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휘둘리는 당신에게>를 읽고
책의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았다. 책 전체를 감히 요약할 수는 없겠지만, 저자가 심리학을 통하여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은 것은 건강한 삶의 자세다. '나'와 '너' 그리고 '우리' 사이에서, '나'를 잃지 않되, 그 와중에 '너'와 '우리'에 대한 따스한 시선은 물론 철두철미한 원리원칙을 바탕으로 분별력이 있으며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개인으로 존재할 것. 그에 결부해 책의 내용을 좀 더 이야기해봐도 좋을 것 같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종종 다음과 같은 글이 올라온다.
독방에서 O 년 살고 나오면, O억을 준다고 하면 하냐?
기간과 액수는 게시글을 작성하는 이마다 다르게 작성하지만, 대체로 돌아오는 답변은 '100% 가능하다'는 긍정의 응답이 주를 이룬다. 이 웃지 못할 반응 속에는 어차피 지금도 사람들과 그다지 만나지 않으니 독방 생활과 다를 바 없다는 식의 자조가 섞여있다.
독방살이와 그에 대한 금전적 보상을 둘러싼 이러한 인터넷 논쟁은, 그저 '농담'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 적지 않은 이들이 사회적 고립을 느끼고 있다는 증거일 수 있으며, 혹은 충분한 보상만 주어진다면 사회적 관계를 포기할 수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방, 즉 모든 관계가 상실된 상황은 인간을 파괴한다. 책에서도 '독방 신드롬'과 그에 대한 사례를 소개한다. 인간은 혼자 있을 때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의 진위 여부조차 쉽사리 판단하기 어려워지고 나아가 자해를 하고, 자기 통제를 완전히 상실한다는 것이다.
물론 현실은 스펙터클한 법이라 한 달 간의 독방살이를 하면 1억을 받는다는 조건의 내기를 실제로 성공한 사람이 있기는 하다. 더 가디언에 기사가 올라왔을 정도니, 신뢰해볼 법하다. 그러나 이것조차 '평생에 걸친 혹은 장기간의 독방 살이'가 가능하다는 말은 아니다. 이것도 '한 달'이라는 조건이 걸려있었을 뿐이므로.
( 링크 : https://www.theguardian.com/sport/2019/jan/10/rich-alati-poker-player-bet-dark-room-isolation )
관계를 어디까지로 볼 것이냐도 생각해볼거리다. 대화가 오고 가고 친밀한 것만이 '관계'라고 할 수는 없다. 물론 인간에게는 '친밀한 관계'의 여부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인간은 아주 가느다라지만 수십수백의 관계를 통해 지탱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과거에 범죄자를 마을에서 추방하거나, 사회적 신분을 말소하는 등의 처벌이 있었던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건강한 관계, 그리고 관계 속에서 '나'라는 존재를 잃지 않는 일은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한 가지 더 고민해볼 사항이 있다. 바로 '욕망'이다.
인간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욕망하는 동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우리가 무엇을 욕망하며, 이 욕망은 '누구'의 것인가 하는 점이다. 알게 모르게 타인의 욕망을 우리 자신의 것으로 여기고 추구한다면 그 삶은 그리 행복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자크 라캉의 저 유명한 경구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말은 인간의 생리를 꿰뚫은 실로 예리한 통찰이라 하겠다.
지금까지 나의 욕망이라고 믿었던 건 타인의 욕망이었으니 이제부터라도 진짜 나의 욕망으로 돌아가려고 해도, 자신의 욕망 같은 건 처음부터 없다는 게 문제다.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며 부모와 사회로부터 영향을 받는 과정에서 자연히 욕망 또한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의 것을 찾자는 건 애초부터 성립하지 않는 소리가 아닌가. 그러면 여기서 '욕망' 자체를 거꾸로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 욕망은 자기 자신의 것이 아닌 것도 틀림 없다. 그리고 진짜 나의 욕망이라는 것도 있을 수 없다. 그러면 '나'는 어떠해야한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착각 아니었을까? 혹시나 스스로를 자꾸만 어떤 모습, 어떤 인간으로 정의하고자 했다면 그런 시도 자체가 억압으로 작용한다는 걸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즉, 욕망은 물론 나라는 존재에 대한 규정에서부터 한 발짝 떼어보는 것이다.
물론 어려운 일이다. 그 과정에서 자기자비와 어쩌면 마음챙김 명상이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허용하고, 실수까지도 너그럽게 용서하는 것이다. 단순한 합리화와는 다르다. 받아들임에 대한 것은 또 다른 책에서 살펴보아야 하므로 일단은 여기서 그치도록 하겠다.
우리는 평생을 살아가며 관계 속에 놓일 것이다. '나'라는 존재도 의문투성이지만, 그런 불가사의한 존재인 '나'와 마주하고 있는 상대방인 '너' 역시도 알 수 없기는 매한가지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려고 한들, 아마 평생이 걸려도 절반을 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아니, 우리는 죽는 순간까지 '자기 자신' 그리고 '타인'에 대해 완벽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지난하기 그지없는 '관계'에 대한 고민은 한 사람의 삶이 시작된 순간부터 계속되어 마지막으로 호흡하는 순간까지 가져가야 하는 궁극의 과제일 것이다.
이 난해함과 어려움을 떠올리기만 해도 진저리가 난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우리는 살아야 하고, 혼자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존재인 것을. 그 어려움까지도 즐겁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때에 심리학과 바로 이 책이 주는 지혜는 시행착오를 줄여나가며 좀 더 나은 모습이 되는 데에 도움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