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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Sep 05. 2020

갈급을 이기며 글쓰기

내가 글을 쓰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

또, 막혔다

이번 주 수요일 밤, 서평을 써야겠다고 모니터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시간은 벌써 새벽, 졸려서 그런 건지 머리가 꽉 막힌 것처럼 문장도 지지부진했습니다. 어떻게 쥐어짜서 진도를 나가기는 했지만, 결과물은 영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다음날 보면 다르겠지 싶어, 30분쯤 쓴 후 마무리를 했지요.


그리고 그다음 날, 쓰던 글을 이어서 쓰려고 보니 이거야 원, 쓰고 싶은 말을 두서없이 늘어놓은 꼴이 마치 난장판 같았습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할지 막막하기 그지없더군요. 머릿속이 턱-하고 막힌 느낌이 느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글이 막힌 겁니다.


저는 글을 쓸 때 그대로 쭉 써 내려가는 편이다 보니 한 번 막혀버리면 상당히 애를 먹습니다. 그 누구라도 비슷한 경험이 있으시겠지만, 유독 심합니다. 하염없이 모니터를 들여다보다가, 도망치듯이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쓰기는 써야겠고, 처음부터 쓰자니 지금 이 시간에 도저히 못할 노릇이고. 결국 답답한 마음에 푸념 같은 글을 내뱉습니다. 어찌 보면 이건 제가 글쓰기를 썩 잘하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즉 글을 써오면서도 고치지 못했습니다. 바로 글쓰기에 대한 갈급입니다


평범한 재능으로 글쓰기

문학평론가 신형철 님의 책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 대한 서평을 쓰며 '토하듯이 쓰는 게 아니라 충분히 공 들여서 글을 쓰고 싶다'는 투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바탕에는 작가로서의 순수한 향상심보다는 어렸을 때부터 가지고 있던 일종의 자격지심, 내지는 뒤틀린 감정이 깔려 있습니다.


저는 꽤 오랜 시간 글을 써왔지만, 옛날부터 지금까지 번번한 공모전 하나 입상해본 적이 없습니다. 어쩌다 교내 공모전에서 글쓰기로 상을 타본 적이 있으나, 문학적 재능을 인정받았다기보다는 독서감상문이거나 여행기 같이 재능이 아닌 다른 종류의 능력을 담보로 하는 종류의 글들이었지요.


스스로도 글쓰기에 엄청난 재능이 있다곤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글을 쓰는 것 자체를 어려워하시는 분들에게는 이렇게까지 긴 글을 쓴다는 것 자체로도 대단해 보일 수 있겠지만, 글 좀 쓴다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한없이 작아지곤 했습니다.


토하듯이 쓰는 글

단순히 재능이라 뭉뚱그릴 순 없겠죠. 여러 가지를 따져봐야 할 겁니다. 제 스스로는 사고가 채 여물기 전에 글을 마무리하는 버릇이 가장 치명적인 단점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정말이지 '토하듯이' 글을 씁니다. 말이 좋아야 글이지 토사물과 다를 바가 없죠. 채 소화가 되지 않은, 무언가 이해하기 힘든 형체를 가진. 


어렸을 때는 그러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저는 글쓰기든, 무엇이 되었든 여하간 머리를 쓰는 일이라면 서둘러 끝내버리는 게 마음이 편했습니다. 원체 진득하게 무언가 하나를 붙잡고 있는 성격이 아니다 보니 시간이 흐를수록 그런 경향이 더욱 강해졌죠.


단적인 예로 지인들과 종종 보드게임을 할 때, 그런 경향이 강하게 나타납니다. 전략적인 수를 필요로 하는 게임을 할 때는 그다지 오래 생각하지 않고 일종의 내지르는 수를 많이 쓰곤 합니다. 그렇게 일단 지르고(?) 나서 운 좋게 이기면 좋은 거고 아니면 말고라는 식이죠.


아마 제가 바둑을 했으면 엄청난 속기 바둑을 하지 않았을까 추측도 해봅니다. 대국을 길게 보는 게 아니라 빠르게 몰아쳐서 끝내버리는 거죠. 한두 판 운 좋게 이길 순 있어도 고수 혹은, 실력이 비등비등한 상대와 백중세에 처했을 때 자신을 뛰어넘기 위해 인내해야하는 순간에는 일을 그르칠 수도 있을 겁니다.


조급을 이기는 일

왜 그럴까 생각해봅니다. 좀 더 때가 무르익기를 기다릴 수도 있을 텐데, 내 안에서 분명한 형태를 가질 때까지 참아볼 만도 할 텐데. 일 분 일 초라도 빠르게 세상밖에 글을 내보여야 한다는 조바심이 이유일 수도 있겠습니다. 반드시 그게 좋은 것도 아닌데 말이죠.


브런치를 예시로 한다면, 적절한 시기를 골라서 글을 발행하다든지, 충분히 뜸을 들여서 글을 다듬고 내용에 어울리는 적절한 이미지도 넣어서 읽기 좋고 보기에도 좋은 글을 쓸 수도 있을 겁니다. 대뜸 세상 사람들 이것 좀 보소, 글을 내놓아도 그게 '토사물'이라면 누구도 거들떠 보지 않을 겁니다.


글쓰기에는 참아내는 과정이 필수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물론 깨달음과 실천은 언제나 이어지지는 않지만요. 말은 그렇게 해도, 정작 저는 이번에도 며칠을 견디지 못하고 이렇게 서둘러서 글을 내놓습니다. 아주 조금이라도 갈급을 이겨냈으니 그걸로나마 만족해야겠지요.


어차피 급하게 세상에 내놓을 정도로 대단하거나 새로운 생각을 쓸 수도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야 기왕지사 급하게 보일 이유도 없겠지만, 지금이 아니면 도저히 안 된다고, 바로 지금 써내려 가야한다고 마음 속에서 외쳐대고 있으니. 잊기 전에 써내려가는지도 모르죠.


끝으로

그러므로 한 편의 글에도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는 모든 분들에게 존경과 찬사를 담아서 박수를 보냅니다. 초고는 쓰레기라는데, 어쩌면 또 하나의 쓰레기를 세상에 내보였는지도 몰라 부끄러움이 고개를 쳐듭니다. 부끄러운 줄 알면서도 내보이면 그거야말로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던데. 그래도 쓰고 말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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