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한편] 일기
오래간만에 진득하게 앉아 일기를 썼습니다. 그래 봐야 10분 남짓. 평소에는 그 절반도 걸리지 않습니다. 하루 24시간을 돌아보는데 고작해야 5분 안팎이라니. 얼마나 얄팍한 삶을 살고 있는 건지.
하물며 초등학생 때도 지금보다는 열심히 썼을 텐데. 특기할만한 사건이랄 게 없어서 그럴 수도 있겠군요. 아니면 고민할 틈 없이 단순하고 심플한 삶을 살고 있다는 반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전에 일기를 썼다 하면 그날 머릿속을 채운 고민과 별에 별 희한한 생각들을 모조리 풀어놓느라 페이지를 빼곡히 채우기 일쑤였으니까요. 하지만 길이만 길다 뿐이지, 결국 비슷비슷한 고민이었던 것도 같습니다.
그에 반해 요즘은 아주 간단합니다.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시간순으로 간단하게 늘어놓고 어김없이 오늘 하루도 잘살았다는 식으로 마무리하죠. 별로 할 말이 없더라구요. 오늘 하루도 잘 살았다. 끝.
오늘따라 일기가 길어졌다는 건 평소하고는 달랐다는 이야기겠지요. 따지고 보면 별로 다를 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런 날이 있지 않습니까.
나의 일상은 전혀 달라진 게 없는데, 갑작스레 인생은 무엇인지 묻게 되는 순간 말이죠. 지금처럼 살면 안 되는 게 아닌가 경각심이 불현 듯이 찾아오는.
그런 이야기들은 일기에는 쓸 수 있어도 밖에 내보이기는 다소 민망한 구석이 있습니다. 괜히 머릿속에서 돌아다니게 내버려뒀다간 두고두고 머리를 아프게만 할 뿐이고요.
혹시라도 그 편린이라도 남을까봐서 휘갈기듯이 적어두고, 두 번 다시 보지 않을 것처럼 서둘러 일기장을 덮습니다. 여전히, 오늘 하루도 잘 살았음.
누군가 읽는다는 걸 염두에 두는 것만으로도 일기와는 완전히 다른 마음으로 쓰게 됩니다. 그런 차원에서 일기는 일기대로, 또 이런 짧은 글은 짧은 글대로의 의미가 있죠.
일기와는 또 다르게, 한 번 더 필터를 거쳐서 오늘 있었던 일들과 생각을 객관적으로 바라봅니다. 역시 별 일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참 오랜만에 별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그 별스러운 일을 기록해둡니다.
지금부터는 딱히 글과는 상관 없는 이야기입니다. 언젠가부터 모바일 환경에서의 가독성을 고려해야하는 게 아닌가 싶어, 짧게 문단을 나눠버릇 하고 있습니다. 묘한 찝찝함이 남은 채로 글을 쓰게 되더군요. 너무 급작스럽게 문단을 나눠서 글의 호흡이 헝클어지는 건 아닌가 염려도 되고, 이렇게 짧게 문단을 나눠본 적이 지금까지 없다보니 아직까지도 익숙하지 않습니다. 정답이 정해진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므로, 일종의 시행착오라 여기고 이것저것 시도해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