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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Dec 23. 2019

매일 매일 생일 같기를.

<오늘 하루 짧은 글 한 편> 생일

2019년 12월 21일 토요일은 제 생일이었답니다. 하루도 아니고, 이틀이나 지나서 이제는 생일이라는 걸 말하기도 민망합니다. 가만히 보면 생일은 참 미묘한 개념입니다. 생일이 있는 그 달이나, 그 주부터 괜히 입이 근질근질하다가도 괜한 호들갑 같아서 애써 체면을 차리게 되지요. 막상 당일이 되면 별 일 없었다는 듯이 시큰둥하게 굴지만, 선물은 고사하고 축하한다는 말조차 없으면 또 섭섭하고 그렇습니다.


이 나이를 먹고도 생일이라고 하면 괜히 신나고 즐거운 일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주 조금은 있다는 걸 느낍니다. 그래서인지, 막상 생일이 되었을 때 혼자 집에 있으니까 어찌나 좀이 쑤시던지. 일부러 그랬던 건 아니지만 생일이랍시고 친구들과 약속도 잡는다거나 자신만의 특별한 행사 같은 걸 계획하지도 않았지요. 어쩌면 마법처럼 생일날 이벤트가 일어나기를 바랬던 건 아닌지. 스스로에게 되물어봅니다.


정말 그렇더라구요. 생일이니까.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했던 겁니다. 꼭 누군가가 해주지 않더라도, 굉장한 우연과 함께 즐거운 일이 일어날 거라고 내심 소망했었나 봅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당연하잖아요. 세상의 모든 게 그렇듯이 자기가 의도하지 않았던 일이 일어날 리는 거의 없으니까요.


특별함에 대해서도 다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생일이라고 특별해야할 것은 없지만, 만약 그다지 기대보다 특별하지 않았다면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을 거라고요. 첫 번째, 생일은 원래 특별한 일이 아니다. 음, 보통 그렇긴 하지만 너무 삭막한 답변이니 기각하겠습니다. 두 번째, 생일이 특별한 날은 맞다. 하지만 다른 날에 비해 더 특별할 이유는 없다. 이것도 꽤 그럴싸 하군요. 그러나 첫 번째처럼 냉소적이니 반려합니다.


마지막, 생일은 특별한 순간이 맞다. 그러나 생일의 특별함은 다른 순간과 견주었을 때 더 낫다고 말할 수 있는 종류의 개념이 아니다. 매 순간순간이 특별하듯이, 생일 역시도 동등하게 특별하다. 차라리 이게 마음에 좀 더 와닿더군요. 두 번째하고 뭐가 다르냐구요? 그렇네요. 말장난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작지만 큰 관점의 차이가 있습니다.


모든 순간은 비교 불가능한 단 한 번의 순간이며, 생일도 생일 자체로 특별하고 다른 하루도 다른 하루 자체로 특별하다는 거지요. 애초에 생일만을 특별하게 여겼다면, 생일 이외의 날은 평범하고 심지어는 하찮게 느껴졌을 겁니다. 모든 순간이 특별하지만, 그 날은 하필 생일이라 다른 이유로 특별한 것일뿐. 우리의 삶은 그 자체로 항상 특별하다고 여기는 쪽이 좀 더 즐겁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요?


2019년 12월도 벌써 끝을 향해 갑니다. 2019년 한 해가 마무리되어가는 시점에서, 이틀 전 생일을 홀로 보낸 제 자신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내며 이 글을 써봅니다. 꼭 특별한 하루가 아니었어도, 많은 분들이 축하를 해주셨고 어쩌면 제 자신만 그 날의 특별함을 눈여겨 보지 못한 건 아니었는지 반성도 해보구요. 모쪼록 여러분도 좋은 하루 되시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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