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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Oct 31. 2019

일상으로의 초대

[하루에 짧은 글 한 편] 2019년 10월 31일 목요일, 96번째

10월 31일은 핼러윈!

10월의 마지막 날인 31일 오늘, 아마 핼러윈(혹은 할로윈)으로 더 잘 알려져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난주부터 이태원 등지와 놀이공원 곳곳에서 핼러윈 느낌이 한창이던데, 들뜬 분위기를 지켜볼 때마다 얼떨떨한 기분이 듭니다. 저는 대학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핼러윈이라는 행사를 한국에서 하는 줄 몰랐거든요(...).


하물며 핼러윈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고 달라진 것도 없었습니다. 분장을 하거나 이벤트가 진행되는 장소를 다니지 않다 보니 아무래도 좋은 날이었지요. 그래서 오늘이 핼로윈이라고 해서, 이걸로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나 고민을 좀 했습니다. 기왕 핼로윈이니 그에 관한 글을 쓰면 좋을 텐데, 떠오르는 게 없으니.


그러다 문득 '비일상'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우리가 축제와 이벤트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건 따분한 일상 속의 안온함을 벗어나, 평소에는 꿈도 꾸지 못하는 일탈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겠죠. 그 덕분에 우리는 일상을 조금 더 의미 있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기도 합니다.


핼러윈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호박 정도...?


죽은 자가 돌아오는 날, 핼러윈

먼저 핼러윈에 온갖 분장을 하는 이유부터 다루어볼까요? 핼러윈의 유래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기원전의 켈트족은 일 년을 열 달로 보고, 수확이 끝난 시점인 10월 31일에는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초자연적인 존재들, 즉 정령이나 마녀, 귀신 따위가 나타나 문제를 일으킨다고 믿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악령이 행하는 못된 일을 가만히 앉아 당할 게 아니라, 본인들도 마치 그들과 동류인 것처럼 외양을 꾸며서 시끄럽게 행동하며 눌러앉지 못하게 쫓아내고자 했던 행사가 오늘날 핼러윈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보다 자세한 설명은 아래에 링크를 첨부해두었으니 읽어보셔도 좋을 듯합니다.


여하간 핼러윈은 죽은 자가 우리 곁에 돌아오는 날이었고, 1년의 순환이 수확으로 마무리됨과 동시에 일상이 허물어지는 기간이었던 겁니다. 끝과 시작을 나누지 않고, 그 사이에 놓인 연속성과 불연속성의 미묘한 특징을 파악했다는 점에서 켈트족의 인식이 몹시 흥미롭게 여겨집니다.


요약하면, 선빵을 날리는 날이었던 겁니다. ( 출처 - 무한도전 )


일상-비일상의 경계.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곧 일상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일상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똑같은 일을 거듭하다 보면 아무리 그 의미가 중요한들, 끝끝내 퇴색되기 마련입니다. 익숙함에 젖어 가진 것의 소중함을 망각해본 경험이 한 번씩은 있으실 겁니다. 일상도 마찬가지지요.


매일 같이 아침에 일어나, 학교 혹은 직장으로 가서 주어진 일을 하고, 때가 되면 밥을 먹고 밤이 되면 자고. 그 와중에 자연스럽게 숨을 쉬고 걸으며, 두 눈으로 보고 맛을 느끼고 냄새를 맡는 것이 가지는 경이로움은 얼마나 자주 잊힙니까.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으니 내일도 그러리라 여깁니다.


그러다가 '비일상'에 놓이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가지고 있던 것들의 무게를 깨닫게 됩니다. 핼러윈은 산 자들 사이에 '죽은 이'가 돌아오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우리의 삶은 유한합니다. 죽음으로써 언젠가 끝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히 살 것처럼 착각하고는 합니다. 비일상은 그 착각에 경종을 울립니다.


비일상으로부터 돌아오기

그럼에도 비일상도 반복되다 보면 일상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야말로 참 재미있는 점이죠. 새삼 인간의 적응력이 대단하다는 게 체감이 됩니다. 더욱이 우리는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기 위해 의례적으로 비일상을 구가하는 것이라는 걸 감안해야 합니다. 여행 역시 갔다가 '돌아오는' 것에 방점이 찍히듯이요.


정처 없이 떠도는 이에게 여행이 의미하는 '떠남'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지는 않을 겁니다. 도리어 그 사람은 '떠남'이라는 항구적인 상태에 묶여있다고 봐야 할 겁니다. 떠남이 곧 일상이 되었으니, 오히려 머무를 때야 비로소 그는 '비일상'에 놓인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이 상대적인 일상-비일상의 관계. 우리가 무엇을 일상이라 여기든 그에 상관없이, 각자가 일상이라 여기는 것을 제대로 마주하기 위해서는 잠시 '비일상'으로 갔다가 여기 '일상'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걸 보여줍니다. 핼러윈을 통해 산 자와 죽은 이의 경계가 흐려진 순간, 삶을 분명하게 감각하듯이.


일상으로의 초대

고 신해철 씨의 노래 중에 <일상으로의 초대>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이 노래의 가삿말이 참 인상적입니다. 너라는 존재로 나의 똑같았던 일상도 달라질 게 될 거라는 말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고백인지도 모르죠. 그만큼 당신의 존재가 나에게 대단하다는 거니까요.


연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일상에서 끄집어내 비일상으로 불러냅니다. 동시에 일상으로의 초대이기도 합니다. 당신이 나의 일상으로 오는 거니까요. 일상이든 일상이 아니든, 서로가 서로를 통해서만 그 의미가 새로워집니다. 따분한 일상만 있어도 괴롭겠지만, 비일상만으로 꾸려진 삶도 힘들기는 매한가지겠죠.


우리는 비일상을 위한 공간과 시간을 따로 내어두는 게 아니라, 우리 일상 속에 잠시 그것들을 불러들여서 보다 풍성한 삶을 위한 수단이 되게끔 해야 합니다. 어디 다른 곳에 대단하거나 짜릿한 일이 있는 게 아니라 여기 일상이 있어서 그게 빛나 보이는 거니까요. 어쩌다 한 번 있는 축제가 휘황찬란한 것처럼요.


( 노래 링크 : https://www.youtube.com/watch?v=QTkLBhd-hQ8 )


끝으로

뭐, 여하튼 핼러윈을 즐기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10월의 마지막을 보내며, 다가오는 11월과 12월을 맞이하고 그러는 가운데 2019년을 마무리해야 하는 시점에서 하루 정도는 잠시 소란스러운 인파 속에서 흥에 취해보는 일도 필요하겠지요.


무언가 끝나고 시작되며,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우리가 가진 것이 좀 더 선명히 보이겠지요. 축제를 즐기는 데 거창한 이유야 있겠습니까만, 그저 즐겁다는 감각을 넘어선 무언가가 있으니 이렇게 오래도록 지속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지난번 글에서도 대학교 축제를 두고 이야기하며, 비일상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그때와 지금, 시간이 흐르며 제 관점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혹은 그대로인지 비교해셔도 좋을 듯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는 브런치이니 핼러윈 인사말로 Trick or Treat 보다 Trick or like-it이 어울리겠군요(웃음).

https://brunch.co.kr/@keepingmemory/81




1) 주한미국대사관 및 영사관에서 알려주는 할로윈의 유래

https://kr.usembassy.gov/ko/education-culture-ko/u-s-embassy-kids-students/american-celebrations-holidays-ko/halloween-october-31-ko/


2) 영국 유학닷컴의 할로윈에 대한 정의

http://www.ukuhak.com/halloween-day-%EC%9C%A0%EB%9E%98%EC%99%80-%EC%9D%98%EB%AF%B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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