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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Nov 09. 2019

못난 모습도 인정하기

[하루에 짧은 글 한 편] 2019년 11월 9일 토요일, 98번째

거북한 침묵

마주 앉은 사람과 도저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순간이 있습니다. 둘 사이에 무겁게 가라앉은 침묵, 형체도 없는 감각이 분명한 무게감으로 다가올 때, 식은땀이 흐릅니다. 뭐라도 좋으니 입 밖으로 꺼내서 이 난처한 상황을 탈피해야 하는데, 정리되지 않은 생각이 안에서 맴돌기만 할 뿐.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처음 만나는 자리, 주로 소개팅 혹은 그다지 친하지 않은 지인과 오랜만에 만났을 때 겪고는 하는 일이죠. 저는 말주변이 썩 좋은 편이 아니어서, 어떻게 대화를 이끌어 나가야 좋을지 고민될 때가 잦습니다. 혹시나 상대방이 지루하다고 느끼면 어쩌나, 괜한 걱정부터 앞섭니다. 세월을 거듭해도 쉽게 나아지지 않더군요.


책이라도 읽으면 달라질까 싶어서, 대화법에 관한 책을 찾아서 읽어보기도 했습니다. 단골로 나오는 말이 억지로 말을 꺼내기보다 잘 들어주라는데, 글쎄요, 왜 상대방은 나의 말을 기다리는 것만 같을까요. 이 침묵은 그럼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걸까요. 곧잘 방법론이 무색해지는 상황에 직면합니다.


나는 재미없는 사람입니다

왜 압박감을 느끼는 것일까요. 가만히 그 이유를 따져봅니다. 서로가 시간을 내어 만나는 자리인데, 구태여 상대방에게 '잘 보일' 필요를 느껴서일 수도 있지요. 혹은 어떤 시점부터 스스로를 재미가 없는 사람이라고 여겼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도 그럴 게 '너는 너무 진지하다'거나, '딱딱하다'는 평가가 흔했으니.


그렇습니다. 저는 이른바 '재미없는 사람'에 속합니다. 가까운 사람들과 있을 때는 편하게 농담도 하지만,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는 무례하다고 느낄까 봐서 농담을 일절 하지 않는 편입니다. 반말은 애초부터 하지를 않습니다. 더욱이 소재도 제한적입니다. 예능이나 드라마 등 유명 프로그램을 안 본 게 몇 년이나 되었는지.


독서를 하거나 영화를 보는 게 전부에, 게임이나 만화를 좋아하다 보니 동성은 괜찮아도 이성을 앞에 두면 말문이 막힙니다.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고 살아왔던 지난 28년을 반성해봅니다. 그러니 책을 읽어도 달라지는 게 없죠. 가장 우선해야 할 사항은 사람에 대한 관심이었는데 그 부분에서 노력해보질 않았으니.


과거, 현재 그리고

자아가 형성된다고 하는 중학교-고등학교 시절, 당시의 저는 나를 둘러싼 세계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도저히 관심이 가지 않았습니다. 나의 이상과는 한없이 거리가 멀고 불만족스럽기만 할 뿐인 세계. 자연스레 내 안에 천착하게 되었지요. 사람을 대하는 법을 배울 기회를 스스로 포기했던 겁니다.


나름대로 노력했는데 기대를 벗어나거나 실패하고 무위로 돌아갔을 때 얼마나 좌절했던지. 상처 입을 바에 차라리 시도조차 하지 않겠다는 태도로 지냈습니다. 그렇게 대학에 들어갔고, 사람을 만나면 어찌할 바를 몰랐지요. 지금 이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어떻게 느끼는지 당최 알 수가 없으니까요.


사람을 만나지 않고 산다면 괜찮겠지만 외로움 때문에 그러지도 못했습니다. 뒤늦게 사회화를 시작하려니, 난감할 때가 어찌나 많던지. 현재 진행형의 문제입니다. 혼자 있는 게 익숙하다 보니, 나 홀로 집에 있으며 고독을 즐기는 걸 좋아하면서도 종종 누군가와 함께 했으면 좋겠다 싶지요. 문제는 어떻게?입니다.


사람과 만나는 일

일단 사람을 만나면 달라질까 싶어서,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을 전전하며 번개와 모임도 나가보았습니다. 그때의 경험을 가지고 '자기다움' 그리고 '인간관계'의 문제로 엮어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오늘 또 비슷한 글을 쓰게 되어 참 민망하면서도 어쩌겠나 싶습니다. 그게 인생인 걸요.


https://brunch.co.kr/@keepingmemory/144

인간관계라는 게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 번에 나아지지도 않을 뿐더러, 평생을 안고 가는 거니까요. 여하간 그 때는 일단 '사람'을 만나면 달라질 거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정말로 '사람'을 만난 걸까요? 그리고 나라는 '사람'을 드러내보이기나 했을까요? 고개를 가로젓게 됩니다.

소모적인 인간관계. 더욱이 이미 존재하는 인간관계에서 나는 얼마나 상대방을 '사람'으로서 대하고 있나, 혹은 '사람'으로 존재하고 있나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습니다. 감추어야하지는 않을까, 은연 중에라도 숨길 필요를 느끼고 있나 봅니다. 부끄럽고 못난 자신을 누구도 좋아할 리 없다고 여기면서요.


나부터, 보듬기

침묵을 앞두고도 말을 꺼내야 한다는 압박도 그 연장에 있습니다. 내가 재밌어야 다음에도 만나겠지, 혹은 상대방이 나에게 의미있다고 느끼기를 바라니까. 내가 보잘 것 없다는 걸 숨기려 애처로우리만큼 절박하게 발버둥칩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부정적인 기운과 자학은 드러나고야 말기에 미봉책일 따름입니다.


재미없어도 좋다고, 모두에게 사랑받지 않아도 된다고 자신을 타이르지만 쉽지 않습니다. 하루하루 마음을 다잡고 이겨내려 합니다. 다른 무엇이 되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먼저 인정하기. 못난 모습도 나니까. 어쩌겠습니까. 체념이나 방종이 아닙니다. 일단은 이것이 나인 걸요.


자기 세계에 천착해왔다고 믿었지만, 어쩌면 자기조차 제대로 돌아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도 그럴 게 주변이 마음에 들지 않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나 자신도 형편없다고 여겼을 테니. 그냥 모든 것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었을 겁니다. 전부 인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밖이 아니라 안에서부터 시작해야겠죠.



앞으로는.

그동안 써온 글에서 보이는 긍정적인 생각이나 태도는 노력의 과정이며 '그런 척'의 산물입니다. 실제 저의 모습은 종종 불만족스럽고 불안해합니다. 과거에 저지른 잘못에 자주 부끄러움을 느끼고, 그럼에도 또다시 실수합니다. 언제쯤이면 달라지나 이제나저제나 전전긍긍하지만 좀체 나아지지를 않습니다.


그래도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습니다. 어쩔 때는 반 발자국. 너무 힘들면 잠시 쉬었다가기도 합니다. 이 글은 일종의 고백입니다. 애쓰고 있는 모습을 내보이자니 지금 이순간도 망설여지는지. 쓸 말이 없다고 텅빈 화면 앞에 앉아 있다가 가까스로 꺼낸 것이 고작해야 나의 치부라니.


문득 글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이르러서, 내가 글을 쓰는 걸 좋아하는 이유를 알 것만 같습니다. 쓰는 와중에 스스로 위로받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서요. 읽어주신 분들께도 감사합니다. 당신께 이 글이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애쓰지는 맙시다. 아주 조금도 좋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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