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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Oct 27. 2019

글이 써지지 않는 날에 쓰는 글

[하루에 짧은 글 한 편] 2019년 10월 27일 일요일, 92번째

1.

무엇을 써야 하나 한참을 고민해도 쓰고 싶은 소재가 떠오르지를 않습니다. 모니터 위 하얀 백지를 바라보고 있으니 미칠 지경입니다. 딱히 이거다 싶은 건 없고, 어제도 쓰지 않았으니 오늘만큼은 써야겠고. 기어코 또 이 시기가 오고야 말았습니다. 소재가 고갈되고 만 것입니다.


2.

<하루한편>을 쓰고자 결심하면서부터 하루 일과 중에도 드문드문 '아, 이걸 써야겠다!'며 영감이 떠오르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운 좋게도 혹 가다 한 번 있을 생소한 경험을 했거나, 그동안의 사유가 특정한 사건을 계기로 결실을 맺어서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난 경우였지요.


혹은 인터넷을 뒤지면서 소재를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소재가 생겼다고 무작정 쓰지는 않았습니다. 내가 정말로 이 이야기에 관하여 쓰고 싶은가, 제아무리 시기적절하고 훌륭한 소재라 한들 자신의 마음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쓰는 사람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야 읽는 사람도 공감할 수 있다고 믿으니까요.


3.

갑자기 마음 속에서 하고팠던 말들이 자취를 감춰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가득 있었다고 믿었는데,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능청스럽게 글을 마무리했는데 하루 사이에 텅텅 비어버려서, 스스로도 당황스럽습니다. 무엇을 이야기해도 흡족스럽지 않고, 차라리 아무것도 쓰지 않는 게 나을 지경입니다


손가락을 자판 위에 올려놓아봐도 좀처럼 옮기지 못하고 머뭇거리게 됩니다. 겨우겨우 한 글자, 한 문장을 의식하며 만들어나가지만 결과는 못마땅하기 그지 없습니다. 하나마나한 말을 하는 건 아닌지 괜히 염려가 앞섭니다. 강박처럼 글을 써본들 그 성과가 좋을 리가 없다는 게 눈이 보이는데도 의무감으로 글을 씁니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다른 사람이 시켰다면 이렇게 열심히는 못했을 겁니다. 쓰라고 윽박을 질러도 결코 쓰지 않았을 겁니다. 자신과의 약속이라서 씁니다. 종종 자괴감도 듭니다. 누구도 보지 않는 글을 왜 그렇게 쓸까. 일기나 다름 없는 것인데도 왜 나는 이것을 쓰고 있는가.


4.

정말로 누구도 보지 않았다면 쓰지 못했을 겁니다. 누군가 우연히 제가 쓴 글을 발견해서 읽게 되었을 때, 아주 사소한 위안이라도 얻어간다면 그것으로도 만족합니다. 설령 그 사람의 감상을 제가 알 수는 없더라도 그게 뭐 어떻습니까.


그러므로 오늘도 글을 씁니다. 무엇이 달라질지, 글쓰기로 과연 무엇을 얻을 수 있을 수 있을지를 벌써 고민하지 않습니다. 하나의 기록입니다. 글이 쓰이지 않은 날이었구나. 그럼에도 나는 썼구나. 비록 자기만족에 불과할지라도 그 또한 어떻습니까. 


5.

부족한 글이었습니다. 구독을 해주신 분들은 물론 아직 뵙지 못한 독자분들께 감히 이런 글을 내보이자니 벌써부터 망설여집니다. 글을 남기고자 했던 의지만은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다음 번에는 더 좋은 글로 찾아뵐 수 있기를 바라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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