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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Mar 10. 2019

[하루에 짧은 글 한 편] 2019.3.9

4. 잠


저는 정말로 잠이 많습니다. 28년 인생 중 의무 교육 기간에 해당하는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를 포함해 12년 중에서도 초등학교 6년과, 수능 때문에 억지로라도 잠을 이겨내야 했던 고등학교 3학년을 제외하곤 수업시간에 조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수업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가 쉬는 시간에는 책상에 엎드려 짧지만 잠을 청하곤 했지요. 오죽하면 진학을 담당했던 한국사 담당 선생님이 고등학교 2학년까지 썩은 동태 눈깔이던 녀석이 3학년이 되자 바뀌는 걸 보니까 신기하다고 말하셨던 게 기억납니다. 그러나 그 시기는 28년 인생에 찰나에 불과한 순간이었습니다. 대학교 1, 2학년 때도 밤새 깨어있다가 피로에 못이겨 잠들면 당믄라 수업이 빠진 적도 허다합니다. 군대에서도 수시로 곯아떨어지곤 해서, 행정병으로 일한 덕에 별 문제는 없었지만 부사관 한 분은 왜 그렇게 일과 중에 조냐고 핀잔을 주기도 하셨지요.


용사라도 버티기 힘든 유혹, 그 이름은 잠.


대한수면학회 홈페이지에 게시된 적정 수면시간에 대한 글을 참고하면 인간이 평균적으로 수면에 할애하는 시간은 전체 삶의 1/3 혹은 1/4이라고 합니다. 계산의 편의상 90세를 기준으로 했을 때, 대략 25년 혹은 30년 정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저 같은 경우는 잠을 위해서 그 이상의 시간을 할당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겁니다. 제가 잠자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한참 잠을 잤는데도 영 개운하지 않아서 괜스레 좀 더 잠을 청했다가 예상보다 오래 잤다가 일어나곤 했으니까요. 그러고 일어났을 때는 이미 저녁 나절이라 그 때의 참담함은 이루 설명할 수 없습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데 하루가 끝이 나있는 걸 상상하시면 될 겁니다.


오죽하면 잠 때문에 병원을 다녀볼까 고민도 했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저만큼 잠을 자는 사람은 없었거든요. 고작해야 자는 걸로 병원까지 가는 건 엄살이 심하다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보니 하루가 채 12시간도 남지 않고, 그러고도 원인을 알 수 없는 피로함에 하루 종일 시달려야 한다면 생각이 달라지실 겁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자도자도 피곤했고, 그러면서도 한편을노 자는 게 너무 좋았습니다. 공강시간에 틈만 나면 자취방으로 돌아와 잠을 청헀고, 강의가 끝나면 그대로 집으로 돌아와서 쓰러지듯이 침대에 누워 전등을 켜놓은 채로 다음 날을 맞이했던 적도 있습니다.


잠 때문인지 아니면 순전히 타고난 기질이 그런 탓인지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침대에만 누워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일도 잦았습니다. 하필이면 한참 대학교를 다니는 와중에 그랬던 지라, 출석은 물론이고 조별발표와 과제를 비롯해 어떻게든 처리야 하는 것들이 눈앞에 놓인 상황에서 몹시 난감했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정신건강의학과에 다니면서부터 어떻게든 학교를 다닐 순 있었습니다. 그 덕에 졸업도 할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플라시보 효과(?)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저에겐 놀라운 변화였습니다. 아직까지도 약을 계속해서 먹고 있는 건 그만큼 저에게 잠은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저 푸념을 늘어놓기 위해 잠에 대해서 이야기한 건 아닙니다. 아직까지도 제 삶에는 잠에 관련한 문제가 남아있습니다. 아마 평생동안 함께해야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생활패턴을 돌린다는 명목으로, 혹은 잠 그 자체를 줄여야한다는 이유에서 말이죠. 여러분들에게도 비슷한 문제가 있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아무런 걱정 없이 잠을 청하다가도 남아있는 인생 때문에 그러지 말자고 스스로를 타이르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각자의 문제로 고생하실 여러분에게 그저 건투를 기원합니다. 저도 이 늦은 시간에 잠들며 일상을 돌리기 위한 또 한 번의 노력에 임하겠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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