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오늘한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준희 Oct 11. 2019

냄새

[하루에 짧은 글 한 편] 2019년 10월 11일 금요일, 82번째


어제는 카레를 만들어먹었습니다. 집에서 만들어먹는 카레의 묘미는 자기가 원하는 재료를 마음껏 넣을 수 있다는 데에 있지요. 양파에 감자, 닭가슴살을 넣어서 만들어보기로 했지요. 푹 끓여서 식감이 몽글몽글한 감자를 좋아하는지라 한 봉지 째로 모조리 넣었더니 그만 감자 카레(?)가 되어버린 건 예상외였습니다.


감자를 익힌다고 생각 없이 물을 부었더니 이게 카레인지 카레 국인지 알 수 없어서 한참을 끓이느라 요리에 들인 시간이 제법 길어졌습니다. 그래도 고생 끝에 먹는 카레는 맛있더군요. 설거지를 비롯해서 뒷정리가 다소 귀찮기는 해도 요리는 보람 있는 일이라는 걸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냄비 가득 끓였더니 한 끼를 먹고도 남아서 오늘 점심도 먹었고 내일까지 먹을 예정입니다. 그 덕분에 식비를 아낀 것까지는 좋은데, 문제는 냄새였습니다. 오늘도 카레를 끓이는데 그새 냄새가 옷에 배었는지 취업 관련 상담을 받으러 간 자리에서 '카레 냄새가 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괜히 민망하더군요.


압도적인 감자의 존재감...


가만 보면 오늘뿐만이 아닙니다. 자신에게서 어떤 냄새가 나는지는 모를 때가 있지요. 남에게서 지적받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이런 냄새가 나는구나' 깨달을 때가 있습니다. 내 몸에서 혹은 내 옷, 소지품에서 나는 냄새는 금방 익숙해져서 냄새가 난다는 걸 잊을 때가 왕왕 있지요.


가령 한국인은 마늘 냄새가 난다거나, 서양인은 치즈 냄새가 난다거나. 인종이나 국가에 따라 그 사람에게 나는 냄새가 달라질 때도 있습니다. 딱히 그날 마늘, 치즈를 먹은 게 아니더라도 오랜 세월을 거쳐 온몸에 배어 있기에 그런 냄새가 나는 거겠죠.


서로에게 익숙하지 않은 냄새라 유난히 강하게 느껴지기도 할 겁니다. 외국인을 만나면 특유의 체취나 아주 강한 향수 냄새에 코가 저릿할 때도 있습니다. 같은 한국사람을 만날 때도 어떤 사람에게서는 포근한 샴푸 냄새나 은은한 섬유유연제 냄새가 나기도 하고, 담배의 쩐내 혹은 구수한 냄새가 나기도 합니다.


요즘에는 디퓨저를 방에 놓는 경우를 흔히 찾아볼 수 있지요.


그 자신은 모르는 어떤 '냄새'. 냄새는 곧 그 사람을 드러내는 아주 강력한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누군가를 만날 때 냄새까지 신경 써야하는 건 피곤하지만 그럴만한 필요가 있지요. 그러나 신경을 쓰지 못하는 순간도 있을 수 있죠. 나에게 너무 당연해서 냄새 자체가 무감각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기에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그러한 냄새를 다시 한번 자각하는 일입니다. 나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 것 같지만 실제로는 모를 때도 있고 까먹을 때도 있죠. 타인의 시선이나 관점을 통해 나도 모르던 나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고, 나 자신을 더욱더 잘 알게 되는 게 아닐까요?


냄새 뿐만이 아닙니다. 나 자신을 알고, 타인에게 어떻게 보일지 안다는 건 곧 매력으로 이어지기도 하죠. 매력적인 사람은 타인에게 어떻게 보일지 연출할 줄 아는 사람이니까요. 저도 카레 냄새만 해도 그렇고 좀 더 신경을 써야겠군요(웃음).


오늘 여러분은 상대방에게 어떤 냄새로 기억되어 있을까요? 그 냄새는 좋았을까요 아니면 다소 불쾌한 감각이었을까요? 한 번쯤 생각해보셔도 좋을 듯합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다음 글에서 뵙겠습니다. 모쪼록 좋은 냄새로 기억되는 하루가 되셨기를 :)



매거진의 이전글 한글, 한국어, 한국문학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