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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Sep 24. 2020

기록하는 것도 일

<기록의 쓸모>를 읽고

나의 매거진 활용기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지도 1년이 넘었습니다. 아직 백수로 지내고 있던 2019년 초에 마냥 놀기보다 글이라도 써두면 어디에라도 써먹을 게 있지 않을까 싶어서 짬짬이 써오던 게 어느덧 200편 가까이 글을 쓰게 되었네요. 출판이나 기고처럼 대단한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훌륭하다고 자부해봅니다.


여하간 열심히 글을 썼다 그런 걸 자랑하려고 이런 이야기를 꺼낸 건 아닙니다. 브런치에서 글을 쓰다 보면 이런 주제로도 써보면 좋겠다 싶고, 저런 주제로도 써보고 싶어서 호기롭게 매거진부터 발행하곤 했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매거진을 만들어두고서 제대로 활용해본 적이 드물다는 거죠.


가장 처음 만들었던 '오늘 한편'은 매일 같이 글을 쓸 수 없으면서 거의 쓰지 않게 되었고, 어쩌다 한 번씩 올리는 '읽고 쓰며'와 '크로스핏의 맛' 2개 정도만 쓰고 있습니다. 막상 늘어놓고 보니 의외로 잘 쓰고 있지 않나 싶어서 잠시 뿌듯함이 밀려오다가 '어쩌다 마케터'라는 매거진을 보면 멈칫하게 됩니다.


맞아. 저게 있었지.


어쩌다 벌써 반년째 마케터

취업을 할 때 자기 전공을 살리는 일이 드물다지만, 저는 국어국문과를 전공하고 전혀 상관없는 직종에서 마케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대학에서 배운 적이 없는 걸 하려니 걱정도 되고, 불안한 마음이 컸지만 어떻게 하다 보니 또 되더라고요. 잘하고 있는 건지 감이 전혀 오지 않지만요.


그래도 반년이나 지났으니, 뭐, 여태껏 버틴 게 용하긴 합니다. 업무를 하나 처리하면 또 하나 들이닥치고,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지는 업무에 매일 같이 치이다 보니,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대체 이걸 언제 다 끝내나 막막했던 적이 더 많아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합니다.


정신을 차려보면 하루가 끝나고, 또 한 주, 한 달이 지나가 있었습니다. 조금이라도 업무를 잘하고 싶어서 인터넷으로 마케팅 관련 강의를 수강한다든지, 마케팅 관련 서적을 읽는다든지 짬짬이 마케팅에 대해 찾아보고 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서점에 들를 때, 경제나 마케팅 쪽은 슬쩍 살펴보기만 할 뿐 읽어볼 이유가 없었는데 이제는 업무를 위해서 반드시 알아두어야 하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마케터의 태도

물론 그렇다고 해서 대학공부를 하듯이 두꺼운 전공서를 찾아 읽지는 않습니다. 가령 마케팅의 고전이라는 책 <마케팅 불변의 법칙> 같은 건 여즉 읽어보지도 않았습니다. 가급적 당장에라도 써먹을 수 있는 방법론 혹은 마케터로 일하고 있는 분들의 생생한 수기를 위주로 읽고 있습니다.


그렇게 읽다 보면 한 가지 아쉬움이 듭니다. 제아무리 실무를 다루고 있다고 해도 책은 어디까지나 간접 경험에 불과하다는 사실이죠. 매일 같이 부딪혀야 하는 진짜 업무와는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온갖 사례를 들어가며 노하우를 있는 그대로 담아냈다고 해도 한계가 있습니다.


한 번 읽었다고 제 것이 되리라는 보장도 없지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는 정도의 도움이 전부입니다. 그럼에도 '태도'에 관한 부분은 꼭 배워야겠다 싶을 때가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저자가 업무를 대하는 방식이랄지, 바라보는 관점이라고 해야 할지. 그런 종류의 마음가짐.



기실 태도라는 게 업무와 별로 상관없어 보이긴 합니다. 그러나 당장 나에게 주어진 일을 처리하는 수준을 넘어서, 앞으로 마케터로 일하지 않더라도 어느 분야에서라도 써먹을 수 있는 통찰력을 제공해준다는 관점에서 바라봐야겠죠. 이번에 소개할 책도 그런 종류의 '태도'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책 <기록의 쓸모> 소개

책 <기록의 쓸모> 이승희 지음 ( 이미지 출처 - yes24 )

바로 <기록의 쓸모>라는 책입니다. 저자 이승희 님은 대학에서 치기공을 전공했으나, 마케터로 전업을 한 어찌 보면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입니다. 배달의 민족에서 6년간 브랜드 마케터로 일하다가, 현재는 그다음 스텝을 내딛고 있으십니다. 이 모든 내용은 책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다른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책에 대해서 좀 더 소개해보겠습니다. 책은 어째서 기록을 시작하게 되었는지부터 기록의 방식과, 구체적인 기록의 사례들, 기록으로부터 얻은 것까지 그야말로 마케터이자 인간 이승희 가 일상과 업무에서 느끼고 생각한 바를 기록해온 내용과 그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기록' 하나만으로도 이렇게까지 해낼 수 있다는 감탄을 내뱉게 됩니다. 하루하루를 시간의 흐름 속에서 그저 스쳐가게 내버려 두지 않고 붙잡아두려는 노력과 무엇이든 기록으로 남기려는 저자의 내공에 탄복하게 되죠. 이때 기록은 단순하게 '마케터'에게만 요구되는 능력은 아닐 겁니다.


기록하는 인간, 호모 아키비스트

문득 인간은 어째서 기록을 하는지, 기록의 효용이 무엇일지도 고민하게 됩니다. 기록하는 인간에 대해서 찾다 보니 국가기록원에서 일하시는 또 다른 분의 책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아직 읽어보지 못해 어떤 내용인지는 전혀 모르겠으나, 그곳에서 '호모 아키비스트'라는 표현을 빌려오게 되었습니다.


이미지 출처 - yes 24t

우리는 기록이란 것이 역사에 길이길이 남길 만한 아주 대단한 인물이나 사건에 대해서 가능하다고 믿고 있지는 않나요? 그러나 사소하게 보이는 나 자신의 역사조차도 그것을 '기록'하는 순간 나름의 역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역사의 누적을 통해 우리의 삶은 좀 더 의미를 찾을 수 있겠죠. 어쩐지 순환논리 같다는 느낌도 들지만, 전혀 쓸모없어 보이는 기록이라는 행위를 통해서 기록 그 자체는 물론이요 내 삶에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겁니다.


또한 자기 계발적인 측면에서도 기록은 적지 않은 도움이 되어줍니다.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만들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이정표가 되어줄 수 있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기록이야말로 곧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죠.


기록, 그 쓸모에 대하여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저도 어쩌다 보니 전공과 전혀 상관없이 '마케터'라는 직업을 가지게 되어, 이승희 님의 이력에 묘한 동질감을 느끼게 되더군요. 물론 마케터로서 이승희 님만큼 치열하게 고민을 해온 것 같지 않아 괜히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또한 어쩌면 남들에게 내보이기 민망할 수 있을 치부나, 남들에게는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그 자신에게는 무엇보다도 심각한 고민들까지 낱낱이 기록하고 심지어는 책으로 엮어낸 용기에는 박수를 보내게 됩니다. 나라면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 자문해봐도 대답이 영 궁색해집니다.


일과 삶을 대하는 저자의 진지한 태도를 마주할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는 충분합니다. 저자가 해온 고민들과 실무에서 기록을 써먹는 방식들은 덤으로 얻어갈 수도 있겠고요. 사실 그 방식은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으니 우리가 얻어가야 하는 건 그 '태도'일 겁니다.



끝으로

그런 의미에서 설령 마케터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 책을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좀 더 즐겁게 살 수 있는, 더 나아가 보다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한 방법으로서의 '기록' 아니, 그냥 '기록' 자체의 의미를 생각해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다소 뜬금없는 이야기로 글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소리지만, 이전까지 저자인 이승희 님에 대해서 아는 바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기록의 쓸모>를 읽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SNS에서 팔로잉하고 있던 계정이 이승희 님의 계정이더라고요. 소소하지만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여하간 이것도 일종의 기록이라는 의미에서 기록으로 남겨두려 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참, 한참 쓰고 나서 할말은 아니지만, 그래서 이 글은 대체 '읽고 쓰며'에 해당하는지, '어쩌다 마케터'에 해당하는지 도저히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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