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아무리 친한 사람과도 정치와 종교에 관해서는 말도 섞지 말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이 같은 말의 바탕에는 하고 많은 문제 중에서도 하필 정치와 종교, 이 두 영역에 대해서는 섣부르게 타협할 수 없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정치와 종교는 모두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즉 개인의 가치관을 드러낼 뿐 아니라 삶의 구체적인 방향까지 결정짓기도 한다. 그럼에도 어떤 면에서는 일상과 동떨어져 존재한다는 모순된 측면이 있는데, 정치의 경우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같이 '높으신 분'의 소관으로 여겨질 때가 흔하다.
그럼에도 정치는 현실의 논리 속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진보-보수, 좌파-우파 따위의 도식은 한 번 쯤은 들어보지 않았나. 그 뿐이 아니다.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 우리의 삶이 곧 정치의 과정이거나 결과다. 타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나아가서는 우리가 서있는 지평까지도 바꾸어놓는다.
재미있는 점은 적지 않은 이들이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그런 척 하려고 한다. 정치에 신경을 쓰는 게 피곤할 뿐이며 기껏 관심을 가져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또한 정치가 이루어지는 현장은 우리의 삶에서 적잖이 떨어져 있다. 적어도 국회의사당 내지는 청와대까지의 거리거나 그 이상으로.
평소 무관심하다가도, 선거철이 다가오거나 국회의원 누구가 막말을 했다는 둥 비리를 저질렀다는 둥 뉴스에서 시끄럽게 떠들어대면 그제야 슬쩍 '정치'로 눈이 간다. 멀게만 느껴지는 정치. 혹자는 정치는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으며 우리의 삶이 곧 '정치' 그 자체라고 한다.
그렇다면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의 정치에 문제가 있다면, 그건 우리 삶에도 문제가 있다는 소리가 아닌가? 우리 삶 지척에서 문제가 벌어지고 있는데 그대로 두고 봐서는 안 된다. 정치의 여러 가지 문제 중에서도 하필 '청년 정치'에 대해서 알아보려 한다.
책 <청년 정치는 왜 퇴보하는가>는 청년 정치가 처한 현실과 문제점, 장차 나아가야 할 방향을 다루고 있다. 저자 안성민은 정치학 전공자가 아니고 정치와 관련한 활동을 하고 있지는 않으나, 청년세대의 당사자로서 청년 정치에 대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책의 구성을 살펴보면, 도입부와 4개의 본문, 짧은 에필로그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의 장은 다음의 내용을 다루고 있다. 가장 먼저 1장에서 '청년'이라는 특정 계층에 대해 정의하고 그들의 특징을 다룬다. 이어지는 2장은 한국 정치의 현실을 진단하고 있으며 3장에서 청년 정치가 퇴보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밝힌다. 4장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며 마무리된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저자는 대한민국 정치판에 청년 세대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하는 현실을 비판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 시도는 절반의 성공을 거둔 채로 여러모로 아쉬움을 남긴다. 이 글에서는 절반의 성공과 아쉬운 부분을 차근차근 살펴보려 한다.
절반의 성공: 현실에 대한 진단
청년 세대가 처한 먹고사니즘-생존의 문제
저자는 청년 정치가 실패할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유로 정치에 대한 청년 세대의 무관심이 아니라, 자본주의 현실 속에서 생존에 혈안이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지적한다. 이른바 먹고사니즘의 문제다. 동시에 청년과 해당 세대가 처한 현실에 무지하며 무관심하기까지 한 기성 세대의 잘못을 함께 거론한다.
청년이 정치에 무관심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현재 대한민국의 사회 구조가 생존에 혈안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실을 물려준 기성 세대는 그러한 사태에 문제의식을 통감하는 것이 아니라, 외려 청년 세대가 나약하다거나 이기적이라고 비난하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인다.
국가적 문제로 거론되는 저출산과 비혼, 1인 가구의 증가는 청년 세대가 보이는 특징이지만, 청년 세대에 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도출된 자연스런 결과이기도 하다. 더 이상 극적인 성장을 기대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청년이 처한 다종다양한 문제들. 저자는 통계자료와 사회 현상을 거론하며 이를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늙어버린 한국 정치. 누구도 대표하지 못하는 '대표'들.
책에서 주장하듯이, 현재 대한민국 정치인의 평균연령은 과도하게 높다. 20대 총선에서 당선된 국회의원의 평균 나이는 35.5세다. 20대에서 30대 국회의원은 3명 뿐이라는 사실이 충격적이기까지하다. 고작 해야 세 명의 국회의원이 청년 세대를 위해 어떤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설사 낸다하더라도 힘이 실리지 않을 것은 불 보듯 뻔하다.
현재 국회의원의 연령대는 대한민국 전 세대를 고루 반영하지 못할 뿐더러, 이들의 학력과 직업, 병역 문제와 전과 여부도 '대표성'과는 한참 거리가 있다. 대의민주주의 제도가 지닌 어쩔 수 없는 결함이라 하기에는 현재 대한민국 국회는 일반 국민과 한참 동떨어져 있다.
국회의원들이 내놓는 정책마저도 어디까지나 국회의원으로서 내야하는 성과를 위한 시늉일 뿐 현실의 논리와는 동떨어져 있다고 일갈한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성과주의에만 국한되지 않고, 시민을 대신해 입법을 행사하는 이들이 누구 하나 제대로 대표하고 있지 못한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구색 맞추기에 그치는 청년 정치의 문제
이러한 가운데 청년 정치에 대한 취급이 어떨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선거철의 선전 문구로 활용되거나 일회용 정책에 불과하다. 또한 정당 내의 얼굴마담으로 소비될 뿐, 생색내기로 그치고 만다. 정치권 뿐만이 아니라 시민 사회에서도 청년에게는 책임만을 강요한다.
지난 10년 동안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연이은 집권을 두고, 정치에 무관심한 청년 세대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소위 20대 개새끼론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치의 문제가 어느 세대만의 문제일 리 없다.
또한 이 같은 주장은 기성 세대가 청년 세대가 처한 현실과, 변화의 이유를 들여다보려 하지 않고 책임만을 전가하려던 행태였음을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 앞선 먹고사니즘의 문제와 그로부터 이어지는 N포 세대와 헬조센 등 시대를 표상하는 용어의 등장은 모두 청년이 몸담고 있는 대한민국 자체로 이어진다.
청년, 그리고 정치가 나아가야할 방향
방법은 없을까? 저자는 기성 세대의 각성과 더불어 양보를 우선적으로 제시한다. 청년의 보수화를 걱정할 것이 아니라, 청년 세대 앞에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힘을 보태고 대한민국을 이끌어나갈 다음 세대로 활약할 수 있게끔 기회를 제공해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나아가 청년 세대에게도 변화와 행동을 요구한다. 기존의 청년 정치인에게는 열정이나 패기 같은 낡은 수식어로 스스로를 포장할 것이 아니라 능력과 실적으로 증명하고, 마찬가지로 청년 세대 역시 정치인에게 정치의 모든 과정을 일임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감시하며 혁신을 주도하라고 주문한다.
저자의 바람은 분명하다. 대한민국의 현실이 지금보다 나아지기를 바라고, 그러기 위해서라도 청년 정치가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의도와 주장은 좋으나, 책의 완성도와는 떼어놓고 보아야한다. 지금부터는 아쉬웠던 부분을 하나씩 들어보려 한다.
1. 메시지의 문제
저자가 책 전체를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이 달라지기 위해서는 청년 세대를 제대로 이해하고, 대한민국을 이끌어나갈 차기 주자로서 이들에게 합당한 역할과 주어진 책임에 상응하는 권리를 부여해야한다는 것이다.
당장 청년 정치에 관해 검색해봐도 비슷한 논조의 글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따라서 저자의 문제의식은 이 시대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필연적 주제'다. 그러나 하필 책으로 나왔다면 칼럼이나 사설에서 분량 상의 문제든 게재되는 매체의 문제든 여타의 이유로 다룰 수 없었던 지점과, 보다 진전된 논의를 보여주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았을까?
적어도 이 책은 기왕의 논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채로, 문제 제기에서 그치고 만다. 청년 정치의 문제를 다루는 글이기에 청년이 처한 현실을 상세히 다룰 필요는 있었겠으나, 1장, 2장, 3장에 걸쳐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는 점도 아쉽다. 이는 다음 부분에서 상세히 다루려고 한다.
2. 내용의 문제
2-1. 반복되는 내용
책은 한 편의 책으로 유기적으로 이어져있다기보다, 각 장의 주제에 따라 비슷한 내용이 반복된다. 이전 장에서 다루었더라도, 지금 장에서 필요하다면 한 번 더 언급된다. 마찬가지로 다음 장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발견할 수 있다.
청년 세대의 현실과 청년 정치의 어려움을 강조를 하기 위해서 반복했다고 이해할 수도 있겠으나, 각 장의 세부 내용을 짧게 나눌 것이 아니라 비슷한 내용은 줄이고 세부적으로 길게 다루었더라면 구체적인 논의가 가능했을 것이다.
가령 청년 세대를 정의하고자 하는 1장의 두 번째 소제목에서 청년들이 처한 현실을 다루는 부분과 한국의 정치 현실을 다루는 2장의 첫 번째 소제목, 두 번째 소제목의 하위 단락에서 다루는 내용은 아주 흡사하다. 반복되는 내용을 줄이고 다음 내용으로 넘어가더라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2-2 비중의 문제.
이는 책 전체의 비중 문제로도 이어진다. 청년에 대한 정의와 대한민국 정치의 문제를 다루는 1장과 2장, 청년 정치를 가로막는 문제를 다루는 3장에 비해 대안을 제시하는 4장은 분량은 물론,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하지 못하고 몇 가지 제언으로 끝나고 만다.
물론 저자는 정치학 비전공자이며, 일반 시민에 가까운 입장에 불과하므로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하기는 어려웠을 수 있으나 책의 비중을 감안해도 현실 정치에서 청년 정치가 가능하기 위해 나아가야 할 방안에 분량을 좀 더 할애했어야 한다.
3. 문장과 글의 논리
책 옆 날개에서 확인할 수 있는 정보에 따르면, 저자 안성민은 정치학 전공자가 아니다. 저자가 책을 통해서 밝히듯이, 해당 분야의 전문가나 전공자만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어서는 안 된다. 그와 마찬가지로 정치에 대한 책을 쓰는 일에도 특별한 자격이 요구되지는 않는다.
다만 정치 현실에 대해 비판하고 개선을 요구하기 위해서는 보다 면밀해져야 한다. 주장의 바탕에 논리적인 근거가 있는지, 용어가 지나치게 거칠지는 않은지를 따져야만 한다. 인터넷에 게재되는 게시글 이상의 성격을 지녀야 비로소 건전한 담론의 장으로서 기능할 수 있다.
아쉽게도 <청년 정치는 왜 퇴보하는가>는 정제되지 않은 거친 표현이 쓰인다. 달을 가리켰으면 달을 봐야지 손가락을 봐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메신저가 의심스러우면 메시지까지 고깝지 않게 보인다. 개탄스런 현실에 분노하는 저자의 의중은 알겠으나, 표현에서는 자중해도 좋았을 뻔했다. 예시를 아래에 소개한다.
"그렇게 허접스러운 룰로 공천심사를 하니(중략)" - p.276, <청년 정치는 왜 퇴보하는가>
몇몇 부분에서는 논리의 비약이 발견된다. 어떤 면에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으나 위의 표현에서 지적했듯이, 사소한 부분에서 누적된 논리적 결함은 곧 책 전체의 신뢰도를 깎아내리는 결과로 이어진다. 따라서 극단적인 표현은 물론, 비약을 자제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예시는 다음과 같다.
"국수주의, 종교, 이념 등에 갇혀 편협한 삶을 지향하는 나라들은 끊임없는 내전과 세계적인 고립 등을 겪으면서 지도에서 사라져 가고 있다." - p.261, 같은 책
저자가 지적하고 싶었던 바는 '다양성이 적은 나라일수록 장래가 불투명하다'는 메시지로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독자의 입장에서는 대체 어느 나라가 해당이 되며, 실제로 멸망했는지 그 여부도 알 수 없다. 만약에 극우주의가 득세하는 경향 내지는 시리아 난민에 관한 문제를 거론한 문장이라면, 더더욱 주의해야할 필요가 있다.
통계와 수치 등의 객관적인 데이터가 제시되는 부분에서도 왕왕 논리의 비약이 보이는데, 현실 정치의 문제를 꼽기 위해서 특정 자료의 의미를 호도해서는 안 될 것이다. 엄밀한 정의를 바탕으로 한 학술 서적을 목표로 하지 않았더라도, 주장을 하기 위해서는 그 밑바탕에 탄탄한 논리를 전제하고 근거 또한 명확해야 한다.
4. 현실 정치에서의 문제
가령 청년 정치가 불가한 이유를 기성세대가 정치에 대한 양보가 없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얼마나 현실을 정확하게 포착하고 있는지에는 의문이 든다. 세대갈등에 함몰되지 않고 냉정하게 청년 정치의 가능 여부를 따졌더라면 훨씬 좋은 글이 되었을 것이다.
4-2. 청년 정치의 지금.
저자의 말대로 청년 정치는 퇴보 중이거나 ,퇴보하고 있을까? 다소 도발적인 제목을 지은 데에는 저자 나름의 이유가 있겠으나 현실을 정확히 담보하지는 않는다. 청년 정치는 적어도 후퇴하고 있지는 않다. 어떻게 해서든지 나아가려는 시도의 와중에 있으나, 그 몸부림이 미처 포착되지 않을 뿐이다.
'미약한 몸부림'이나마 분명히 존재하는 것과,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있으마나나하다는 인식이야말로 청년 정치를 퇴보하게끔하는 이유일 수 있다. 청년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기를 바랐다면, 저자가 이런 부분에서 좀 더 주의를 기울여 '지금'의 청년 정치를 소개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4-2. 대의-민주주의 자체의 어려움
저자의 문제의식을 따라가며, 한편으로는 지금의 청년 세대를 대표한다는 일 자체의 어려움을 고민해보게 되었다. 현대 민주주의에서는 대의 민주주의의 방식 아래에서 특정 계층이나 특정 세대를 대표하는 정치인을 뽑는 것을 최선으로 여기고 있으나, 그 '대표성' 자체가 모호한 개념이다.
과거에 비해 삶의 양상이 다양해졌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세대 혹은 경제적 능력 등의 기준으로 도식화하여 특정한 집단을 판단하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근사치일 뿐 집단은 커녕 개별 주체의 특징을 정확히 반영하지는 못한다.
마찬가지로 청년 세대라고 해도, 한데 묶어놓기에는 적지 않은 곤란함이 뒤따른다. 경제 상황은 물론, 특정 사안을 바라보는 가치관까지 각자가 취하는 태도가 다르다. 애초부터 이들은 누군가 자신을 대표한다는 일이 지닌 허위를 깨닫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더더욱 청년들 스스로가 목소리를 내야한다는 주장이 당위를 얻게 된다. 누군가에게 맡겨놓을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과 관계된 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행동에 옮겨야할 것이다. 저자도 이 부분을 지적하고 있으나, 이것은 '대표성'만으로 파악할 것이 아닌 듯 하다.
하필 아쉬운 점만을 콕 찝어 다루었으나, 이렇게까지 날카롭게 다루게 된 데에는 이 서평을 쓰고 있는 필자 역시 청년 세대이며 그래서 자신의 문제만큼은 적확히 다루어주길 바라는 욕심에 가깝다. 그래서 이쯤이면 되었다고 그치는 게 아니라, 더더욱 내용에 집중하며 한 장 한 장 읽어나갔다.
가정과 직장이라는 삶의 두 영역을 오가며, 그 와중에 책을 집필하고 우리 시대의 문제인 청년 정치에까지 관심의 촉수를 뻗친 저자의 노력에는 아무리 박수를 보내도 모자라다. 이 글의 목적은 책의 목적이나 가치를 비난하려는 바가 전연 없다. 그저 청년 세대의 일원이자 한 사람의 독자로서 애정을 가진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자 했다.
저자가 밝히듯이, 냉소로 일관할 것이 아니라 회의적이되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정치는 남이 해주는 일이 아니다. 우리의 삶과 연관된 문제이며 우리 자신의 일이기도 하다. 이 책은 독자로 하여 청년 정치가 처한 상황을 마주보게 한다. 그 자체로도 이미 책의 역할은 충실히 수행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