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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Sep 17. 2020

스토아적으로 살기

<좌절의 기술>을 읽고

철학은 어쩌다 무기가 되었나.

서점에 들를 때면, 베스트셀러 서가를 유심히 살펴봅니다. 베스트셀러라는 게 '좋은 책'의 기준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잘 팔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을 테니까요. 최근이라고 하긴 뭣하지만, 유난히 기억에 남는 책이 하나 있습니다. 아마도 인문학이었던가, 철학이었던가 그랬을 겁니다.


바로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라는 책이었습니다. 읽어보지를 않아서 내용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지만 제목 하나는 정말 기똥차게 뽑았습니다. 철학에 하나도 관심이 없다가도, 뭔가 괜히 한 번 뒤적이게 만들죠. 조금쯤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오잖아요. 상당히 매력적이지 않습니까?


철학을 공부하면 우리네 삶을 관통하는 포괄적인 앎을 얻을 수도 있지만, 그게 꼭 일상적인 부분에서 필수라고 말하기에는 좀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철학을 배우는 게 도움이 된다면 구체적인 도구로서 뚜렷한 이익을 가져다준다기보다 어떤 의미에서는 나침반, 즉 방향을 알려주는 역할을 해주기 때문일 겁니다.


책 <좌절의 기술> 소개

<좌절의 기술> 윌리엄 B. 어빈 지음, 석기용 옮김( 이미지 출처 - Yes24)

오늘 소개할 책은 '나침반'이라고 하기보다는 '지도'에 가깝습니다. 정확한 목적지를 염두에 두고 다다르기 위한 방법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서적 분류에 따르면 철학이 아니라 자기계발에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바로 <좌절의 기술>이라는 책입니다. 제목에서부터 드러나듯 좌절을 대하는 방법을 다룹니다.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되어있고, 1부에서는 좌절을 겪었을 때 유난히 빠르게 회복하는 이들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특정 사례로부터 좌절에 대처하는 방법을 소개하는 2부와, 보다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3부와 4부에 걸쳐 다루고 있습니다.


이때 좌절을 이겨내기 위한 방법으로써, 저자는 스토아주의자들의 가르침을 제시합니다. 스토아주의라고 하면 생소하실 수도 있겠지만, 걱정하실 게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책에서는 '스토아주의'에 대해 다루고 있지 않으니까요. 어디까지나 철저히 그들의 '방법'만을 빌려와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책은 본격적인 철학서라고 하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철학의 탈을 썼을 뿐, 자기계발서라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럼 책의 내용이나 소개하면 됐지 구태여 철학과 자기계발서, 이 둘의 구분을 다루려고 하는지 한 번 말씀드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철학과 자기계발

먼저 철학과 자기계발, 이 두 가지를 구분할 수 있는 기준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척 봤을 때 철학과 자기계발은 전혀 다른 분야라고 여기기 쉽지만, 종종 실타래처럼 엉켜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둘을 엄밀하게 정의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철학이 세계와 인간에 대한 원리를 탐구하는 학문이라면, 왜 세계와 인간에 대해 탐구하는 것일까요? 굳이 진리를 탐구할 필요가 있을까요? 어차피 살다 가면 그만인데? 이러한 문제는 철학이 삶에 대한 태도이기도 하지만 학문의 방법론이며, 학문 그 자체라는 복합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철학이라는 개념을 정의해야 합니다. 여기서는 '철학'을 '삶을 대하는 태도'라고 정의하려고 합니다. 그럼 어떤 종류의 태도인지도 정해야겠지요. 철학에 대해 처음 이야기할 때, '인간과 세계의 진리에 대해 탐구하는 일'이라고 정의했는데, 이때 진리를 탐하는 근본적인 욕망에 대해 따져보도록 하겠습니다.


더욱 나은 삶을 위한 도구로서의 철학

철학을 '앎, 혹은 진리에 대한 추구'라고 한다면 왜 '앎'을 추구하는지를 따져봐야 합니다. 그저 많이 알면 좋으니까? 물론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저는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어서'라는 답을 하고 싶습니다. 무엇이 맞는지 알고 싶다는 건 옳거나, 최선의 방식을 추구하고 싶다는 욕망이 있어서 일 테니까요.


물론 이런 서투른 방식의 정의는 학문의 최전선에서 철학을 공부하시는 분들이 보셨을 때, 너무 편의적인 결론이라 혀를 찰 수도 있겠습니다.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은 설익은 지식으로 글을 이끌어가기 위한 욕심에 섣부르게 철학은 이러이러하다고 정의를 내린 셈이니까요.


그럼에도 철학에서 앎을 추구하는 바탕에 '나은 삶을 살고 싶다는 욕망'이 깔려있다고 주장한 데에는 나름의 배경이 있습니다. 앞서 밝혔듯이 자기계발과 철학이 맞닿을 수 있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게 아닌가 의심이 들었거든요. 자기계발이 너무나도 쉽게 '철학'의 탈을 뒤집어쓸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철학의 탈을 쓴 자기계발?

빙빙 돌아서 다시 책의 내용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좌절의 기술>은 책의 구성에서도 자기계발서와 아주 유사한 측면이 있습니다. 몇몇 사례를 제시하면서, 왜 이러한 방법이 효과적인지 기술하고, 나아가 우리 삶에 필요하다고 주장한다는 측면에서 그렇습니다.


물론 좌절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준다고 말한 후, 스토아주의의 역사와 그 개념을 줄줄줄 읊었다면 아마도 이 책의 절반을 읽기도 전에 덮었을 수도 있습니다. 아주 구체적으로 좌절을 이겨내는 방법을 알려준다는 면에서는 꽤 유용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분명 우리 삶에는 좌절의 순간이 있습니다. 그것도 상당히 잦은 빈도로 있을 겁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좌절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거나, 미리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보며 막연한 미래를 상상해보라는 말은 유효한 주장이죠. 그러나 이것이 왜 '철학'과 이어져야 할까요? 딱히 철학에 대해 다루지 않는데 말이죠.


삶의 기술로서의 철학

책에서는 여러 명의 스토아주의 철학자가 남긴 말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중에 에픽테토스의 말이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에픽테토스는 고대 그리스의 대표적인 스토아학파의 철학자 중 한 명인데, 노예 신분임에도 철학을 배웠고, 노예 신분에서 벗어난 후 제자들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내용 출처 - 위키피디아) 갑자기 그의 이름을 거론한 이유는, 지금까지 다룬 주제와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다음의 문장입니다.


철학이 다루는 것은 삶의 기술이어야 한다


과연! 그렇다면 철학이 어째서 자기계발과 이어지는지 알 것도 같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좀 더 고민해볼 필요가 있죠. 철학이 삶의 기술을 다룬다고 한들, 기술 그 자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글을 시작하며 철학과 자기계발 두 가지를 나누기 위해 '나침반'과 '지도'라는 조악한 비유를 들었습니다.


물론 나침반과 지도 모두 어디론가 향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점에서 동일한 도구로 보입니다. 그러나 나침반은 대략적인 방향만 알려줄 뿐 어디로 가야 한다는 것까진 결정하지 않습니다. 반면 지도는 목적지가 분명히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그대로 따르기만 하면 되죠.


스토아주의자로 살아보기

책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좌절의 기술>의 내용은 지금껏 쏟아져 나온 자기계발서나 현대 심리학에서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과 구별될 수 있는 이유는 스토아주의의 지혜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저자가 발견했고, 이를 토대로 우리 삶에 적용시킬만한 기술을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좌절'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는 일과, 좌절할만한 일을 겪었을 때, 분노하거나 감정을 분출하는 데에 에너지를 쏟지 않고 다른 대책을 모색하거나 관점을 바꾸어보는 건 한 번쯤 적용해볼 만합니다.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떤 좌절과 마주할지 모르잖아요. 미리 연습해두는 좋은 일이죠.


또한 좌절스러운 상황 자체는 어떻게 할 수 없어도, 우리가 좌절을 바라보는 방식만큼은 결정할 수 있다는 말은 상당한 위안으로 다가옵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떤 평지풍파를 겪더라도 우리 스스로만큼은 자신을 괴롭히지 않아야겠죠. 이런 태도가 더 나은 삶을 살 원동력이 되어줄 수도 있구요.


끝으로

그럼에도 한 가지 꺼림칙한 점은 이것을 '철학'이라는 데에 초점을 맞춘 세일즈 포인트입니다. 물론 저자도 철학을 이해하기 수월하고, 삶에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론으로 소개하고 있으니 출판사도 그런 쪽을 강조한 게 아닌가 추측해봅니다하지만 이 아쉬움은 어쩔 수가 없네요. 


스토아주의에 대한 진지한 논의도 있겠거니 기대하고 읽었다가, 책의 시작부터 끝까지 자기계발서와 아주 흡사한 내용들만 나오다보니, 조금 허탈했습니다. 그래도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기술들을 적용해볼 수 있다면, 헛된 독서는 아니었겠죠.


한 번쯤은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밤이 늦었네요. 이만 마무리하고, 다음 글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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