컸을 것 같다.

출처www.pinterest.co.kr/explore/i'm-fine/

두번째는 정말로 괜찮지 않아서일 것이다. 우리는 종종 어떤 일이나 상황에서 괜찮은 척 해야할 때가 있고, 그것을 강요받을 때가 많았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속 좁은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르니까, 아니면 괜히 상황을 나쁘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애써 그런척 할때가 많다. 더 웃기는건 다른 이에게도 이 괜찮음을 무의식중에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수로 누군가의 발을 밟거나 부딪쳤을 때,


"괜찮으세요?"


라고 묻는다. 그러면 대부분은 괜찮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괜찮지 않은데 괜찮은척 하는 이는 심리도, 0.1초만에 괜찮은지를 묻는 이의 심리도 결국은 모두 강박적으로 타인을 의식하기 때문이라 생각해본다. 지금이 아니라 앞으로 괜찮을 것을 계산해서 대답해야만한다. 그래야 내가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기때문이다. 이러한 경우 잘 풀리면 대인배, 나쁘게 풀리면 정신건강에 질병이 생긴다.

괜찮지 않으면 괜찮을 때까지 기다려야한다. 누구의 강요가 아니라, 화를 낸다든지 운다던지 스스로 그것과 화해하거나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해주어야한다.

나 역시 아이에게 괜찮음을 무의식중에 강요해왔다. 아이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해 시무룩해 있을때도, '괜찮아'라고 감정을 정리하려했고, 다른 아이와 다툼이 있어 아이 가 마음이 상했을 때에도 나는 '괜찮아'라는 말로 아이를 위로하려했다. 정말 아이가 괜찮을 때까지 기다려주어야하는데 내가 견딜 수 없어서 '괜찮음'으로 끝내려고 했다. 그러면 안됐었는데 깨달음은 늘 늦게 찾아온다.


그날, 로케트는 완성되지 못했다. 서럽게 울던 아이는 결국 엄마품에 안겨 더 서럽게 흐느끼다 잠들었다. 한참을 가슴에 안고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피곤이 한꺼번에 몰려왔는지 아이는 1시간 넘게 낮잠을 자고 일어나 괜찮지 않은 마음으로 완성되지 못한 로케트를 치워버렸다.



여전히 첩첩산중을 걷는 것과 같은 육아가 부담이지만 때로는 그로 인해 깨달음에 이르는 일이 더 많기에 용기를 내본다.

오늘 괜찮지 않은 일이 있었다면, 그 감정이 마음에서 소용돌이칠 수 있도록, 여기저기 부딪혀 완전히 부셔져 버리거나 혹은 스스로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도 좋을것 같다.


나는 늘 괜찮지 않아도 된다. 당신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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