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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오늘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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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Nov 04. 2020

글이 밀렸으니 빠른 시일 내에 작성을 부탁드립니다

[오늘한편] 글 채무

써야할 글이 쌓여있습니다. 써놓고 보니 이상한 말이군요. '써야되는 글' 같은 건 사실 없죠. 글을 쓰든 말든 아무래도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문득 뜬금 없는 상상을 하나 해봅니다.


제가 하루라도 글을 쓰지 않는다면 세상이 망해버리는 거죠. 그런 경우라면 국가적 차원에서 감시당하면서 억지로 글을 써야할 지도 모르겠군요. 유쾌한 일은 아닐 것 같습니다.


저 혼자 알고 있는 비밀이라고 해도 사정이 다를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의무감 하나로 글을 쓰지 않을까요. 나 때문에 세상이 망하면 곤란하니. 아닌가, 확 망해버려도 좋으니 안 쓸 수도 있겠고.




여하간 브런치 서랍을 들여다보면, 쓰려고 마음 먹었다가 대충 몇 글자 휘갈겨 노혹 내팽개친 글의 잔해를 여럿 발견할 수 있습니다. 스크롤을 내리다보면 언제 이런 걸 썼나 싶죠.


지금이라도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글들도 있지만, 막상 쓰려고 하면 마음 속 유통기한이 상당히 지나있는 상태입니다. 뭘 써야 좋을지 막막한 기분만 듭니다.


몇달 전에 본 책이라든지, 영화는 이제와서 뭘 이야기하고 싶었는지 막연하게 떠오를 뿐이지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도 않습니다. 그렇게 또 '써야할', 아니 '써야했던' 글이 쌓여갑니다.




브런치 서랍은 물론, 메모 어딘가에 쓰고 싶은 글, 혹은 써야할 글이 점점 쌓여갑니다. 매일 조금씩 쓴다고 쳐도 일주일에 많아야 2편, 적으면 1편도 쓰지 못하니 도통 처리하지를 못합니다.


어디 초고를 쓴 후 수정을 하는 건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합니다. 누가 재촉하는 것도 아닌데 서둘러 글을 마치면 다음 글로 넘어갔다가, 또 잠시 글쓰기에 뜸했다가 다시 부랴부랴 쓰고.


어라, 불과 며칠 전에도 비슷한 글을 썼던 것 같은데. 쓰다 보면 결국 하던 말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써야할 글이라는 것도 결국 지금까지 써왔던 것과 그리 다를 것 같지도 않은데. 굳이 시간을 내어 써야할까 의문이 듭니다.



그럼에도 글을 쓴다면, 혹은 써야만 한다면 왜일지. 매번 그 이유를 고민하다가, 또 아무렴 어때. 그냥 글을 쓰고, 다시 또 고민하기를 반복합니다. 이쯤이면 일종의 관성이 아닐는지.


인생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고민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유 같은 걸 몰라도 어떻게든 인생은 살아지고, 글도 쓸 수 있습니다. 쓰다보면 알게 될 수도 있겠죠.


어쨌거나, 저쨌거나. 써야할 글이 쌓여있습니다. 이 글은 정작 써야할 글은 쓰지 않고 어쨌거나 글은 썼다며 핑계를 대기 위한 용도로 쓰인 글입니다.


그러니, 어서 빨리 써아할 글을 쓰라며 스스로를 다그쳐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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