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읽고 쓰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준희 Feb 29. 2020

우리 시대의 사랑

<모던 로맨스>를 읽고

    


연애라는 그 어려움에 대하여

모든 인간관계가 쉽지 않다지만, 그 정점은 연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연애 당사자는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긴밀하게 주고받는 건 물론이요 한 인간을 총체적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을 알아가는 일과 비교했을 때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그 양상이 다르죠.


우선 관계에 수반되는 감정이 다릅니다. '사랑'은 한 마디로 표현하기도 어렵고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지만, 연인을 사랑하는 일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일과 느낌에서부터 차이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설사 종의 생존과 결부되어 번식을 위한 생물학적 본성이라 할지라도 말이죠.


두 사람이 만나 -그보다 많은 수일 수도 있으나!- 사랑을 한다니. 기적 같은 일이죠.


문제를 더 복잡하게 하는 건, 연애가 곧장 사랑과 같을 수는 없다는 거지요. 또한 연애는 그다지 로맨틱한 과정이 아닌, 그저 인간이 타인을 갈구하는 행위의 연장선상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연애와 사랑이라는, 이 대단히 어려운 문제는 현대에 와서는 또 그 모습이 변한 것처럼 보입니다.


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연애와 사랑을 다루어왔습니다. 인간의 근본이 크게 변하지는 않았을 테지만 지금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연애와 사랑을 하고 있을까요? 오늘 소개할 책은 연애와 사랑 자체를 다룬다기보다는 과연 우리의 연애와 사랑이 어떻게 변했는가를 다룹니다.


책 <모던 로맨스> 소개

책 <모던 로맨스>는 총 7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부터 책이 쓰인 2010년대에 이르러, 뭇 인류의 사랑과 연애가 보이는 양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그 과정에서 우리 역시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쫓아갑니다.


책의 내용도 흥미롭지만, 저자 아지즈 안사리의 유쾌한 필치가 돋보입니다. 스탠드업 코미디언이라 그런지 몰라도, 시종일관 위트를 놓치지 않습니다. 어쩌다 한 번씩은 그의 유머에 정신이 사납다는 인상도 들지만, 자칫 지루한 내용에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점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마치 한 편의 대본을 읽듯이 즐거운 마음으로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예상외로 심도 있는 분석에 놀라게 됩니다. 당사자이기 때문에 미처 체감하지 못했던 연애와 사랑의 한 측면을 학문의 영역에서는 물론, 우리와 같은 시대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마주하게 됩니다.


스마트폰 시대의 연애

기술의 발전은 현대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데, 연애와 사랑이라고 예외는 아닙니다. 전화의 등장에서부터 PC의 보급, 마침내는 스마트폰에 이르기까지. 통신에서 일어난 일대 혁신은 인간이 타인과 소통하는 빈도는 물론 행동양식까지도 바꾸어놓았습니다.


저자는 이와 연관된 자신의 사례를 밝히며 책을 시작합니다. 마음에 든 여성에게 데이트를 신청하기 위해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그 찰나 어쩌면 영원처럼 느껴졌을 순간이 자신을 얼마나 괴롭게 만들었는가를 낱낱이 서술하며 말이지요. 이런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쉽고 또 빠르게 상대방과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편리함은 물론 말할 것도 없지만, 마냥 축복으로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빠르게 확인할 수 있는 만큼, 상대방이 문자를 보지 않을 때면 머릿속으로는 오만가지 잡생각이 떠오르니까요. 바쁜가? 아니면 사고라도 당했나?


너무나 많은 선택지들

속도와 그에 따른 우리의 반응만 변한 건 아닙니다. 과거에는 지인을 통해 주선을 받거나, 같은 학교, 회사, 동네에 살던 이들과 연애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인터넷을 통해 세계 방방곡곡을 누비며 잠재적인 연애 대상자를 물색할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의 '데이팅' 카테고리만 봐도 그렇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게 바로 틴더입니다. 데이트 대상 성별을 지정한 후에, 마음에 든다면 오른쪽으로 스와이프, 별로 내키지 않는다? 왼쪽. 아주 마음에 든다면 위로. 이 과정을 몇십 번도 넘게 할 수 있습니다. 고작해야 손가락을 몇 번 왔다 갔다 하는 걸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지!



이는 곧 연애에 있어서 선택지 자체가 달라졌다는 걸 뜻합니다. 과거에는 몇 개 되지 않는 선택지만 놓고서 심사숙고해야 했다면, 지금은 수백수천 개의 선택지 중에서 가장 그럴싸한 걸 찾아내면 됩니다. 당연하게도 이것 역시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혹시라도 놓쳤을지 모를 더 나은 선택지를 염두에 두어야 하니까요.


선택 자체를 아예 유보하게 되거나, 선택을 해놓고도 마음 놓고 선택을 음미할 수 없습니다. 언제든 더 나은 선택지가 생기면 갈아탈 수 있는 임시방편일 뿐이죠. 그러나 인간관계가 정말 그런 임시방편적인 수단이 될 수 있는 걸까요? 그런 인간관계가, 심지어 연애가 그렇다면 우리는 진정으로 행복하기 어려울 겁니다.


그 외의 아주 많은 변화들

여기서는 대표적인 두 가지 내용만을 다루었지만, 책은 보다 다양하고 구체적인 영역까지 다루고 있습니다. 데이트를 신청하는 행태가 달라지면서 사람들이 얼마나 무책임하며 단순한 말을 내뱉는지, 상대방의 문자에 바로 대답하는 게 아니라 일부러 시간을 끄는 게 어째서 유리한 전략인지 등등.


또한 국경을 넘어, 아시아의 일본과 유럽의 프랑스, 남미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연애와 사랑은 어떤 모습을 띄고 있는지도 살펴봅니다. 문화에 따른 차이가 사람을 대하는 일에 어떤 차이를 반영하는지 알아보는 것도 훌륭한 읽을거리입니다. 


비단 기술 발전이 가져다준 긍정적인 면만을 다루지 않는 것도 이 책의 장점 중 하나입니다. 성적인 메시지를 주고받거나, 바람을 피우는 일. 그리고 구애인을 염탐하는 일까지. 과거에도 존재했으나 기술과 결합한 현대적인 악덕의 사례도 빠짐없이 나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색다른 시도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다소 고리타분한 의견을 내놓습니다. 연애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이며 궁극적으로 시간을 두고 '함께 한다'는 겁니다. 맥 빠지는 소리 같다고요? 하지만 이 말은 상당 부분 사실입니다. 다음의 문제를 함께 생각해보면 더더욱 분명해집니다.


자유가 선사하는 부자유

기술의 발전은 인간에게 자유를 선사했습니다. 연애와 사랑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죠. 역설적으로 너무나도 자유로워져서 이제는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는 같습니다. 예전이라면 상상도 못 했을, 엄청나게 다양한 선택의 가짓수는 선택 자체를 망설이게 만들고, 선택에 만족하지 못하게 만드는 불행을 선사합니다.


이것도 선택할 있을 같고, 그런데 저것도 선택할 있을 같으니 어떻게 행복하겠습니까. 더 나은 선택지가 있으면 어떻게 하려구요! 그러나 우리는 언젠가 선택을 해야 하고 선택 자체가 '나의 선택'이라면 만족하며 받아들여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영혼의 동반자'  즉 소울메이트를 원합니다. 지금 이 사람이 만약 소울메이트가 아니라면? 혹은 처음 사귀고부터 얼마까지는 아주 좋았지만 사귀다 보니 더 나은 사람이 있을 것 같다면? 그때는 또 다른 더 나은 선택지를 찾아 훌쩍 떠나버리는 게 정답인 걸까요?


함께하는 일로서의 사랑

사랑은 열정적일 수도 있으나, 처음과 같이 불타지는 않아도 우정이나 의리에 가깝게 시간이 지나며 더욱더 깊어질 수도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라면 그 사람과 오래도록 만나야 할 텐데, 현대인에게는 아주 힘들거나 굉장한 사치, 혹은 지루한 일로 여겨지는 것 같습니다. 그도 그럴 게 이렇게 많은 선택지가 있는 걸요!


수많은 선택지 속에서 갈팡질팡하며, 매 순간 불타는 사랑만으로 인생을 꾸려나갈 수도 있겠지만 그것 역시 인생의 또 다른 즐거움을 하나 포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누군가와 함께 사는 인생'입니다. 저자는 우리가 진정으로 소울 메이트를 찾기를 원하지만, 정작 그렇게 행동하고 있지 않다는 걸 지적합니다.


과거의 연애와 지금의 연애를 비교하는 것도 그런 경우입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1960년대와 70년대만 해도 연애에 있어서 자유란 허황된 소리였을 겁니다. 그럼에도 어떻게 서로 만나서 그럭저럭 아끼며 사랑도 하고 살았습니다. 아주 가까이에 생생한 사례가 있습니다. 우리들의 부모님이 그렇죠.


중요한 건 더 나은 선택을 찾아 계속해서 헤매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하는 이 사람을 진심으로 마주하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다소 고리타분한 의견을 내어놓습니다. 연애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이며 궁극적으로 시간을 두고 '함께 한다'는 것.



변하지 않는 것

이는 참으로 진실입니다. 아주 많은 게 변한 것 같아도,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거절을 당할까 두려워서 혹은 실제로 만나보니까 별로일 것 같다고 상대방과 계속 문자만 주고받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설령 만났다 하더라도 단 한 번의 만남으로는 어떤 것도 결정지을 수 없고요.


연애, 그리고 사랑은 사람을 만나는 일입니다. 만나봐야 알고, 계속 알아갔을 때 뭔가 보이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그렇게 한 사람과의 만남을 거듭할수록 '불타는 사랑' 이후의 '동반자'와 함께하는 사랑에 대해서도 알 수 있게 되겠지요.


벌써 흥미가 생기지 않으십니까? 우리 시대의 연애를 학문적으로 접근하는 시도 자체가 매우 낯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우리의 일'이라구요! 한 번 읽어보시면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연애와 사랑, 이 얼마나 재미난 이야기인가요!

매거진의 이전글 조금은 환상적인 이야기(S.F)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