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오리진>을 읽고
어렸을 때는, 커피를 정말 싫어했다. 정확히는 믹스 커피를. 들척지근하고, 입안에 끈적끈적하게 남는 단맛은 물론이고 그 쓴맛까지. 어른들은 왜 그런 걸 마시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당시 두 살 어린 남동생은 잘만 얻어마시는데, 나는 고개를 저으며 완강히 거절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때 깨어있기 위해 캔커피를 마셨다. 여전히 맛은 모르겠지만, 카페인 덕에 말짱한 정신으로 늦은 밤까지 깨어있을 수 있었다. 대학에 들어와 커피를 처음 마셨을 때도 놀랐다. 이런 쓰기만 하고 맛없는 걸 돈을 주고 마신단 말인가? 그러던 내가 어느 사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커피를 마시고 있다니.
세월의 힘인가. 그도 아니면 커피의 매력인가. 둘 다일까? 커피의 맛을 알려면, 어떤 나이에 도달해야 하는 것이었을까? 어느 쪽이든 흥미로운 일이다. 아직 커피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러나 씁쓸한 맛을 넘어서 그 안에 숨겨진 복잡한 향기를 즐길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좀 더 커피에 대해서 알아보고 싶어 졌다.
그러다가 학교 도서관에 꽂힌 <커피 오리진>을 보게 되었다. 집었을 때만 해도, 이 책이 브런치 북 프로젝트로 출간되었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무심하게 책 옆 날개를 보는데 브런치 로고와 문구를 보고서 놀랐다. 일상에서 브런치 북을 실제로 확인하니 새삼스레 반가웠다.
여하간 반가움은 잠시 차치해두고서, <커피 오리진>은 커피에 대해 두루두루 다루고 있는 책이다. 서문에서 확인할 수 있는 저자의 이력이 흥미롭다. 애호하는 대상으로서 커피에 대한 관심을 이어오다가 결국에 커피 관련한 일을 하게 되었다니! 이 책은 저자가 맺어낸 또 다른 결실이라 할 수 있겠다.
책은 총 3장에 걸쳐서 구성되어 있다. 메뉴판에서 볼 수 있는 각각의 커피가 지닌 기원을 다룬 1장과 여러 나라를 오가며 커피에 대한 문화와 풍습을 다룬 2장, 커피 종의 기원과 현대의 커피 문화를 다룬 3장까지. 커피에 얽힌 다채로운 이야기를 풀어내는 과정에서 커피에 대한 저자의 마음 씀씀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저 '즐기는 대상'을 넘어서서 일자리, 나아가서는 삶의 중요한 영역이 된 커피. 그렇기에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저자는 다른 이들과는 다른 태도가 엿보인다. 인터넷에 검색하면 알 수 있는 정보라도 저자라는 필터를 통해서 보면 달라진다. 결코 어렵지 않으면서도 흥미를 유발할 수 있도록 뻔하지 않게 접근한다.
단순히 커피에 대한 개괄적인 정보를 소개하는 데 그쳤다면, 기존의 출판물은 물론 인터넷에 올라오는 정보와 차별점을 가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커피 오리진>은 한 편의 글로 정리되어있고, 나아가 커피에 대한 저자만의 고유한 시선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차이점을 지닌다.
'알고 마시면 더 맛있다'는 저자의 입장은, 책 전반에 반영되어 있다. 사소한 정보라 해도 커피에 대한 사실을 알려주고자 하는 바탕에는 그러한 배려가 깔려 있는 셈이다. 똑같은 커피를 마셔도 책을 읽고 나서는 그 맛을 괜히 음미해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시도를 통해 우리는 좀 더 '커피'와 가까워질 것이다.
아쉬웠던 점은 줄 바꿈이었다. 줄 바꿈 기준을 단어로 설정해놓아서 일정하지 않은 문단 형태가 외려 신경이 쓰였다. 가독성을 고려한 조치겠지만, 기존의 출판물에 익숙했던 탓에 어색하게 느껴졌다. 편집의 영역에서는 개인차가 있을 수 있고 이러한 스타일이 좀 더 편한 독자라면 장점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한 손에 들어오는 판본은 들고 다니며 읽기 좋았고, 간소한 디자인은 투박하지 않게끔 보이도록 배려한 결과물이 아닐까 싶다. 커피를 마시면서 이 책을 읽는 것도 좋을 것이다. 커피에 대해 알아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보는 건 어떨는지. 너무 무겁지 않지만 그럼에도 충분한 흥미가 생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