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의 관계가 어려운 이유에 대한 통찰
나는 여전히 관계가 어렵고 힘들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내가 가진 어떤 성향 때문에 이 문제가 세상 힘들게 느껴지는가.
성장 과정 중 단서가 될 만한 것들을 찾아보려 한다.
1. 비교의식
두 살 터울 언니는 꼼꼼한 성격이다. 세상에 태어나 만난 첫 놀이 상대가 늘 비교대상이었다. 나는 덜렁이고 무엇이든 손 닿는 족족 망가져서 분에 못 이겨 울었는데, 반면 언니는 손이 야무져 그림 그리기, 만들기를 정말 잘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인가. 피아노를 시작했다. 1년 만에 그만두었다. 언니는 체르니 100번을 거의 다 쳤던 것 같은데 나는 첫 곡 몇 번 쳐 보고 끝났다. 언니가 하니까 무조건 시작은 했는데, 끈기는 없고, 따라갈 수 없는 실력 차이로 몹시 맘이 상했다. 내면에 마그마가 끓어올라 질투의 화산은 늘 폭발 직전이었다.
2. 욕심
단 한 번도 언니 옷, 언니 물건 물려받은 일이 없다. 무조건 내 몫을 요구했다. 가지고 싶은 것이 있다면 엄마나 언니가 괴롭던 말던 상황을 봐주지 않고 끈질기게 징징댔다. 원하는 것을 손에 얻기 전까지 온통 그 생각뿐이었고, 가질 수 없다면 세상이 다 무너질 것만 같았다.
3. 불안
또래 친구보다 언니 친구들과 많이 놀았던 것 같다. 매번 껌딱지처럼 따라붙었는데, 어쩌다 같이 놀지 못한 날에는 씩씩거리다가 울며 잠들었다. 울며 매달릴 정도로 언니 친구들과 놀고 싶었던 이유는 뭘까.
언니들은 내가 어리기 때문에 양보해 주고, 내가 특별히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아도 챙겨주었다. 같이 어울려 있는 자체가 좋든 싫든 관심 대상이었다. 결국 그 대가가 깍두기였어도 그 당시는 특별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또래 친구들과도 어울렸지만, 나를 전혀 특별하게 바라보지 않는 친구들의 시선이 불편하고 불안했다.
4. 가식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감정을 숨기기 위해서,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서, 상황을 나에게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서 가식의 가면을 썼다.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어서 친절한 척, 이해하는 척, 상처받지 않은 척했다. 그 가면 뒤에서 아팠고 쓸쓸했지만 그래서 더 참았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주목받고 싶어서 때로는 강한 척, 용기 있는 척했다. 그 가면 뒤에서 두려웠고 도망치고 싶었지만 다시 그곳으로 돌아왔다.
자조적이기는 하지만 나름의 결론을 추론해 보았다.
비교의식과 욕심이라는 기저(base)에, 불안과 가식이라는 토핑으로 버무려진 나의 미성숙한 자아가 성숙한 관계의 걸림돌이 되고 있었다.
다른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늘 경쟁과 비교대상으로 보고, 오해하고 상처 주고 상처받았다.
관계에 있어서 주도권을 빼앗길 까 봐 불안해하고, 그래서 주도권을 독점하고 싶었다.
나에게서 관심이 멀어질까 초조해했다. 그래서 누구든 나 혼자 독점하고 싶었다.
그러다 오래가지 않아서 지쳐 결국 관계를 포기하게 된다. 나에게서 포기란 '무관심'상태로, 더 나은 관계로 다가가지 못하는 것이다.
적어 놓고 보니 생각보다 글이 무거워졌다.
'내가 정말 이 정도로 인가' 할 정도로 심각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결론을 이미 제목에 적어 두었기에 아주 비관적이지는 않다.
나는 단지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관계가 어려운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모든 관계가 다 잘 되었으면 하는 욕심이 커져서 벌어진 일이다.
어른이 되면 누구와도 두리뭉실 잘 지낼 줄 알았다.
'나'라는 사람이(내 관점은 변하지 않았으면서, 나는 여전히 그대로 미성숙이면서) 늘 함께 있고 싶은 괜찮은 사람이 되어 있을 거라는 너무도 큰 착각을 했다.
나처럼 미성숙한 인간이 완벽한 상대를 만나, 완벽하게 성숙한 관계를 만들어 갈 거라는 확신이 너무 리얼해서 괴리감이 더 컸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가갈 수도, 존재할 수도 없는 완벽한 관계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라고 스스로에게 이야기하고 싶다.
관계에서 실수는 있지만, 완벽한 실패는 없다고.
나는 여전히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고, 새로운 관계에서 줄다리기를 해야 한다. 결국 관계의 끈에 조여진 긴장을 풀고, 팽팽히 날 선 신경전을 끝내는 것은 내 몫일 것이다. 조금씩, 천천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