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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Sep 29. 2019

고쳐쓰기를 위한 고쳐쓰기는 없다

[하루에 짧은 글 한 편] 2019년 9월 29일 일요일, 72번째


이 글은 2019년 9월 26일 목요일에 작성되었습니다. 3일 전에 쓴 글을 하필 지금 올리는 까닭은 고쳐쓰기를 해보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동안 브런치에서 <하루 한 편>을 써오면서, 단 한 번도 고쳐쓰기를 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제라도 한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거든요. 이번 글은 그 기념비적인 첫 시도인 셈입니다.


고쳐쓰기를 통해서 얻고자 하는 건 단순합니다. 더 나은 글쓰기 실력이지요. 고쳐 쓰는 와중에도 의구심은 여전히 듭니다. 글을 고쳐 쓴다고 나아지긴 할까? 완성한 글을 다시 들여다봐야 할까? 그렇게 수고를 들일 가치가 있는 일인지. 정말로 글쓰기 실력의 향상으로 이어지기나 할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그래도 손으로 쓰는 것보다는 번거롭지 않아서 좋네요.


자신의 글을 다시 본다는 건 그다지 유쾌한 일이 아닙니다. 저는 지금껏 글을 써오면서 누군가에게 내보인 글은 웬만해선 보지 않았습니다. 이미 제 손을 떠났으니 굳이 보려고 하지 않았죠. 반응은 참고했어도, 글을 들여다보지 않았습니다. 보고 있으면 괴롭거든요. 나는 글을 못쓰나? 왜 이렇게 썼지?


그럼에도. 이번에는 고쳐쓰기를 해봐야 하니 어쩔 수 있겠습니까. 일단 되는 대로 써놓고, 3일 동안 브런치 서랍에 묵혀두었습니다. 김치도 아니고 글을 묵힌다니, 예전이라면 무슨 뜬금없는 소린가 싶었겠죠. 시간이 흐르고 난 오늘, 글을 보고 있자니. 음, 글쎄요. 잘 모르겠군요. 


이번이 처음이다 보니 아직 감이 잘 안 오나 봅니다. 정확히는 이 글 자체가 고쳐쓰기만을 위한 것이다 보니 그저 무책임하게 써놓고 말았을 뿐이라 현재로서는 알 수 없는 게 너무 많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었습니다. 고쳐쓰기를 하려거든 목적성 있게 써놓고 보자는 결론을 얻었으니까요.


설령 손해가 있다고 해도 한 시간 남짓한 시간을 낭비했다는 정도? 물론 인간에게 있어서 시간이 무엇보다 중요한 자원이라는 걸 감안하면 한 시간이라고 무시할 수 없겠지만요. 이 경우에 감사는 비싼 값을 치르지 않았다는 안도감에 가깝습니다. 


우스갯소리로 MS의 설립자인 빌 게이츠는 숨만 쉬어도 1초에 1400달러를 번다고 하지요.


결국 고쳐쓰기를 위한 글이었으나 결론은 다른 방향으로 이어질 듯합니다. 결코 수단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거죠. 고쳐쓰기는 더 나은 글을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고쳐쓰기만을 위한 글을 쓴다는 건 대체 무슨 의미일까요? 잠시 상황을 가정해보겠습니다.


A: 나는 고쳐 써 보려고 글을 썼어. 
B: 대체 왜? 
A: 고쳐쓰기를 해보려고
B: 고쳐쓰기는 왜 하는데?
A: 고쳐 써보려고!
B: ???


두 사람의 대화로 놓고 보니 너무 이상하게 보입니다. 고쳐쓰기를 위한 용도의 글이라니. 대부분의 글쓰기 책에서 강조하기를 어떤 글도 처음부터 좋을 수 없다고 합니다. 부단히 고쳐 쓰는 과정에서 더 나은 모습이 되는 것뿐이라고. 그렇다고 해서 고쳐쓰기가 목적인 글은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제가 고쳐쓰기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에 얼토당토않은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반성부터 해야겠습니다. 사흘 전의 '나'는 오늘 이 글을 쓰고 있을 자신에게 이 글을 잘 부탁한다고, 네 손에서 지금보다 좋은 글이 나오길 기대한다고 적어놓았더군요. 글다운 글을 썼어야 뭘 고치든 말든 할 텐데, 이리 무책임하다니.


바보 같은 글의 마무리를 하자면, 수단을 목적으로 착각하지 말자는 겁니다. 글뿐만이 아니라 인생의 모든 일에 있어서 마찬가지입니다. 수단은 목적으로 가기 위한 여러 방편 중 하나일 뿐이지, 목적 그 자체가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무언가 바라는 와중에 어째서 나아가고 있는지 까먹지 않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글쓰기로 돌아오면, 고쳐쓰기는 더 나은 글을 위한 방법이지, 그 자체로 나은 글을 담보하지는 않습니다. 이 글도 고쳐쓰기로 얼마나 나아졌는지 알 수도 없습니다. 세상의 많은 글들이 작가의 눈에는 마음에 들지 않아서 고쳐 쓰고 또 고치다 보니 자연히 나아진 것일 뿐이겠죠.


이런 실수를 여러분은 하지 않으시길 바라며. 제 자신도 글을 쓰는 이유를 돌이켜봐야곘습니다. 막연하게 의무나 책임에 의해서가 아니라, 글을 써야만 하는 '나만의 이유'가 있다면 글쓰기를 계속할 수 있을 테고, 자연히 고쳐쓰기도 하게 될 테죠. 다음 번 글에서 더 나아진 모습으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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