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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Nov 07. 2019

여행 이후의 삶

[하루에 짧은 글 한 편] 2019년 11월 7일 목요일, 97번째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여행을 다녀오다.

11월 2일부터 6일까지, 4박 5일 일정으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올해 초 여행을 다녀오자고 친구들과 말을 나눴는데 구체적인 계획은 잡히지 않고 지지부진했습니다. 이러다가는 여행은 무슨 허공에 떠도는 소리로 흐지부지되고, 올해를 보낼 게 뻔했지요. 위기감에 서로를 재촉한 끝에 일정이 확정되었습니다.


그 후로는 일사천리였지요.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비행기표부터 숙소까지 신속히 알아본 후 한 번에 결제를 끝마쳤습니다. 너무 까다롭게 알아봤다가는 또 시간이 끌릴 게 뻔했던지라, 적당한 가격, 공항과 관광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위치, 시설의 편리함과 청결 등을 두루두루 고려해 납득할만한 수준에서 결정했죠.


일정도 따로 짜지 않았습니다. 미리부터 알아보고 여행 내내 빡빡하게 돌아다니기보다는, 우선 도착한 후에 적당히 둘러볼 곳을 알아보고 그때그때의 기분과 상황에 따르자는 주의였거든요. 다소 무신경하고 무성의하지만 반드시 뭔가를 해야겠다는 마음보다는 친구들과 함께 가는 것에 의의를 둔 여행이었지요. 그러나.


통제할 수 없는 것들.

갑작스레 친구 한 명이 부득이한 사정으로 여행을 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필 여행을 앞둔 바로 직전 날에 일이 터진 거죠. 당황스러웠지만, 어떻게 하겠습니까. 친구의 잘못도 아니었거니와, 종종 한낱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예측할 수 없고, 어쩔 수 없는 일이 있기 마련이니까요.


함께 여행을 가는 게 이번이 처음이었고, 앞으로 여행을 같이 갈 기회가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아쉬움이 컸습니다. 그렇다고 여행을 통째로 취소할 수도 없었습니다. 결국 저와 또 다른 친구, 이렇게 둘만 여행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당초 네 명이었는데, 정작 둘만 남다니 이상한 기분이었지요.


설령 인생 전부를 뜻대로 할 수는 없어도, 여행만큼은 갖은 공을 들여서 가능한 한 생각대로 흘러가 주기를 바라는 게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여행도 삶의 일부이고, 어렵게 따지고 들지 않더라도 완전한 통제 하에 둔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씁쓸하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깨달음이지요.


그럼에도 여행은 계속된다.

비록 처음 구상했던 것과는 많이 달라졌지만, 여행은 계속되었습니다. 저와 친구, 이렇게 둘은 비행기에 몸을 싣고 여행길에 올랐지요. 비행기에 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이렇게 무거운 쇳덩이가 하늘을 난다는 건 몇 번을 겪어도 그 신기함이 반감되지 않습니다. 항상 새롭고, 낯선 기분이 듭니다.


비행기가 빠른 속도로 활주로를 내달리면서 서서히 부상하기 시작할 때, 동시에 놀이기구를 탈 때처럼 온몸이 떠오르는 감각과 더불어 압력 차이로 먹먹해져 오는 귓속의 느낌. 마침내 육중한 동체가 지상으로부터 아득히 멀어지고 차량과 빌딩, 도로와 온갖 것들을 내려다보게 됩니다. 언제쯤 이 풍경이 익숙해질까요?


이번에 여행할 곳은 그리 멀지 않아서, 가만히 이동시간을 따져보면 기묘하기 그지없습니다. 서울 외곽으로 갈 때 걸리는 시간과 비슷하게 소요해서 문화도 언어도 전혀 다른 곳으로 향한다니. 글로벌이니 세계화니, 삶 속에서는 멀게만 느껴지던 단어가 새삼 분명한 형태를 띠게 됩니다.


여행 날, 해맑게(?) 찍은 사진.


여행 이후의 삶

자세한 후기는 다른 글을 통해 남기도록 하겠습니다! 기약 없는 약속이 되지 않도록, 적어도 이번 주 주말에 올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여하간 오늘의 <하루한편>은 여행을 가기 전과 다녀온 후에 느끼곤 하는 감각을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객관적으로 따져봐도 4박 5일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2박 3일이나 1박 2일과 비교했을 때 짧지도 않지만, 일주일도 되지 않으니 우리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대단하다고는 못하겠지요. 한 사람을 바꾸어 놓기에는 부족한 시간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 찰나를 향유하기 위해 여행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여행을 다녀오기 이전의 삶을 돌이켜보기 위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난 글에서 할로윈을 비롯한 축제를 두고 '비일상과 일상'의 경계에 대해 이야기했었죠. 마찬가지로 여행은 우리 삶을 전과 후로 나누는 경계가 됩니다. 다녀오기 전과 다녀오고 나서의 '나'는 결코 같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왜 여행을 떠날까.

여행의 마지막 날,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향하며 이번 여행은 물론이고 지난 인생에서 다녔던 여행의 의미를 곰곰이 되물어보았습니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무엇을 얻었을까? 아니, 반드시 뭉너가를 얻어야 하는 것일까? 그럼 우리는 왜 여행을 떠나는 것일까. 그저 돈을 쓰고 말 뿐이라면 대체 왜 여행을 가는 걸까.


이 질문에 정답이 있는 건 아닙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죠. 그럼 ''는 대체 왜 여행을 갔던 걸까. 앞으로도 여행을 간다면 어째서 가는 걸까. 그 답이 필요했습니다. 단순히 낯선 문화와 언어를 체험하기 위해서라면 굳이 시간과 돈을 들일 필요가 없습니다. 인터넷이 있으니까요. 뭔가 다른 이유가 있겠죠.


그 답을 내리기도 전에 감겨오는 눈꺼풀을 주체하지 못해 그만 잠이 들었습니다. 깨고 보니 벌써 공항 근처. 다음 여행에서는 답을 얻을 수 있을까요?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또 언제 여행을 갈지도 모르겠고,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 여행이었을 수도 있지요. 평생이 걸려도 답을 얻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무엇이 답일런지.


답을 찾아가는 여정.

우리 인생이 또 하나의 거대한 여행이라면, 아마도 짧은 순간의 여행은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될 겁니다. 우리 인생에는 무슨 의미가 있는가, 무엇을 얻어가는가. 애초부터 인생에는 아무 의미도 없으며, 그러므로 의미가 없더라도 괜찮다고는 하지만, 선뜻 입 밖으로 내뱉기는 어렵습니다.


지금 당장은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없는 때도 있고요. 어쨌거나 여행이 끝나고도 우리의 삶은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좀 더 느긋하게 지켜봐도 좋겠죠. 집으로 돌아와 모니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자니 여행이 끝나기는 한 건지, 정말로 여행을 다녀오기는 한 건지 거짓말 같이 느껴집니다.


아마도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서는 평소와 같은 나날을 보내셨을 수도 있고, 저처럼 여행을 다녀오셨거나 그게 아니더라도 특별한 경험을 하셨을 수도 있겠죠. 잘 지내셨나요? 일주일만에 이렇게 글을 통해서나마 인사드립니다. 모쪼록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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