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한편] 직장
올해 3월 23일, 저는 29년 인생에서 처음으로 직장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이전까지는 아르바이트 경험도 별로 없었던 터라, 사회생활은 처음이나 다름없었기에 걱정이 앞섰습니다.
들리는 말로는 입사 후로 3개월마다 고비가 찾아온다는데, 과연 나는 어떨까. 이런저런 생각들로 머릿속이 복잡했습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사실 별다른 감흥이 없기도 했습니다.
어떻게든 되겠지, 뭐. 에라 모르겠다. 그런 심정이었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고민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시간이 지났습니다. 어느덧 저는 입사 9개월 차를 맞이했습니다.
우려와는 달리, 업무를 배우느라 퇴사의 'ㅌ'도 떠올릴 새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덜컥 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나에게 맞고 맞지 않고를 판단하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정신 차리면 하루가 지나가고, 흘러 흘러 한 주가 끝나고 그렇게 또 한 달이 지나가기를 8번. 이제야 겨우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강은 알겠다는 느낌입니다. 여전히 시간은 쏜살 같이 지나가고 있습니다만.
마의 3-6-9 같은 건 없었습니다. 그런 결정적인 순간 대신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따금 '나'는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이 마음 저 깊숙한 곳에서 고개를 치켜들곤 했습니다.
아마도 '3-6-9'라는 건 상징적인 숫자일 뿐, 직장인이라면 누구라도 겪고 있을 번민들이 모종의 화학작용을 일으키며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결정적인 시기를 뜻하는 거라고 짐작해봅니다.
이 일이 정말 나에게 맞는 것일까, 같은 10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온 아주 원론적인 질문에서부터 갖가지 사건과 사고들에 대한 감상들,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스트레스와 불현듯 찾아오는 회의감 등등.
오만가지 상념들이 한데 뭉쳐서 각각의 형체를 도저히 알아볼 수 없을 즈음에서야 '이건 아닌 것 같다'는 한 마디 문장으로 대충 요약되어버리고 마는 게 아닐지.
모든 월급쟁이가 그런 순간을 맞이했을 때, '그래도 먹고살아야 하니까'라는 답을 내려놓고 묵묵히 직장을 다니거나, 혹은 '그래 뭔가 다른 걸 찾아보자'며 이직을 결심하는 게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저는 아직도 뭐가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장 제 삶에 적용되는 문제이지만, 뭘 어떻게 하고 싶은지 도저히 가닥이 서질 않습니다. 먹고사니즘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충동적으로 일을 그만둘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억지로 일을 계속 다니는 것도 할만한 짓은 아니니까요.
지금이 그렇다는 건 아닙니다. 다만 뭐라고 해야 할까요, 무언가에 갇힌 듯 답답한 느낌입니다. 맡게 된 일은 어떻게 해서든 잘 해내고 싶지만, 일부러 나서지는 않게 되는 그런 순간들이 주는 기묘한 찝찝함들.
나 자신이 느끼기에도 어딘가 못마땅한 구석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남의 인생을 대하듯이 책임감으로부터 한 발자국 떨어져서 수동적인 태도로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지, 자신을 의심해봅니다.
그럼 답은 한 가지입니다. 책임감을 가지고 살 것. 직장에서도, 직장이 아닌 곳에서도. 모든 선택과 행동에 책임을 가질 것. 지금이 불만족스러운 것도 나의 선택이니, 못마땅하다면 행동을 바꿔야겠죠.
그럼 다시 원점으로 돌아옵니다. 무엇부터 바꿔야 하나. 자기 자신부터 바꿔야겠죠. 답은 간단하지만, 행동이 어렵습니다. 월급-루팡으로 살고 싶지도 않고, 월급-쟁이도 싫지만 어떻게 하면 좋을는지. 직장인 9개월차를 맞이한 지금에서야 스스로를 돌이켜봅니다.
아마 앞으로도 평생토록 저를 괴롭힐 문제겠죠. 나에게 이 일이 맞는 걸까, 이 직장을 계속 다녀도 좋을까. 이 모든 질문은 끝끝내 '어떻게 살아야 할까'로까지 이어집니다.
그렇게까지 거창한 일인가 싶다가도, '맞아, 이건 내 인생 전체를 두고 봐야하는 거겠지'하고 내심 수긍하게 됩니다. 어떻게 살고 싶은가에 대해 명확한 답을 내릴 순 없겠지만 질문 자체를 손에서 놓치는 말아야겠죠.
자신이 욕망하는 바가 무엇인지, 나는 대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묻고 또 묻고. 2020년도 한 달 남짓 남았습니다. 남은 한 달 동안 만족스러운 답을 낼 수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