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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Feb 05. 2020

관계로 곤란한 이들을 위한 심리학

<여전히 휘둘리는 당신에게>를 읽고

우리가 심리를 알고 싶어 하는 이유

실로 수많은 심리학 관련 서적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각종 사회 문제는 물론 인간관계로 지친 현대인에게 모든 사태의 핵심인 인간과 그 행동의 원리인 심리를 분석한다는 '심리학'이라는 학문은 그럴싸한 설명은 물론 위로까지 제공해준다. 그러니 심리학이 서점 한 편에 별도의 공간을 차지해도 이상할 게 전혀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의 삶이 나아지는 게 없고 그대로이거나 심지어는 불행하기만 하다면 왜일까? 대부분의 심리학 서적이 제공하는 위안이란 잠깐의 도피일 뿐 우리를 둘러싼 문제 자체는 어쩌지는 못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심리학의 잘못은 아니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게 사실이다.


여하간, 심리학 자체가 무용하다는 건 아니다. 어떤 종류의 불합리한 일이 나에게만 해당하는 느낌이 들 때 느껴지는, 억울함과 막연한 공포를 남들도 똑같이 겪는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일부 해소되기도 하니까. 더욱이 그것이 단순히 '느낌' 같이 주관적인 영역이 아니라 과학을 통해 실증적으로 밝혀졌으며 객관성을 어느 수준 담보하고 있다면 말이다.


책 <여전히 휘둘리는 당신에게>

<여전히 휘둘리는 당신에게> 박진영 지음


오늘 소개할 책 <여전히 휘둘리는 당신에게>는 인간관계로 고민하고 있을 이들에게 위로에만 머물지 않고, 삶에 대한 지침서가 되어줄 수 있는 책이다. 다른 심리학도 비슷한 역할을 하지만, 내면에서 소용돌이치는 감정의 이유는 물론 과학적 실험을 통해 밝혀진 사실에 덧붙여 향후 인생을 살아가며 어떻게 이러한 감정을 다루어야 할지, 그 방법을 저자의 생생한 고민과 함께 소개하기에 더할 나위 없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1장에서 3장)

책은 총 6장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나'라는 사람이 관계에서 느끼는 감정, 대표적으로 외로움을 다루고 있다. 왜 인간이 타인을 원하는지, 외로움을 느끼는 이유와 그러면서도 관계에 대한 공포와 거부감을 보이는 이중성에 대해 현생 인류가 발전해온 역사를 비추어 살펴본다. 나아가 행복하려면 어째서 '남'이 필요한지도 다루며 '관계'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를 덧붙인다.


이렇게 인간이 타인을 원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1장에서 알아보았다면, 이어지는 2장은 관계 속에서 '나'를 잃게 되는 상황을 다룬다. 외부의 시선에 맞추어 스스로를 검열하고, 자기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보다 타인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이라 착각하며 살아가게 되는 이유와 그로 인한 문제는 대부분의 현대인이 공감할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느낀 감정의 이유와 그로 인한 문제를 알아보았으니 '해결책'도 알아보는 게 수순일 것이다. 3장은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자기 자신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과 마음가짐을 살펴본다. 심리학 서적이 이 부분에서 모호한 방법론을 제시하거나, 위로에서 그치고 만다면 이 책 <여전히 휘둘리는 당신에게>의 경우, 우리가 삶 속에서 중심을 잃지 않기 위한 태도를 과학의 시선을 빌려와 설명해준다.


'너'는 도대체 왜 그럴까 (4장에서 5장)

1장부터 3장에 이르기까지 ''를 살펴보았다면, '관계'를 이루고 있는 존재인 ''를 알아볼 필요도 있다. 4장은 '너', 즉 타인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혹은 내가 '타인'을 생각하는 방식에 대해 다루고 있다.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타인에 대한 판단이 과연 옳기만 한 것인지, 그 방향성을 검토하고 더불어 살기 위한 지혜를 심리학으로부터 배울 수 있다.


5장은 4장의 연장선상에서 관계와 집단 내에 존재하는 구도가 어떻게 인간 행동과 심리에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한다. 직장 상사와 부하 직원, 남자와 여자, 권력 구도가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관계에서 인간의 행동이 얼마나 크게 변하는지를 '주관적인 느낌'이 아니라 과학의 시선을 통해 알게 되는 것은 어떤 면에서 쾌감까지 선사한다.


우리로 살아가기 (6장)

마지막 6장은 나와 너를 통틀어 살펴본 인간관계의 도식을 하나의 기준으로 삼아서 이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한 방법과 마음가짐을 한 번 더 정리한다. 전체적으로 책의 구성을 살펴보았을 때 '나'로부터 시작해 '너'를 거쳐서 마침내 '우리'로 이어지는 구도는 인간과 관계라는 주제를 다루는 접근 방식으로도 탁월하며, 독자가 책의 마지막까지 흥미를 유지할 수 있게끔 해준다.


책의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았다. 책 전체를 감히 요약할 수는 없겠지만, 저자가 심리학을 통하여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은 것은 건강한 삶의 자세다. '나'와 '너' 그리고 '우리' 사이에서, '나'를 잃지 않되, 그 와중에 '너'와 '우리'에 대한 따스한 시선은 물론 철두철미한 원리원칙을 바탕으로 분별력이 있으며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개인으로 존재할 것. 그에 결부해 책의 내용을 이야기해봐도 좋을 것 같다.


여기 10억이 있습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종종 다음과 같은 글이 올라온다.


독방에서 O 년 살고 나오면, O억을 준다고 하면 하냐? 

기간과 액수는 게시글을 작성하는 이마다 다르게 작성하지만, 대체로 돌아오는 답변은 '100% 가능하다'는 긍정의 응답이 주를 이룬다. 이 웃지 못할 반응 속에는 어차피 지금도 사람들과 그다지 만나지 않으니 독방 생활과 다를 바 없다는 식의 자조가 섞여있다.


독방살이와 그에 대한 금전적 보상을 둘러싼 이러한 인터넷 논쟁은, 그저 '농담'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 적지 않은 이들이 사회적 고립을 느끼고 있다는 증거일 수 있으며, 혹은 충분한 보상만 주어진다면 사회적 관계를 포기할 수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방, 즉 모든 관계가 상실된 상황은 인간을 파괴한다. 책에서도 '독방 신드롬'과 그에 대한 사례를 소개한다. 인간은 혼자 있을 때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의 진위 여부조차 쉽사리 판단하기 어려워지고 나아가 자해를 하고, 자기 통제를 완전히 상실한다는 것이다.


물론 현실은 스펙터클한 법이라 한 달 간의 독방살이를 하면 1억을 받는다는 조건의 내기를 실제로 성공한 사람이 있기는 하다. 더 가디언에 기사가 올라왔을 정도니, 신뢰해볼 법하다. 그러나 이것조차 '평생에 걸친 혹은 장기간의 독방 살이'가 가능하다는 말은 아니다. 이것도 '한 달'이라는 조건이 걸려있었을 뿐이므로.


( 링크 : https://www.theguardian.com/sport/2019/jan/10/rich-alati-poker-player-bet-dark-room-isolation )


관계를 어디까지로 볼 것이냐도 생각해볼거리다. 대화가 오고 가고 친밀한 것만이 '관계'라고 할 수는 없다. 물론 인간에게는 '친밀한 관계'의 여부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인간은 아주 가느다라지만 수십수백의 관계를 통해 지탱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과거에 범죄자를 마을에서 추방하거나, 사회적 신분을 말소하는 등의 처벌이 있었던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건강한 관계, 그리고 관계 속에서 '나'라는 존재를 잃지 않는 일은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한 가지 더 고민해볼 사항이 있다. 바로 '욕망'이다.


나는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

인간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욕망하는 동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우리가 무엇을 욕망하며, 이 욕망은 '누구'의 것인가 하는 점이다. 알게 모르게 타인의 욕망을 우리 자신의 것으로 여기고 추구한다면 그 삶은 그리 행복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자크 라캉의 저 유명한 경구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말은 인간의 생리를 꿰뚫은 실로 예리한 통찰이라 하겠다.


지금까지 나의 욕망이라고 믿었던 건 타인의 욕망이었으니 이제부터라도 진짜 나의 욕망으로 돌아가려고 해도, 자신의 욕망 같은 건 처음부터 없다는 게 문제다.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며 부모와 사회로부터 영향을 받는 과정에서 자연히 욕망 또한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의 것을 찾자는 건 애초부터 성립하지 않는 소리가 아닌가. 그러면 여기서 '욕망' 자체를 거꾸로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 욕망은 자기 자신의 것이 아닌 것도 틀림 없다. 그리고 진짜 나의 욕망이라는 것도 있을 수 없다. 그러면 '나'는 어떠해야한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착각 아니었을까? 혹시나 스스로를 자꾸만 어떤 모습, 어떤 인간으로 정의하고자 했다면 그런 시도 자체가 억압으로 작용한다는 걸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즉, 욕망은 물론 나라는 존재에 대한 규정에서부터 한 발짝 떼어보는 것이다.


물론 어려운 일이다. 그 과정에서 자기자비와 어쩌면 마음챙김 명상이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허용하고, 실수까지도 너그럽게 용서하는 것이다. 단순한 합리화와는 다르다. 받아들임에 대한 것은 또 다른 책에서 살펴보아야 하므로 일단은 여기서 그치도록 하겠다.


관계라는 우주 속에서.

우리는 평생을 살아가며 관계 속에 놓일 것이다. '나'라는 존재도 의문투성이지만, 그런 불가사의한 존재인 '나'와 마주하고 있는 상대방인 '너' 역시도 알 수 없기는 매한가지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려고 한들, 아마 평생이 걸려도 절반을 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아니, 우리는 죽는 순간까지 '자기 자신' 그리고 '타인'에 대해 완벽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지난하기 그지없는 '관계'에 대한 고민은 한 사람의 삶이 시작된 순간부터 계속되어 마지막으로 호흡하는 순간까지 가져가야 하는 궁극의 과제일 것이다.


이 난해함과 어려움을 떠올리기만 해도 진저리가 난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우리는 살아야 하고, 혼자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존재인 것을. 그 어려움까지도 즐겁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때에 심리학과 바로 이 책이 주는 지혜는 시행착오를 줄여나가며 좀 더 나은 모습이 되는 데에 도움이 되어줄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훌륭한 점은 저자가 심리학을 배웠다고 관계에 통달했다며 호언장담하는 게 아닌, 자신 역시도 배워가는 여정에 있다고 고백한다는 점에 있다. 또한 과거와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는 과정 속에서 자신의 모자람을 인정하고 수용하려는 태도는 우리로 하여 너무 애쓰지 않아도 좋다는 위로가 되기도 한다.


관계로 지쳤거나, 관계에 대해 궁금한 당신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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