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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Mar 11. 2019

[하루에 짧은 글 한 편] 2019.3.10

5. 술


여러분은 언제 처음 술을 제대로 마셔보셨나요? 저는 대학교 1학년 새내기 배움터 때였습니다. 그전까지는 제 주량이 어떤지도 몰랐고, 술 자체를 멀리했었습니다. 명절날 미성년자에게도 친척이 술을 권하는 경우도 있다는데 저희 아버지께서 술을 잘하시는 편이 아니라 그런지 저에게도 술을 먹이려고 부득부득 우기시는 분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한 모금 정도 얻어먹을 기회가 몇 번 있었습니다. 그러나 입에 대자마자 퍼져나가는 그 씁쓸한 맛에 얼른 잔을 내려놓고 다시는 마시지 말자고 다짐했었습니다. 쓰기만 하고 아무 맛도 없는 걸 어른들은 도대체 왜 마시는 걸까 싶어 의구심만 들었습니다.


나중에야 술을 마시는 이유를 알았지요.


그러던 제가 지금은 에법 술을 즐기게 되었으니 입맛과 취향은 나이를 먹어가며 변한다는 걸 체감합니다. 여전히 한국 소주는 좋아하진 않습니다. 소주가 잘 받는 날도 있다고들 하는데, 1년에 한두 번이 될까 말까 하더군요. 단 맛도 분명히 느껴지긴 합니다만, 그 역한 알코올 냄새 때문에 입에 넣자마자 서둘러 넘겨버린 다음 물과 안주를 집어넣기 바쁘지요. 과일 소주가 처음 나왔을 때는 참말이지 놀랐습니다. 역하지도 않고 과일맛 때문에 훨씬 부담 없이 마실 수도 있었으니까요. 그래도 왜들 그렇게 소주를 찾는지 알 것 같습니다. 싼값에 빠르게 취할 수 있는 건 소주 정도니까요.


새내기 배움터를 비롯해서 굵직한 술자리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손님이 바로 소주 아니겠습니까. 저야 술을 마실 수는 있어서 곤란을 겪었던 적은 없지만, 술을 거의 마시지 못하는 분들은 그 순간이 몹시도 난감했을 거라고 추측해봅니다. 한국 사회가 술을 강권하는 걸로 유명하기도 하고,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는 곧 술자리를 의미하는 경우가 흔하다 보니 술을 싫어하시거나 마시지 않으시는 분들께 그 순간마다 입장을 피로해야한다는 건 그 자체로 곤란스러울겁니다.


요즘엔 억지로 술을 권하는 분위기가 덜해진 것 같아 다행입니다. 제 대학교 생활의 절반 가까이 할애했던 동아리는 술을 권하는 분이 없었지만 그게 특이한 분위기였다는 걸 꽤 나중에 체감했지요. 동아리에서 배운 술자리 분위기 때문에 저 역시 억지로 술을 권하지 않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강요하지 않는 게 당연한 거고, 자기가 마시고 싶을 때, 적당히 마셔야 기분 좋은 게 술이니까요. 분위기에 따라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게 좋을 때도 있지만, 언제나 상황과 자리에 따라서 달라지는 거 아니겠습니까.


다만 한 살 두 살 더 먹어가면서 술을 먹은 다음 날이 예전같지 않다는 걸 느낍니다. 20대 초반에는 침대를 털고 일어나기까지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는데 요즘은 하루 종일 피곤하고 그날 내내 침대에 누워있어야 겨우 회복이 되더군요. 오늘도 전날 먹은 술에 한참동안 힘들어 하다가 겨우 정신을 차려 이렇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술 그 자체에 대해 두루뭉술하게 이야기했지만 다음에는 주종을 좀 더 확실하게 해서 이야기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벌써 주말도 끝나가는데 혹시라도 술로 괴로운 순간을 보내셨다면 훌훌 터시고 월요일을 맞이할 수 있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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