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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Feb 20. 2020

조금은 환상적인 이야기(S.F)

소설 <얼음 고래>를 읽고

<얼음 고래>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이윤정 옮김


독서 모임에서의 인연

한 달 전, 독서모임을 나갔을 때입니다. 그날은 각자 추천하고 싶은 책을 한 권씩 들고 오는 자리였습니다. 저마다 가져온 책도 다르고, 추천하는 이유도 제각각이라 흥미로웠는데, 유독 그중에서도 한 권의 소설이 아주 인상 깊게 남아있습니다. 바로 오늘 소개할 소설, 츠지무라 미즈키의 <얼음고래>입니다.


소개하신 분이 소설에 가지고 있는 애정이 느껴진 것도 물론이었지만, 작가로서의 개성, 소위 오리지널리티와 연관된 소설의 매력에 대한 의견이 뇌리에 강하게 남았습니다. 단점 하나 없이 그저 잘 쓰기만한 소설이었더라면 가지지 못했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 비져나오는 그 투박함.


어설프지만, 거기에서 바로 소설의 매력이 나오는 것이라고. 소설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무언가를 분명하게 드러내기 위해서 여타의 문제도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것. 이런 태도야말로 소설 <얼음고래>가 가진 매력 중 하나라는 말에,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되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도 소설은 그런 거니까요.


소설 <얼음고래> 소개

그 후 며칠 지나지 않아, 도서관에서 우연히 서가에 꽂힌 <얼음고래>를 발견하게 됩니다. 독서 모임 이후로 한 번 읽어봐도 좋겠다 싶던 차에 참말이지 기막힌 우연이었지요. 설 연휴 중 하루를 정해놓고 그날 종일 책을 읽었습니다. 오랜만에 좋은 이야기를 읽었더니 내내 즐거웠습니다.


소설 외적인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소설은 2008년에 출간되었으나 절판되었고, 팬들의 성원이 닿아 최근 재출간되었습니다. 재출간된 소설의 멋들어진 표지는 괜히 한 번 책을 펴보고 싶게 만들 정도입니다. 관련 후원은 이미 끝났으나, 참고하시라는 의미에서 아래에 링크를 첨부합니다.


https://tumblbug.com/bookinhand01


책의 각 장은 한일 양국에서 잘 알려진 후지코.F.후지오의 만화 <도라에몽>에 등장하는 도구에서 따왔으며 그 장을 관통하는 주제나 주된 흐름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어쩌면 소설이 추구하는 주제의식과도 큰 관련이 있습니다. 인간을 향한 따스한 관심이라고 해야하나요.


소설은 화자인 리호코가 고등학생 시절을 회상하는 액자식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모종의 일로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고 편모 가정에서 자란 리호코는 애늙은이 같은 구석이 있는 고등학생입니다. 그런 리호코가 학교 선배인 벳쇼 아키라로부터 사진 모델을 제의받는 것으로 소설의 본격적인 막이 오릅니다.


S.F, 조금은 어떤 각자의 사정

소설 <얼음고래>는 성장에 관한 소설입니다. 한 마디로 압축하기는 어렵지만, 그 내용은 한 인물이 주변과 관계를 맺으며 스스로에 대해 고민하고, 사건을 거치며 진실로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성장소설, 아니 '소설'이 그렇듯이 말이죠.


우리는 결코 무엇에 대해 이렇다 말하기 어렵습니다. 하물며 사람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렇지요. 왜 그 사람은 그렇게 행동하는지 표면에 드러난 사실만으로는 알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너무나 쉽게 판단을 내립니다. 그러는 편이 알기도 쉽고, 대부분의 경우는 표면에 드러난 게 전부기도 하니까요.


그런 경향을 반영한 게 리호코의 말버릇입니다. 리호코는 '조금 어떻다(Sukoshi F-)'는 일본어 표현에서 앞의 두 음절만을 따와 무언가를 'S.F'에 맞추곤 합니다. 그걸로 어떤 사람에 대해 전부 알았다는 듯이. 이런 태도는 세상 만사에 초연한, 아니, 달관한듯한 모습과도 연관됩니다.


모든 걸 다 안다는 착각 

일본에는 사토리 세대, 그리고 한국에서는 달관세대라는 말이 있었지요. 구태여 세대론까지 갈 것도 없이 아이들은 너무 빨리 성숙해집니다. 그런 경향을 두고 어른들은 요즘 애들은 아이답지 않다거나, 지나치게 약았다는 표현도 하는데 글쎄요, 거기에도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소설 속 인물인 리호코의 경우는 그런 방식으로라도 세상을 이해하려고 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기준을 말해주거나 하다못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어른이 리호코의 주변에는 없습니다. 세상은 리호코가 만든 좁은 틀 안에서 규정될 뿐, 그밖으로 뻗어나가지 못합니다.


그래서인지 화자인 리호코의 시선을 따라가는 일은 마냥 즐겁다기보다는, 한편으로는 몹시 괴로웠습니다. 리호코는 무엇에도 깊게 관여하지 못하고, 그러면서도 모든 걸 다 안다는 듯이 구는데, 그런 리호코의 모습에서 누구라도 겪었을 사춘기, 이른바 중2병의 여운이 진하게 뭍어나오거든요.


'나'라는 세계를 넘어서서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누구든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이다.
- 헤르만 헤세, <데미안> 중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은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조차 가물가물하지만, 소설에 나오는 저 문구만큼은 너무나도 유명해서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뒤의 문구, '신'과 '아브락사스'는 떼어놓아서는 소설에서 의도한 의미와는 달라지겠지만, 부득이 앞의 세 문장만 떼어서 인용하겠습니다.


세계를 파괴한다는 건 곧 나라는 인식의 기준을 넘어서는 일입니다. 알이라는 비유도 참 절묘합니다. 알의 껍질을 바깥에서 깨면 부화하지 못하고 요리 재료로 쓰일 뿐이지만, 스스로 그 틀을 벗어났을 때 삶을 얻어 하나의 생명으로 화합니다. 이와 같이 성장은 파괴와 재생의 과정을 담지하고 있습니다. 


츠지무라 미즈키의 <얼음고래> 역시도, 자기 세계를 깨어내고 태어나려 하는 존재의 힘든 여정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인간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타인이 필요하다는, 오래도록 반복된 주제를 소설가 본인의 방식으로 멋지게 소화해내고 있습니다. 따뜻한 이야기를 읽고 싶으시다면 이 소설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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