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짧은 글 한 편] 새해
2020년 경자년의 해가 밝았습니다. 새해가 되었으니 뭐라도 글을 써야 하는데, 막상 쓰려고 하면 늘 쓰던 내용을 말만 바꾸어서 올릴 게 뻔해 보였습니다. 시작이니 끝이니 하는 식의 글은 몇 번이고 썼는데 새해도 되었으니 레퍼토리를 좀 갱신(?)해야 되는 게 아닌가 싶어 한참 고민을 하고 있었지요.
문득 새해 복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우리는 연말 연초에 그렇게 새해 복을 서로 나누고 있는데 대체 그 많던 새해 복은 어디로 간 건지. 연말이 되어 지난 한 해를 돌아보니, 그렇게 빌었던들 진정으로 복 많은 한 해였는지 의구심이 들지 뭡니까. 다음 한 해도 그리 다를 것 같지는 않습니다.
결국 빌어야 했던 건 서로의 '복'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가 아니었을까요? 문득 이번 새해, 2020년에는 '복'을 넘어서서 다른 무언가를 나누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그렇게 이번 글의 시작을 밝히며 한 번 이야기를 이어나가 보려고 합니다.
세계 곳곳의 새해 인사를 찾아보면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공통적으로 다가올 한 해에 대한 기대감과 더불어 서로의 안녕이 묻어 나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한국인이라 한국어 인사말이 괜히 정겹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나마 영어로 된 Happy New yeay 정도가 뒤를 잇지만 뭔가 '맛'이 부족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이거야말로 한국 사람이 쓸법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학업, 일, 재물, 애정 등 인간의 대소사 중 어느 것 할 것 없이 두루뭉술하게 모든 일이 잘 되기를 바란다는 마음이 물씬 느껴지지 않습니까? 아마도 복 자체가 가지는 친숙함 때문인 듯합니다.
'복'이라는 표현을 요즘은 일상적으로 쓰이지는 않아도, 그 흔적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행복할 때의 '복'도 그 복이고, 다리를 떨면 복 떨어진다든지 복스럽게 생겼다든지 등등. 운과 비슷하다면 비슷한 이 '복'을 구태여 나누어 쓰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운수 대통하라는 말도 좋지만, 어쩐지 '새해 복'이 주는 느낌이 없습니다. 중도가 주는 겸허함이 부족하다고 해야 할는지. 지나치면 부족한 만 못하다고. 운수가 좋은 거야 더할 나위 없겠지만, 영영 계속될 리 없다는 걸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갑자기 주어진 큰 행운이 도리어 재난을 불러올 때도 있고요.
복은 적당히, 그러나 평소보다는 분명히 더 나은 어떤 상태를 암시합니다. 지금보다는 더 좋고, 만족스러운 상황이 되기를 빌어준다는 인상 덕에 인사로 건네기에 이만한 표현이 더 없습니다. 또한 복은 외부를 통해 나에게 오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만드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조상들은 행동으로 복을 쫓아내거나 불러올 수 있다고 믿었죠.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다리를 떨면 복이 달아난다' 내지는 '복스럽게 생겼다. 먹는다.'는 표현이 다 그렇지요. 복이 하늘에서 주어진다고 해도 받는 사람의 역할 역시 강조됩니다.
이렇듯 복이라는 단어에서는 어쩐지 종교적인 색채마저 느껴집니다. 그렇다고 종교에서 유래된 단어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를 국립국어원에서도 밝히고 있지요. 누군가에게 빌어야 한다, 즉 외부에서 작용한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보니 그런 분위기가 묻어 나올 뿐입니다.
https://www.korean.go.kr/front/onlineQna/onlineQnaView.do?mn_id=216&qna_seq=73347
이렇게 '복'이 좋다는데, 부득부득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에 건 이유가 있습니다. 막상 연말연시가 되고 보니 복이 하나도 없으니까 그렇습니다. 혹시나 나도 그렇고 상대방도 그렇고 말만 복 받으라고 했지 복을 제대로 내어주지 않은 게 아닐까요? 그렇지 않다면 어디 복의 흔적이라도 남아야 하는 게 맞잖아요.
어쩌면 '복'을 준다거나, 받으라는 말부터 잘못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더 이상 '운'이 아니면 기댈 데가 없는 사회가 되었으니 '복' 같은 건 없다고 자조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의도는 아닙니다. 오히려 '복'이 외부에서 온다는 전제부터 다시 생각해보자는 거지요.
여기서 복을 불러올 수 있다, 만들 수 있다고 믿었던 조상의 지혜(?)를 다시 한번 불러올 필요가 있습니다. 굴러 떨어진 복도 걷어차고 있었던 건 아닌지, 아니면 '복'인지 아닌지 찍어먹고 알아보기도 전에 갖다 버린 건 아닌지 한 번 스스로 돌이켜 봐야 한다는 거죠.
결국 하고 싶었던 말은 간단합니다. 이번 2020년 새해에는 새해 복을 받는 게 아니라 만들어나가는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부족하니까 더 많이 받을 게 아니라, 무엇을 얼마나 받았는지 제대로 아는 데서부터 시작해보자는 거죠.
혹시나하고 찾아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을 다룬 비슷한 내용의 칼럼이 있더군요. 사람의 생각이 다 거기서 거기라지만, 이럴 때는 참 민망합니다. 누군가 이미 한 말을 구태여 또 반복한 셈이 되니, 이거야 원. 무의식적인 복제라고 해야 하나요?
그러니 더더욱 몇 글자 더 보태보겠습니다. 2019년은 끝났습니다. 그러나 달력의 표기상으로 끝났을 뿐, 2020년이라는 '새해'가 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끝없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으며, 2019년이 완전히 끝난 것처럼 보여도 그 연속선상에 우리의 삶이 놓여있으니까요.
그럼에도 2019년이 끝났다는 것 또한 명백한 사실입니다. 웬 말장난이냐고요? 지나가버린 한 해를 더 이상 아쉬움이라는 이유로 붙잡지 말자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잊어서는 안 되겠죠. 똑같은 잘못이나 후회를 반복해서는 안 되니까요. 그렇지만 매 순간 새롭게 살아가야 합니다.
늘상 똑같았던 '한 해'의 반복, 연속이 아니라, 2020년 하루하루가 여러분에게 의미 있고 새로운 나날이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보다는 다른 말로 인사드리고 싶었습니다. 올 한 해, 부디 '복 만드는 새해'가 되시기를 바라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