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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Oct 15. 2019

돈의 무게

[하루에 짧은 글 한 편] 2019년 10월 15일 화요일, 86번째

귀여운 돼지의 배를 가르고 말다니...


비상금을 건드리다

지난달, 생활비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월말 즈음에는 재정적 곤란함에 허덕이고 있었습니다. 이미 상당한 지원을 받고 있는 마당에 이런 일로 부모님께 손을 벌리기도 그렇고, 어떻게 충당은 해야 하니 그간 한 푼씩 모아두었던 동전에까지 손을 뻗게 되었지요. 돼지저금통은 아니었지만, 여하간 배를 가르게 된 셈입니다.


동전이라고 해봐야 얼마 되지 않을 것 같지만 현금을 쓸 일이 있을 때마다, 거스름돈이 생기다 보니 종류도 다양했고 그 양도 상당했지요. 들고 다니며 쓰자니 번거롭기도 해서 쌓아두고만 있었습니다. 잡동사니 취급을 받으며 방 한 편에 놓아두었지요. 누가 보면 동전을 모으는 취미라도 있나 오해할 법도 했지요.


아침 일찍부터 인근 은행으로 가서, 직원 분께 교환을 부탁드렸더니 아주 자연스럽게 동전을 건네받으시고 성큼성큼 기계 앞으로 발걸음을 옮기시더군요. 동전을 붓기만 해도 분류를 해주는 데다가, 총액까지 계산해 알려주는 게 얼마나 신기하던지. 생소한 풍경에 두 눈이 다 휘둥그렇게 되더군요.


일일이 셀 줄로만 알았는데... 기술의 진보는 위대합니다.


참을 수 없는 지폐의 가벼움.

제가 가져온 동전은 전부 다 해서 43,890원이었습니다. 예상보다 꽤 많이 나왔더군요. 500원짜리가 제법 숫자가 됐나봅니다. 100원 동전 묶음도 네 줄이었나 나왔었으니. 바구니에 담긴 동전의 무게는 보기보다 묵직했습니다. 그 '무게'가 만 원짜리 네 장, 천 원짜리 세 장으로 바뀌니 기분이 어찌나 미묘하던지.


돈의 값어치는 무게에 비례하지는 않는다는 걸, 새삼스럽게 깨달았다고나 할까요. 평소는 별 생각이 없다가 막상 쓰자니 어찌나 망설여지던지. 생활비가 간당간당해서 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데, 가능하다면 이 돈만큼은 지갑에 넣어두고 고이 보관해두고 싶었습니다. 그러지 않았지만 말이죠.


친구에게 커피를 사고, 밥을 사는데 얼마를 썼고 남은 돈도 식사에 쓰였습니다. 그렇게 제 수중에는 단 한 푼 남지 않았고, 모조리 쓰였습니다. 화폐 본연의 쓰임이나 사회 환원의 측면에서라도 당장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쓰기는 써야했겠지만 기분이 이상하더군요.


돈의 문제

왜 쓰기가 아까웠을까요. 동전의 무게로 실감되는, 생생한 '돈의 감각' 때문이었던 게 아닌가 추측해봅니다. 카드를 쓰다보면 아무래도 '돈을 쓴다'는 느낌이 희미해집니다. 물론 카드를 쓰는 경우라고 해도 예금계좌에 있던 돈이 빠져나가니까 형태가 어찌 되었든 유사한 행위겠지만서도.


따지고 보면 고작해야 종잇조각, 고철덩어리지만 이것이 우리에게 가지는 의미는 얼마나 각별합니까. 돈이 없다면 생활이 되지 않을 겁니다. 어디 농사를 짓다거나 사냥이라도 하지 않는 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없다면 생존을 도모하는 일 자체가 불가능하지요.


그럼에도 우리의 삶이 돈에 의해 저당잡혀서도 안 됩니다. 돈은 어디까지나 교환수단일 뿐이니까요. 그러나 너무나 자주 '돈'을 핑계삼아 행복할 수 없다거나, 행동할 수 없다며 말하고 있지는 않았나 반성해봅니다. 돈이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되겠죠. 모쪼록 돈보다는 다른 가치 있는 것을 좇는 삶이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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