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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Jan 22. 2020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갈 지혜

<앨런 튜링 - 지능에 관하여>를 읽고

<앨런 튜링 - 지능에 관하여> 앨런 튜링 글, 노승영 옮김, 곽재식 해제


앨런 튜링은 현대의 컴퓨터는 물론이요 인공지능의 가능성을 점친 과학자다. 그러나 튜링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라고는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에서 다루어진 정도가 전부였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군의 암호 기계 '에니그마'를 해석하는 데에 성공해 연합군의 승리에 지대한 공헌을 했으나, 성적 지향 때문에 제도의 압박을 받은 끝에 자살을 선택하고 말았다는, 극히 일부의 사실뿐.


이마저도 영화의 내용이니 사실과는 다소 거리가 있을 것이다. 과학자, 그리고 학자로서 앨런 튜링의 업적을 제대로 알 기회가 없었다. 그러던 차, <앨런 튜링 - 지능에 관하여>을 도서관 서가에서 보게 되었고 튜링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될 좋은 기회라 판단해 읽게 되었다.




책 <앨런 튜링 - 지능에 관하여>는 앨런 튜링의 논문은 물론, 강연의 원고까지 총 다섯 편의 글을 소개하고 있다. 당시로서는 잠꼬대 같은 소리에 불과했을 인공지능의 출현과 가능성을 예견한 두 편의 논문 <지능을 가진 기계>와 <계산 기계와 지능>, 맨체스터와 BBC에서 이루어진 강연의 원고인 <지능을 가진 기계라는 이단적 이론>과 <디지털 컴퓨터가 생각할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컴퓨터가 체스의 행마를 둘 수 있게끔 알고리즘으로 구현한 <체스>가 수록되어 있다.


수식이나 용어의 난해함으로 인해 논문을 100%를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튜링이 견지하고 있는 시각만 하더라도 이 책을 읽어볼 이유로는 충분하다. 디지털 컴퓨터와 인공지능이 언제쯤 가능할 것인지를 상당히 정확하게 예측하고 있음은 물론(20세기 말, 혹은 50년 안) 인간의 지능과 자유의지를 바라보는 시선 역시 특기할 만하다.


튜링 테스트로 알려진 '이미테이션 게임(흉내 게임)'이 단적인 예다. 인간은 특정한 대상이 지능을 가지고 있는가를 판단할 때에 아주 엄밀한 기준을 적용하기보다는 그 대상이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행동이나 인간과 아주 흡사한, '지능이 필요할 것' 같은 행위를 통하여 가늠하는데, 이 연장선상에서 만약 기계가 사람과 아주 유사하게 대화할 수 있다면 지능이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능'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지능 혹은 생각하는 능력은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능력이라고 할 수 있을까? 튜링은 만능 컴퓨터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사고 과정에 대한 유비 추리를 보여준다. 복잡하며 고도의 연산 과정이라 여겨지는 생각은 기실 아주 단순한 과정의 무수히 많은 나열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튜링의 논문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뒤따르는 의문이 있다. '기계가 인간의 모든 기능, 심지어는 생각마저 따라 할 수 있다면 대체 기계와 대별되는 '인간만의 고유한 능력'은 무엇인가?' 유감스럽게도 그에 대한 답은 '없다'일 것이다. 튜링 역시도 자신은 그 어떤 위안도 줄 수 없다고 밝힌다. 그럼에도 튜링의 태도로부터 우리는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갈 지혜를 배울 수 있다.


무작정 인공지능의 도래를 두려워하고, 이를 부정할 것이 아니라 다가올 것이며 또한 이미 도래한 분명한 사실로서 인정하고 그에 따른 현실적인 방안을 마련해나가는 것이다. 인공지능이라는 개념이 허황된 상상에 불과했을 시대에, 튜링은 그 가능성을 검토한 후 이를 진지하게 따져보지 않았는가.


인공지능에 대한 무수한 오해들, 인간의 존엄성이 무너질 것이라거나, 인간 존재의 기반이 흔들릴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은 인공지능에 대한 이성적 접근을 더디게 할 뿐이다. 오히려 우리는 '인공지능' 덕분에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게 될지도 모른다. 다가올 인공지능, 4차 산업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튜링의 관점이 절실히 필요하다.




충격적이었던 알파고의 등장 이후로 5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 이후로 인공지능에 관한 대중적 관심은 사그라들었을지언정 기술 개발은 진일보를 거듭하고 있을 것이다. 또한 알게 모르게 우리의 일상 곳곳에서 인공지능이 활용되고 있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기술 변화가 우리 눈에 보이는 형태로 나타났을 때, 그 변화에 휩쓸려갈 것이 아니라 다가올 인공지능 시대에 벌어질 문제를 미리 논의해보는 것은 어떨까? 구체적인 논의가 너무 어렵다면, 앨런 튜링이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서 그리 멀지 않은 미래인 4차 산업 혁명 시대를 살아갈 지혜를 배워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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