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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Jan 01. 2020

새해 복 만드는 한 해 보내세요

[오늘 하루 짧은 글 한 편] 새해


그 많던 새해 복은 다 어디 갔을까

2020년 경자년의 해가 밝았습니다. 새해가 되었으니 뭐라도 글을 써야 하는데, 막상 쓰려고 하면 늘 쓰던 내용을 말만 바꾸어서 올릴 게 뻔해 보였습니다. 시작이니 끝이니 하는 식의 글은 몇 번이고 썼는데 새해도 되었으니 레퍼토리를 좀 갱신(?)해야 되는 게 아닌가 싶어 한참 고민을 하고 있었지요.


문득 새해 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우리는 연말 연초에 그렇게 새해 복을 서로 나누고 있는데 대체 그 많던 새해 복은 어디로 간 건지. 연말이 되어 지난 한 해를 돌아보니, 그렇게 빌었던들 진정으로 복 많은 한 해였는지 의구심이 들지 뭡니까. 다음 한 해도 그리 다를 것 같지는 않습니다.


결국 빌어야 했던 건 서로의 ''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가 아니었을까요? 문득 이번 새해, 2020년에는 '복'을 넘어서서 다른 무언가를 나누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그렇게 이번 글의 시작을 밝히며 한 번 이야기를 이어나가 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무슨 민족입니까

세계 곳곳의 새해 인사를 찾아보면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공통적으로 다가올 한 해에 대한 기대감과 더불어 서로의 안녕이 묻어 나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한국인이라 한국어 인사말이 괜히 정겹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나마 영어로 된 Happy New yeay 정도가 뒤를 잇지만 뭔가 '맛'이 부족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이거야말로 한국 사람이 쓸법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학업, 일, 재물, 애정 등 인간의 대소사 중 어느 것 할 것 없이 두루뭉술하게 모든 일이 잘 되기를 바란다는 마음이 물씬 느껴지지 않습니까? 아마도 복 자체가 가지는 친숙함 때문인 듯합니다.


'복'이라는 표현을 요즘은 일상적으로 쓰이지는 않아도, 그 흔적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행복할 때의 '복'도 그 복이고, 다리를 떨면 복 떨어진다든지 복스럽게 생겼다든지 등등. 운과 비슷하다면 비슷한 이 '복'을 구태여 나누어 쓰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여러 가지 복. 그래도 하필 복.

운수 대통하라는 말도 좋지만, 어쩐지 '새해 복'이 주는 느낌이 없습니다. 중도가 주는 겸허함이 부족하다고 해야 할는지. 지나치면 부족한 만 못하다고. 운수가 좋은 거야 더할 나위 없겠지만, 영영 계속될 리 없다는 걸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갑자기 주어진 큰 행운이 도리어 재난을 불러올 때도 있고요.


복은 적당히, 그러나 평소보다는 분명히 더 나은 어떤 상태를 암시합니다. 지금보다는 더 좋고, 만족스러운 상황이 되기를 빌어준다는 인상 덕에 인사로 건네기에 이만한 표현이 더 없습니다. 또한 복은 외부를 통해 나에게 오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만드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조상들은 행동으로 복을 쫓아내거나 불러올 수 있다고 믿었죠.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다리를 떨면 복이 달아난다' 내지는 '복스럽게 생겼다. 먹는다.'는 표현이 다 그렇지요. 복이 하늘에서 주어진다고 해도 받는 사람의 역할 역시 강조됩니다.


이렇듯 복이라는 단어에서는 어쩐지 종교적인 색채마저 느껴집니다. 그렇다고 종교에서 유래된 단어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를 국립국어원에서도 밝히고 있지요. 누군가에게 빌어야 한다, 즉 외부에서 작용한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보니 그런 분위기가 묻어 나올 뿐입니다.


https://www.korean.go.kr/front/onlineQna/onlineQnaView.do?mn_id=216&qna_seq=73347


'받는' 복도 좋지만.

이렇게 '복'이 좋다는데, 부득부득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에 건 이유가 있습니다. 막상 연말연시가 되고 보니 복이 하나도 없으니까 그렇습니다. 혹시나 나도 그렇고 상대방도 그렇고 말만 복 받으라고 했지 복을 제대로 내어주지 않은 게 아닐까요? 그렇지 않다면 어디 복의 흔적이라도 남아야 하는 게 맞잖아요.


어쩌면 '복'을 준다거나, 받으라는 말부터 잘못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더 이상 '운'이 아니면 기댈 데가 없는 사회가 되었으니 '복' 같은 건 없다고 자조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의도는 아닙니다. 오히려 '복'이 외부에서 온다는 전제부터 다시 생각해보자는 거지요.


여기서 복을 불러올 수 있다, 만들 수 있다고 믿었던 조상의 지혜(?)를 다시 한번 불러올 필요가 있습니다. 굴러 떨어진 복도 걷어차고 있었던 건 아닌지, 아니면 '복'인지 아닌지 찍어먹고 알아보기도 전에 갖다 버린 건 아닌지 한 번 스스로 돌이켜 봐야 한다는 거죠. 


새해 복 많이 받지 마세요

결국 하고 싶었던 말은 간단합니다. 이번 2020년 새해에는 새해 복을 받는 게 아니라 만들어나가는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부족하니까 더 많이 받을 게 아니라, 무엇을 얼마나 받았는지 제대로 아는 데서부터 시작해보자는 거죠.


혹시나하고 찾아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을 다룬 비슷한 내용의 칼럼이 있더군요. 사람의 생각이 다 거기서 거기라지만, 이럴 때는 참 민망합니다. 누군가 이미 한 말을 구태여 또 반복한 셈이 되니, 이거야 원. 무의식적인 복제라고 해야 하나요?


http://m.cjwn.com/27546


그러니 더더욱 몇 글자 더 보태보겠습니다. 2019년은 끝났습니다. 그러나 달력의 표기상으로 끝났을 뿐, 2020년이라는 '새해'가 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끝없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으며, 2019년이 완전히 끝난 것처럼 보여도 그 연속선상에 우리의 삶이 놓여있으니까요.


그럼에도 2019년이 끝났다는 것 또한 명백한 사실입니다. 웬 말장난이냐고요? 지나가버린 한 해를 더 이상 아쉬움이라는 이유로 붙잡지 말자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잊어서는 안 되겠죠. 똑같은 잘못이나 후회를 반복해서는 안 되니까요. 그렇지만 매 순간 새롭게 살아가야 합니다. 


복 만드는 새해가 되기를!

늘상 똑같았던 '한 해'의 반복, 연속이 아니라, 2020년 하루하루가 여러분에게 의미 있고 새로운 나날이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보다는 다른 말로 인사드리고 싶었습니다. 올 한 해, 부디 '복 만드는 새해'가 되시기를 바라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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