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준희 Dec 26. 2020

게임이라는 또 다른 세상

Netflix 오리지널 시리즈 <하이스코어>를 보고

게임과 나

저는 게임을 좋아합니다. '상당히'나' 그럭저럭' 같은 표현을 덧붙일까 하다가 왜 이렇게 조심스러운가 싶어 골똘히 고민해보았습니다. 좁디좁은 게임 취향과 자격지심 때문이 아닌가 싶더군요. 


게임 그 자체를 좋아하고 두루두루 알아보기보다는, 어떤 게임 하나만 주야장천 파고들고, 게임을 즐기는 방식도 게임 본연에서 찾기보다는 곁다리로 즐기는 콘텐츠를 내 방식에 맞게 즐기는 걸 훨씬 좋아했습니다.


그러니 게임을 좋아한다고 말하기에는 여러모로 겸연쩍은 구석이 있지만, 분명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게임을 좋아합니다.


게임과 인생

처음 게임을 접했던 게 언제인지 분명하지는 않습니다. 돌이켜보면 언제나 게임이 있었습니다. 초등학생 때, 집에 있던 검은색 콘솔에 게임 팩을 꽂아 열심히 플레이했던 게 가장 오래된 기억 중 하나입니다.


이제는 어렴풋한 인상 정도만 남아있지만, 방과 후에 친구들과 TV 앞에 모여 게임을 하던 건 정말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세 PC로 옮겨가긴 했지만 다 함께 몰려다니던 모습은 비슷했죠.


PC로 게임을 즐기게 되면서부터는 서랍에 게임 패키지 상자와 CD-ROM을 하나둘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는 그럴 필요도 없었습니다. 온라인 게임을 즐기기 위해서는 더 좋은 PC가 필요할 뿐이었으니까요.


콘솔게임에 대한 미련도 버리지 못해서, 중학교 때는 좋은 성적을 받을 테니 플레이스테이션2를 사달라고 부모님께 조르기도 했었습니다. 괜찮은 성적을 받아 품 안에 PS2를 안고 돌아왔을 때의 그 감격이란.


대학에 들어와서도 한참을 리그 오브 레전드에 빠져 살았고 군대를 전역하고 나서는 직접 게임 방송도 하고 지금은 아예 게임 회사를 다니게 되었으니, 제 인생에서 게임을 빼놓으면 뭔가 많이 허전해질 것 같습니다.


누군가의 인생을 바꿔놓기도 하고, 아예 인생 그 자체이기도 한 게임. 하지만 편견과 모멸의 역사를 가진 것 또한 게임입니다. 그 모든 것으로서의 '게임'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 것이 바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하이스코어'입니다.


이 이미지는 넷플릭스 오피셜 트레일러에서 제공하는 영상의 일부를 캡처한 이미지입니다.


Netflix 오리지널 <하이스코어> 소개

넷플릭스에서 제작된 오리지널 시리즈 중 '하이스코어'는 6화에 걸쳐 게임에 대한 내용을 소개하고 있지요. 게임의 시작에서부터, 다양한 발전사를 두루 다루고 있습니다.


게임의 현재나 미래까지는 다루고 있지 않은데 게임의 변천은 현재 진행형이니 영상에서 다루기 힘들었을 테고 더불어 그 모든 내용을 6화 안에 담아내기도 분량 상의 문제로 불가능했을 거라 추측해봅니다.


지금 제공된 분량인 6화만으로는 게임의 역사를 돌이켜보는 것만으로도 벅차다는 인상을 받았으니, 게임에 대해 '모든 걸' 소개하는 영상을 만들었다면 족히 10화 이상의 분량이 나왔을 겁니다.


추후 후속 시리즈가 제작될 예정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6화라는 분량 자체가 '하이스코어'가 추구한 방향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바로 모든 걸 말하기보다 게임의 여명기에 대해 다양하게 다루 어보는 것.



그럼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저는 '하이스코어' 자체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다른 이야기들을 함께 해보고 싶습니다. 영상의 내용에 대해서는 게임에 대해 더 잘 알고 계시는 분들이 자세히 분석해주셨을 겁니다.


게임의 역사를 바꾸어놓은 역사적 사건과 인간들의 사연에 대해서라면 영상에서 워낙 재미있게 설명해주고 싶으니 영상을 직접 보시는 게 훨씬 낫죠.


여기서 이야기하고 싶은 건 바로 영상물로서 넷플릭스 오리지널이 가지는 변별점입니다.


youtube라는 파편

요즘은 궁금한 걸 찾아볼 때, Youtube로 검색을 한다고 하죠. 이미 그렇게 되었다고 합니다. 저 역시 구글이나 네이버 같은 검색엔진을 선호하지만, 시각적인 설명이 필요할 땐 youtube를 쓰게 되더군요.


그만큼 youtube에는 거의 모든 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담은 영상이 충분히 제공되고 있습니다. 게임도 마찬가지입니다. 열정과 재능을 지닌 많은 분들께서 게임 관련 영상을 올려주고 계시죠.


그럼에도 오리지널 시리즈 같은 작품을 봤을 때, youtube의 영상들로는 충족되지 않던 무언가가 채워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단순히 '잘 만들어졌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바로 '전체를 조망하는 감각'을 느끼게 됩니다. '하이스코어'와 같은 영상은 파편 같은 지식들을 그러모아서 하나의 전체로 바라보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하이스코어'에서 이를 가능하게 하는 특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기획부터 제작까지 '완성'을 염두에 둔 영상물이라는 점입니다.


전체를 조망하는 힘

youtube에 올라오는 영상들은 대다수가 개인 제작이고, 집단 창작이라고 하더라도 '파편을 짜깁기했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애초에 그럴 용도가 아니었던 영상들을 이어 붙여서 한 편의 영상을 만들어야 하니 별 수 없는 부분입니다만, '한 편으로서 완성된 영상물'이라는 인상을 받기 어렵죠.


그럼 이것이 특별히 문제가 되냐고 하면 냉정히 말해 그렇지도 않습니다. 짜깁기를 아주 기가 막히게 하면 한 편의 영상물로서 손색이 없을 테니까요. 그렇다고 문제가 없어지는 건 아닙니다.


Youtbue에 올라오는 영상은 한 편 한 편이 완결되어야 합니다. 이는 한 편의 영상 안에 모든 걸 설명하는 구조를 취해야 한다는 소리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한 편, 그것도 길어봐야 15분 내지는 20분짜리 영상에서 모든 내용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까요?


영상이 지엽적이고 파편화될 수밖에 없는 거죠. 물론 그런 한계를 여러 편의 영상을 만들어 극복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youtube라는 영상 특성상 그 전체 영상을 하나의 재생목록으로 묶는다 하더라도 통일된 전체로 이어 보기는 어렵습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은 이런 문제에서 조금 더 자유롭죠. 분량이 훨씬 길고, 애초에 보여주고자 목적한 내용을 충분히 담아내는 게 가능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youtube에 올라오는 다른 게임 영상들과는 다른 위치를 점하게 됩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두 번째는 '기획'의 영역입니다. youtube도 당연히 기획이 있습니다. 한 편의 영상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크리에이터 분들이 오늘도 골머리를 앓고 계실 겁니다. 하지만 그 기획은 다분히 '한 편의 영상'에 머물게 됩니다. 그도 그럴 게 대하서사시를 만들려다가는 업로드 주기를 놓칠 게 뻔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한 편 한 편은 퀄리티가 높은 영상일지라도 그 높은 퀄리티의 영상들 각각이 '하나의 지식 구조'를 이루기는 어렵습니다. 여러 지식과 사건들을 정리하는 것과 이 정리된 것들을 다시 한번 정리하여 하나의 '구조'로 만드는 건 전혀 다른 종류의 일입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이라고 6편이 어떤 완결된 구조를 지닌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주제의식은 일관됩니다. 게임을 만든 사람들, 그리고 게임을 바꾸어놓은 사람들. 그리고 다시 한번 게임을 바꾸어놓은 사람들. '사람' 그리고 '게임'


게임의 시작부터 발전까지, 어떤 요서들이 서로 상호작용을 일으키면서 발전해왔는지를 역사적인 흐름을 되짚어 재배치하고, 때로는 그것들이 전혀 다른 시간대에서 각자의 고유한 방식으로 전개되어온 양상을 공시적으로 다루면서 개별적으로 다루기도 합니다.


그 사이사이에 '사람'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습니다. 게임이 단순한 오락거리가 아니라 '나답게' 있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세계로서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을 통하여 게임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해보게끔 만들죠.


Youtube 영상들도 물론 이 모든 고민을 담아낼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어렵기는 할 겁니다. '하이스코어'가 하고 많은 Youtube 속 영상들과는 다를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하다면 너무나 당연한 소리지만 '하나의 구조로서 지식을 파악하는 일'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유튜브가 아무리 득세하고 짧은 영상의 시대가 왔다고 한들 '책'이나 완성된 형태의 영상물이 완전히 죽어버리는 건 곤란하고 그럴 수도 없을 겁니다.


게임의 현재는?

여하간 '하이스코어'는 게임이라는 것이 있기까지의 역사를 돌아보며, '게임'이 게이머, 나아가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갈무리해내는 데에 훌륭히 성공해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지금의 게임과 앞으로의 게임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들죠.


지금의 게임은 어떤가요? 상업적인 성공을 하고 싶었던 여명기의 몇몇 개발자들과 마찬가지로, 비슷비슷한 방식의 플레이 스타일, 경쟁 심리를 자극하고 흡사 도박과도 같은 구조를 지닌 과금 모델 등 우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요소들로 뒤범벅된 '게임 같지 않은 게임'들 뿐인 것처럼 보입니다.


사실이기도 할 겁니다. 그리고 게임이 '그렇게' 변해온 이유와 과정을 설명하자면 또 다른 오리지널 시리즈를 만드는 정도의 노력이 필요하겠죠. 그렇지만 그 과정을 추동한 인간, 당사자인 우리들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과정도 얼추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여전히 게임에서 구원받고, 더 나은 게임을 만들려고 노력하기도 하며 실제로 그 과정에서 지금껏 보지 못했던 아주 멋진 게임이 탄생하기도 할 겁니다. 미래의 게임이 어떨지는 솔직히 저로서는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아마도 증강현실이나 가상현실이 활용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볼 뿐이죠.


끝으로

한 가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지금의 게임이 '게임답지' 않다고 말하려면 게임이란 도대체 무엇이고 이전까지 게임은 어땠는지 알아야 한다는 거죠. '하이스코어'에 따르자면 어느 시절이든 '게임답지' 않다고 욕먹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게임다운 게임'을 만드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저마다가 생각하는 게임이 다르다는 식의 두루뭉술한 말로 끝내고 싶지는 않습니다. 모든 일들이 그렇듯이 우리들 각자가 생각하는 게임이 다르긴 다를 겁니다. 하지만 콘솔로 하든, PC로 하든, 모바일로 하든, 매체가 무엇이 되었건 게임은 우리가 기대하지 않았던 경험을 하게 만드는, 가슴 떨리는 일어야 하지 않을까요.


적어도 게이머로서 제가 게임을 할 때는 그런 경험이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모르거나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장르의 게임이라고 해도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아주 가슴 떨리고 즐거운 일이라는 건 잘 알고 있죠.


뭐가 되었든 게임은 즐거운 일이어야 하고, 지금의 게임이 게임답지 않다면 그건 이제는 별로 '즐거운 일'이 아니게 되어서인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분명 누군가는 더 멋진 게임을 내놓을 겁니다. '하이스코어'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말이죠. 이번 주말에 넷플릭스 오리지널 '하이스코어' 정주행은 어떠실지?

            

작가의 이전글 돈이 안 돼도, 오늘도 글쓰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