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 대한 의무>를 읽고
기후 변화에 대한 경고가 낡은 농담이 되어버린 시대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변화 정도를 넘어서 이미 위기의 한 복판에 와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닙니다. 다만 일상에서는 감지되지 않을 뿐입니다. 지구의 온도가 약 1도 올랐다고 해도, 그 여파를 정확하게 가늠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만약 작년 여름에 비해 올해 여름이 더 덥다면 그때보다 에어컨을 더 켜면 됩니다. 변화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딱 그정도입니다. 그러는 사이에도 지구는 점점 더 더워지고, 보이지 않는 수준에서 진행되던 기후 위기는 우리의 시야에도 분명히 들어오게 됩니다.
책 <지구에 대한 의무>는 플라스틱과 팜오일, 에어컨과 콘크리트 같이 일상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으면서도 예상도 못한 분야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소재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이것들이 없었더라면 현대사회가 유지되기란 불가능했겠지요. 그럼에도 무분별한 소비의 끝은 파국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책은 영국의 신문 <가디언>에서 발행하는 특집 기사 시리즈 <The long lead>의 글 중에서도 환경에 관한 다섯 편의 글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다섯 편의 글 각각 플라스틱, 팜오일, 에어컨, 콘크리트 그리고 빙하에 대해 다루고 있지요. 섬뜩한 진실 앞에서 당황하게 되기도 하고, 어찌할 바를 몰라 막막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결말을 알면서도 애써 모른척하고 있거나 지금 당장 일어날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이 악순환의 끈을 놓치 못하는 듯이 보입니다. 구체적인 양상을 조금만 들여다봐도 당장 모든 걸 그만둬야할 것 같지만 정작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막막하기 그지 없으니까요.
그나마 플라스틱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놀라울 정도로 바뀌었습니다. 카페에서 흔하게 사용되던 일회용 플라스틱 빨대가 종이 빨대로 바뀌고, 미세 플라스틱에 대한 경고문이 부착되는 등 다양한 곳에서 찾아볼 수 있게 되었지요. 하지만 그것으로 플라스틱과의 전쟁이 끝난 건 아닙니다.
플라스틱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할뿐,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으니까요. 뿐만 아니라, 팜오일과 아스팔트 등 현대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소비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수준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물론 다소 불편을 감수한다면 대체할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편리함에 길들여져 있던 소비자에게 갑자기 불편을 감수하라고 한다면 누구도 선뜻 나서기 어려울 겁니다.
가령 팜오일은 그 어떤 대체재보다 값싼 가격과 높은 단위 생산량 덕에 사랑받고 있습니다. 더욱이 팜오일의 원재료인 기름야자나무를 재배하는 산업이 가져다주는 이익은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등 여러 국가의 경기 부양과도 이어집니다. 에어컨과 아스팔트도 처지가 다르지 않습니다. 사회 변화, 그리고 산업 전반과 아주 긴밀하게 이어져있지요.
보다 자세한 내용은 책을 통해서 확인하시는 게 좋을 듯 합니다. 분량이 많지 않은데다 흥미로운 이야기라 금방 읽을 수 있으실 겁니다. 무엇보다 이런 류의 책은 직접 읽었을 때 훨씬 울림이 강하게 다가오니까요. 여기서는 책을 읽고 난 이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환경 문제에 관한 글을 읽을 때마다 마주하게 되는 감정은 '공포' 그리고 '무력감'입니다. 대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 하나가 바뀌어도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가령 대한민국에서 암만 재활용을 하든 자원을 아끼든,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와 중국-인도의 신흥 개발국의 자원 소모와 폐기량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압도적인 현실의 무게에 개인과 작은 사회의 의지는 무너져내립니다. 아무 의미도 없어보이지요. 그럼에도 우리가 무언가 해야한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정말로 아무 것도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주 작지만, 행동에 나선다면 결과는 달라집니다. 포기하고 주저앉는 것보다는 아주 조금이라도 말이지요.
책에서도 플라스틱의 사례를 듭니다. 물론 플라스틱에 대한 움직임만으로는 막을 수 없을 만큼, 기후 위기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그럼에도 플라스틱에서 일어난 변화는 21세기에 인간이 환경 변화를 두고 보여준 가장 책임감 있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어떻게 다른 분야로 행동을 옮겨나갈 것이냐. 또한 지금 우리가 선택한 삶의 방식이 과연 지속가능한 형태인지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 아니 현실을 직시해야합니다. 예를 들어 쉽게 티가 나지 않더라도 조금씩 사용량을 줄이는 것도 해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동안 몰랐더라면 이번 기회로 분명하게 파악하는 것도 작지만 의미 있는 한 걸음입니다. 알게 되었을 떄는 이전과 똑같을 수 없습니다. 문제 없이 보였던 우리의 현실에 균열이 생기죠. 거기서부터 무언가 변하기 시작합니다. 무지했던 과거를 두고 잘못을 따질 순 없지만, 이제는 그 책임을 따져야하는 단계가 아닐까요?
어느덧 2019년이 끝나가고 있습니다. 곧 있을 2020년, 무엇이 어떻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기후 위기를 돌이키기에는 늦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곳 지구에서 살아야 하고, 더이상 임박해있는 위기를 알면서도 모른 체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환경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싶은 분에게 이 책의 일독을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