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란 무엇인가>를 읽고
저는 공부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정확히는 학교 공부라고 해야겠군요. 막연하게 학교 공부라고 정의를 내리자니 뭔가 부족합니다.
공부의 방법론 중에서도 단순 암기가 싫다고 해야 할지, 시험처럼 자격증이나 점수 따위를 목적으로 하는 공부가 싫다고 해야 할지.
그럼에도 마음 한 편에는 공부에 대한 필요를 느끼는 건 학생으로 살아온 세월이 너무 긴 탓일 겁니다. 자꾸 뭔가 배워야 할 것만 같고, 자기 자신을 단련해야 할 것 같은 이상한 기분.
여기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공부하면 좋단 말입니까. 그건 배운 적이 없는데 말이죠.
기실 공부를 싫다고 할 만큼 열심히 해보지 않았습니다. 꼭 끝장을 봐야 알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요. 그럼 '공부란 대체 무엇인가'부터 다시 시작해보는 게 좋겠군요.
공부. 사전에서는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고 익힌다고 하는데, 원체 사전이라는 게 저 말이 이 말을 설명하는 식의, 순환 논증이다 보니 그 뜻을 읽어도 선뜻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들 각자 공부에 대해서 지니고 있는 이미지라는 게 있죠.
저에게 공부란, 무언가 새로운 걸 배우는 일뿐만이 아니라 더욱더 깊이 잘 알게 되는 일입니다. 이전까지는 두루뭉술하게 알고 있던 것을 분명하게 알게 되는 일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렇다고 단순히 '앎'이 공부 그 자체는 아닐 겁니다.
이야기하면 할수록, 더 복잡해지기만 하는 느낌입니다. 오늘 소개할 책에서 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바로 김영민 님의 책 <공부란 무엇인가>입니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한 가지 부끄러운 사실을 고백하자면, 저는 이 책을 살 때만 하더라도 동명의 다른 교수님이 쓴 책인 줄 알고 있었습니다.
막상 사놓고 보니, 이름이 같을 뿐이지 전공은 물론이요 전혀 다른 사람이라서 순간 책을 잘못 산건가 싶어 매우 당황스러웠습니다.
여하간 모종의 착각으로 집어 든 책이지만,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제대로 된 글을 싶었고, 그러다 보니 잘 쓰고 싶은 욕심에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또 내년 즈음이나 되어서 그때 진작에 좀 쓸 걸, 후회를 할까 봐 부랴부랴 쓰고 있네요. 늘 이런 식이죠.
잡설은 이쯤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책 <공부란 무엇인가>는 한평생 공부를 업으로 삼아온 저자가 견지하고 있는 공부란 무엇인지 대한 이야기를 다양한 관점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본문은 총 5개의 장으로 나뉘어 있으며, 각각의 장마다 '공부의 길', '공부하는 삶', '공부의 기초', '공부의 심화', '공부에 대한 대화'라는 제목이 붙어있습니다.
1부인 '공부의 길'은, 공부에 있어서의 방법적인 부분을 다룹니다. 정확한 단어의 사용, 개념의 정의, 문장을 쓰는 법 등 본격적인 '공부'를 위한 전제조건을 밝히고 있습니다.
2부 '공부하는 삶'에서는 공부를 지속하는데 필요한 조건들을 논합니다. 그것은 체력이나 시간 같은 물리적 요소이거나, 태도나 시기 같은 상황적 요인이기도 합니다.
3부 '공부의 기초'는 제대로 된 공부를 위한 방법을 구체적인 상황에 비추어 다루고 있습니다. 토론을 할 때나, 책을 읽고 그에 대한 글을 쓸 때, 자료를 정리할 때 등 열거된 행위 속에서 한 발짝이라도 더 진짜 공부에 다가갈 수 있는 길을 알려줍니다.
4부 '공부의 심화'는 기초적인 태도를 다루었던 3부에서 나아가, 일상적인 행위가 아닌 보다 면밀한 주의를 요하는 작업들, 예컨대 토론을 할 때나, 비판적인 사고가 필요할 때 피상적인 접근에서 그치지 않고 예리한 시야를 가질 수 있는지 살피고 있습니다.
5부 '공부의 대화'는 저자와의 대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서 교육이 가지는 의미와 공부에 대한 저자의 관점이 담겨 있습니다.
간략히 요약하자면 이렇지만, 직접 책을 읽어보시는 편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책을 읽지 않은 분들께서도 조금이나마 이해하기 편하시라고 주저리주저리 설명했지만, 쓰면서도 이게 정확한 설명인지 마뜩지 않아 답답하군요.
그런 면에서 한 가지 고백부터 하자면, 이 글은 많이 부족한 서평입니다.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100점 만점 기준으로 간신히 50점을 맞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책 내용을 얼추 요악하고는 있으되, 전체를 꿰뚫는 글쓴이만의 예리한 시선이 부족하지요. 뭐, 지금까지는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나아질 수도 있겠지만, 가능성은 영 희박합니다.
갑자기 자아성찰을 하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저자의 여러 글 중에서도 서평에 대해 다루고 있는 3장의 글, '하나의 전체로서 책에 대해 말하기'를 읽고 나니 그럴 수밖에 없었거든요.
서평을 쓴답시고, 그동안 제가 하고 싶은 말을 하기에 급급했던 터라, 저자의 표현 그대로 '책을 발판 삼아 자신의 이야기'만 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늘 서평을 쓰면서도, 이게 서평인지, 단순 감상문이지 헷갈리곤 하는데 회초리라도 한 대 맞은 기분이군요. 그리고 서평의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책을 알리는 부분도 있겠지만, 그 이상으로 서평을 하는 이의 관점에서 왜 이 책이 좋은지, 혹은 나쁜지를 확실하게 밝히는 일 아닐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책의 내용도 충실히 다루어야 하며, 저자의 관점이 합리적이어야 합니다. 구태여 글이라는 형태로 엮어낼 당위가 있어야겠죠. 그러기 위해서라도 서평은 그저 '감상을 내놓는다'는 수준을 넘어서야 합니다.
과연 제가 그런 일을 해왔는지,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의구심이 듭니다. 아직도 '공부'가 부족하다고 할 수 있겠죠. 처음으로 돌아가버렸군요. 결국 공부가 필요합니다.
공부의 필요를 느껴도, 막상 무엇을 공부해야 할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가 더 많습니다. 그런 면에서 '무엇'을 공부해야 할지는 누가 알려주기 어렵지만, 적어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공부란 무엇인가>에서는 무엇을 공부하라고 알려주지 않더라도 -그것은 공부를 하려는 사람에 따라 너무 달라서 알려줄 수도 없을 겁니다- 어떻게 하면 좋은지를 가르쳐줍니다.
마치 대학교 강의를 듣는 착각마저 들곤 합니다. 다행인 점은, 실제로 이 분의 강의를 수강했다면 아주 많이 귀찮았겠지만 책을 읽는 독자들은 그럴 일이 없다는 겁니다. 강의가 끝났을 때 남는 건 정말 많겠지만, 정작 다니는 내내 그다지 행복하진 않을 거라 추측해봅니다.
이 '비대면 강의'를 듣는 내내 저 혼자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했습니다. 어떤 부분에서는 긍정한다는 의미로, 혹은 제 나름대로 생각을 하는 사이 저도 모르게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군 고민하면서 말이죠.
저자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위트 넘치는 문장 덕분에 '공부'라는 주제의 글을 읽고 있다는 사실도 잠시 있고, 실없이 웃으면서 책을 읽었습니다. 저자의 주장대로, 우리에게는 좀 더 학술적이고 질 높은 에세이가 필요하다는 걸 절감하면서 말이죠.
욕심 같아서는 퇴고의 퇴고를 거듭하며, 조금 더 정돈된 글을 쓰고 싶었으나 욕심만 부려서는 평생 가도 글을 마무리하지 못할 것을 알기에 부리나케 마무리합니다. 이 갈급을 이겨내는 게 저에게 꼭 필요하겠지만, 끝을 보아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좋은 책을 소개하기에는 부족한 글이지만, 그렇다고 소개드리는 책이 결코 부족하지 않다는 걸 말씀드리며 글을 마무리합니다. 모쪼록 학교 공부를 평생 해왔지만, 공부가 뭔지 모르겠다는 분들께 일독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