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오늘한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준희 Oct 30. 2019

목적을 분명히

[하루에 짧은 글 한 편] 2019년 10월 29일 화요일, 94번째

나와 크로스핏.

때는 2015년, 군대를 전역하고 얼마 되지 않았던 시점이라 체력에 부쩍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고민만 해오던 크로스핏을 시작하기로 결심했지요. 호기롭게 여섯 달을 결제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한 달반 정도 열심히 나갔다가 운동 강도를 버티지 못해 그대로 퍼지고 말았습니다. 도저히 나갈 엄두가 안 나더군요.


적지 않은 돈을 냈으니 어떻게든 나가야 했는데 몸이 말을 따라주지 않으니, 원. 다시는 이번과 같은 만용을 부리지 않겠노라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슬슬 고통도 희미해졌을 즈음, 저는 다시 한번 제 발로 지옥에 걸어 들어갔습니다. 2017년이었지요. 역시나 한 달도 버티지 못했습니다.


지난번과 비교했을 때 그나마 나아진 건, 여섯 달을 내리 결제해놓는 게 아니라 두 달만 결제했다는 정도? 딱히 위안은 되지 않았습니다. 두 달 동안 나간 횟수를 꼽아보면 한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 형편없는 빈도였지요. 그때만 해도 크로스핏과의 인연은 마지막일 거라 여겼습니다. 그랬다면 이 글도 안 쓰였겠죠(...).

 

이 경우는 어디로 보나 어리석음이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이번에는!

지금으로부터 5개월 전, 2019년 5월, 저는 운동해야겠다는 필요를 느꼈습니다. 당장 머릿속에는 크로스핏이 떠올랐으나 지금 체력으로는 턱도 없겠다 싶어 홈트레이닝을 결심했지요. 하루에 한 시간 남짓, 약 한 달을 지속했습니다. 그러다 또 슬럼프가 와서 두 어달을 내리 쉬었습니다. 정신 차리고 보니 9월이었지요.


더 이상 미루면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곧장 크로스핏 박스로 향했습니다. 9월 23일, 크로스핏과 세 번째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크로스핏과의 질긴 인연은 아직까지는 잘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늘만 해도 운동을 다녀와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으니까요.


두 번씩이나 중도에 포기해놓고, 왜 또다시 크로스핏인가 하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헬스는 지루하고, 집에서 하는 건 동기부여가 잘 안 되고 그렇게 하나하나 조건을 따지다 보면 남는 선택지가 크로스핏이었죠. 괴로우니 힘드니 앓는 소리를 늘어놓았지만, 크로스핏만 한 게 또 없더군요.  


프론트 스쿼트, 공교롭게도 저도 오늘 하고 왔습니다.


그래서 대체 크로스핏이 뭔데?

크로스핏이 생소한 분들도 있으실 겁니다. 요즘 헬스장에서도 크로스핏 프로그램을 제공하기도 하니 한 번쯤 들어보셨을 수도 있으시고요. 크로스핏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번으로 벌써 세 번째지만, 항상 크로스핏이 뭐냐는 질문에는 답이 궁색해지더군요.


주어진 시간 동안 그날에 정해진 운동을 최대한 빨리 혹은 최대한 무겁게, 최대한 많이 한다고 해야 하나? 제 나름대로 '크로스핏'이라 하면 이렇다는 거지, 정확한 개념은 아닙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크로스핏은 운동방법론의 하나로서, 그레그 글레스먼이 창안했으며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크로스핏은 어느 한 분야에 특화된 피트니스 프로그램이 아니다. 10가지 영역의 육체 능력을 골고루 극대화하려는 시도이다. 이 열 가지 능력에는 심폐지구력, 최대 근력, 유연성, 협응력, 민첩성, 균형감각, 정확성, 파워, 스태미나, 속도가 들어간다.


인용해놓고 보니 이게 대체 뭔 소리인가 싶네요. '신체를 활용하는 데 있어서 종합적인 능력'을 배양한다고 이해하면 될 듯합니다. 기존의 피트니스나 헬스는 보이기 위한 근육을 만들려는 것에 치중되어있다는 인상이 강한데, '크로스핏'은 다르다는 거죠.


실제로 크로스핏을 하게 되신다면 대번에 이해가 되실 겁니다. 말 그대로 온몸의 힘을 쥐어 짜내야 합니다. 제시간에 끝내기 위해서는 물론, 주어진 시간 동안 하나라도 더 하려면 말이죠. 보통 그렇게 까지는 못해서 도중에 나가떨어지지만요.


구태여 힘든 운동을 하는 이유.

크로스핏이 원체 힘들다 보니, 매일 나가는 게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저도 일주일 내내 나가지는 못하겠더라고요. 일요일은 쉬니까 제외하더라도, 하루 정도는 쉬게 됩니다. 그동안 누적된 피로가 폭발해서 도저히 나가고 싶지 않거든요.


그렇게 쉬면 또 몸이 근질근질해집니다. 아니, 사실은 별로 나가고 싶지 않은데 그대로 운동이 끝난 후의 그 쾌감! 얼마나 또 상쾌할지. 그 순간을 고대하며 구태여 그 고행을 하러 가는 셈이지요. 목표도 간소합니다. 어제보다는 조금 더 잘하자. 혹은 그저 이 순간에 할 수 있는 만큼만!


71번째 글에서도 한 번 크로스핏을 하고 났을 때의 그 '행복감'에 대해 글을 썼던 적이 있더군요. 어쩐지 글을 쓰는 내내 익숙함이 느껴지더라니. 그렇습니다. 운동을 하고 났을 때의 그 쾌감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행복이 멀지 않다는 식으로 써놓았는데, 실제로 그렇습니다. 밥맛도 좋아지니까요.

https://brunch.co.kr/@keepingmemory/119


목표가 있으면 다르다.

여기까지만 쓰면 지난번 글과 다를 게 없겠지요. 오늘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똑같은 행위도 분명한 목표가 있으면 다르다'는 겁니다. 크로스핏을 하던 중 코치님이 해주셨던 말에 영감을 얻었습니다. 일련의 동작과 운동이 개별적인 게 아니라 각각의 운동에 필요한 힘과 능력을 기르는 일이라고 하셨지요.


그러니 운동의 목적을 감안해서 신경 쓰다 보면 자연히 다른 운동을 할 때에도 나아질 거라고요. 듣는 순간 이거다 싶었습니다. 그저 운동을 하고, 글을 쓰는 것만으로는 항상 부족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걸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잘하는 것 같다가도 한 번 놓아버리면 다시 붙잡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죠.


목표가 있으면 다릅니다. 책을 내겠다든지, 더 나은 기록을 내겠다든지 구체적인 결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내가 이것을 통해 무엇을 얻을 것인가를 명확히 정하면 계속해야 할 이유가 생깁니다. 그 이유는 개인적인 것이어도 상관없겠죠.


나만의 이유-목표를 알고 하자.

어째서 내가 이 일을 하는가, 당연히 고려해야 할 사항이지만 의외로 놓치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남들이 다 하니까 혹은 그냥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하는 경우가 대다수죠. 물론 그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걸로는 도저히 지속하기 어려운 순간이 찾아옵니다. 저는 그랬습니다.


글쓰기도, 운동도, 지금까지 해왔던 모든 것들. 내 안에서 그 이유를 정확하게 설정해두지 않았을 때, 길을 잃고 헤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다른 사람이 제시해준 방향을 따라가는 것도 좋겠지만, 내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이유여야만 더욱 오래 지속할 수 있겠죠.


하고 있는 일이 잘 풀리고 있는데도 괜히 답답한 기분이 드신다면, 지금이라도 일을 해야하는 이유와 목적을 진지하게 고민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어쩌면 이미 답이 있는데 모르고 있었거나, 이제라도 그만두어야 할 때인지도 모릅니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가려면 그런 시간도 필요하니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Winter is coming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