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짧은 글 한 편] 2019년 10월 29일 화요일, 94번째
때는 2015년, 군대를 전역하고 얼마 되지 않았던 시점이라 체력에 부쩍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고민만 해오던 크로스핏을 시작하기로 결심했지요. 호기롭게 여섯 달을 결제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한 달반 정도 열심히 나갔다가 운동 강도를 버티지 못해 그대로 퍼지고 말았습니다. 도저히 나갈 엄두가 안 나더군요.
적지 않은 돈을 냈으니 어떻게든 나가야 했는데 몸이 말을 따라주지 않으니, 원. 다시는 이번과 같은 만용을 부리지 않겠노라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슬슬 고통도 희미해졌을 즈음, 저는 다시 한번 제 발로 지옥에 걸어 들어갔습니다. 2017년이었지요. 역시나 한 달도 버티지 못했습니다.
지난번과 비교했을 때 그나마 나아진 건, 여섯 달을 내리 결제해놓는 게 아니라 두 달만 결제했다는 정도? 딱히 위안은 되지 않았습니다. 두 달 동안 나간 횟수를 꼽아보면 한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 형편없는 빈도였지요. 그때만 해도 크로스핏과의 인연은 마지막일 거라 여겼습니다. 그랬다면 이 글도 안 쓰였겠죠(...).
지금으로부터 5개월 전, 2019년 5월, 저는 운동해야겠다는 필요를 느꼈습니다. 당장 머릿속에는 크로스핏이 떠올랐으나 지금 체력으로는 턱도 없겠다 싶어 홈트레이닝을 결심했지요. 하루에 한 시간 남짓, 약 한 달을 지속했습니다. 그러다 또 슬럼프가 와서 두 어달을 내리 쉬었습니다. 정신 차리고 보니 9월이었지요.
더 이상 미루면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곧장 크로스핏 박스로 향했습니다. 9월 23일, 크로스핏과 세 번째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크로스핏과의 질긴 인연은 아직까지는 잘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늘만 해도 운동을 다녀와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으니까요.
두 번씩이나 중도에 포기해놓고, 왜 또다시 크로스핏인가 하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헬스는 지루하고, 집에서 하는 건 동기부여가 잘 안 되고 그렇게 하나하나 조건을 따지다 보면 남는 선택지가 크로스핏이었죠. 괴로우니 힘드니 앓는 소리를 늘어놓았지만, 크로스핏만 한 게 또 없더군요.
크로스핏이 생소한 분들도 있으실 겁니다. 요즘 헬스장에서도 크로스핏 프로그램을 제공하기도 하니 한 번쯤 들어보셨을 수도 있으시고요. 크로스핏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번으로 벌써 세 번째지만, 항상 크로스핏이 뭐냐는 질문에는 답이 궁색해지더군요.
주어진 시간 동안 그날에 정해진 운동을 최대한 빨리 혹은 최대한 무겁게, 최대한 많이 한다고 해야 하나? 제 나름대로 '크로스핏'이라 하면 이렇다는 거지, 정확한 개념은 아닙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크로스핏은 운동방법론의 하나로서, 그레그 글레스먼이 창안했으며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크로스핏은 어느 한 분야에 특화된 피트니스 프로그램이 아니다. 10가지 영역의 육체 능력을 골고루 극대화하려는 시도이다. 이 열 가지 능력에는 심폐지구력, 최대 근력, 유연성, 협응력, 민첩성, 균형감각, 정확성, 파워, 스태미나, 속도가 들어간다.
인용해놓고 보니 이게 대체 뭔 소리인가 싶네요. '신체를 활용하는 데 있어서 종합적인 능력'을 배양한다고 이해하면 될 듯합니다. 기존의 피트니스나 헬스는 보이기 위한 근육을 만들려는 것에 치중되어있다는 인상이 강한데, '크로스핏'은 다르다는 거죠.
실제로 크로스핏을 하게 되신다면 대번에 이해가 되실 겁니다. 말 그대로 온몸의 힘을 쥐어 짜내야 합니다. 제시간에 끝내기 위해서는 물론, 주어진 시간 동안 하나라도 더 하려면 말이죠. 보통 그렇게 까지는 못해서 도중에 나가떨어지지만요.
크로스핏이 원체 힘들다 보니, 매일 나가는 게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저도 일주일 내내 나가지는 못하겠더라고요. 일요일은 쉬니까 제외하더라도, 하루 정도는 쉬게 됩니다. 그동안 누적된 피로가 폭발해서 도저히 나가고 싶지 않거든요.
그렇게 쉬면 또 몸이 근질근질해집니다. 아니, 사실은 별로 나가고 싶지 않은데 그대로 운동이 끝난 후의 그 쾌감! 얼마나 또 상쾌할지. 그 순간을 고대하며 구태여 그 고행을 하러 가는 셈이지요. 목표도 간소합니다. 어제보다는 조금 더 잘하자. 혹은 그저 이 순간에 할 수 있는 만큼만!
71번째 글에서도 한 번 크로스핏을 하고 났을 때의 그 '행복감'에 대해 글을 썼던 적이 있더군요. 어쩐지 글을 쓰는 내내 익숙함이 느껴지더라니. 그렇습니다. 운동을 하고 났을 때의 그 쾌감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행복이 멀지 않다는 식으로 써놓았는데, 실제로 그렇습니다. 밥맛도 좋아지니까요.
https://brunch.co.kr/@keepingmemory/119
여기까지만 쓰면 지난번 글과 다를 게 없겠지요. 오늘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똑같은 행위도 분명한 목표가 있으면 다르다'는 겁니다. 크로스핏을 하던 중 코치님이 해주셨던 말에 영감을 얻었습니다. 일련의 동작과 운동이 개별적인 게 아니라 각각의 운동에 필요한 힘과 능력을 기르는 일이라고 하셨지요.
그러니 운동의 목적을 감안해서 신경 쓰다 보면 자연히 다른 운동을 할 때에도 나아질 거라고요. 듣는 순간 이거다 싶었습니다. 그저 운동을 하고, 글을 쓰는 것만으로는 항상 부족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걸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잘하는 것 같다가도 한 번 놓아버리면 다시 붙잡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죠.
목표가 있으면 다릅니다. 책을 내겠다든지, 더 나은 기록을 내겠다든지 구체적인 결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내가 이것을 통해 무엇을 얻을 것인가를 명확히 정하면 계속해야 할 이유가 생깁니다. 그 이유는 개인적인 것이어도 상관없겠죠.
어째서 내가 이 일을 하는가, 당연히 고려해야 할 사항이지만 의외로 놓치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남들이 다 하니까 혹은 그냥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하는 경우가 대다수죠. 물론 그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걸로는 도저히 지속하기 어려운 순간이 찾아옵니다. 저는 그랬습니다.
글쓰기도, 운동도, 지금까지 해왔던 모든 것들. 내 안에서 그 이유를 정확하게 설정해두지 않았을 때, 길을 잃고 헤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다른 사람이 제시해준 방향을 따라가는 것도 좋겠지만, 내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이유여야만 더욱 오래 지속할 수 있겠죠.
하고 있는 일이 잘 풀리고 있는데도 괜히 답답한 기분이 드신다면, 지금이라도 일을 해야하는 이유와 목적을 진지하게 고민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어쩌면 이미 답이 있는데 모르고 있었거나, 이제라도 그만두어야 할 때인지도 모릅니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가려면 그런 시간도 필요하니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