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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Dec 28. 2020

시간의 끝자락에 서있을 때

[오늘한편] 연휴가 끝난 뒤

4일간의 휴가, 그리고.

크리스마스이브에 연차를 썼다. 24일부터 27일까지 무려 4일간의 휴가를 얻은 셈이다. 올해 3월에 취직한 이래로 추석 명절을 제외하고는 이렇게 쉬어본 게 처음이라 얼떨떨하기까지 했다.


이래도 되나 싶은 이상한 느낌. 쉬는 게 딱히 잘못도 아니고, 합법적인 휴식이지만 집에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는 중에도 나를 기다리고 있을 업무가 신경 쓰이는 게 사실이었다.


쉬는 동안에는 업무 같은 것일랑 잊어버리고 얌전히 쉬는 게 상책이라니까, 그러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먹을 걸 사러 밖에 나가는 걸 제외하고는 집에 얌전히 틀어박혀, 먹고, 자고, 놀았다.


이러니까 초등학생 일기 같군. 자세히 써본들 별반 달라지는 건 없다. 넷플릭스 아니면 TV로 영화를 보거나 맛있는 것도 먹고 책도 읽고 미루고 있던 글도 한 편 쓰고 -좀 더 쓰고 싶었지만 도저히 그러지 못했다. 왜? 귀찮으니까!-


그렇게 4일이 지났고, '아무것도 안 하고 쉰다'는 목적은 훌륭하게 성취해냈지만 이제는 휴일이 끝나는 게 두려울 지경이다. 길었던 방학이 끝나고 개강을 앞둔 대학생 시절로 돌아간 느낌, 아니, 그보다 더 정확하게 지금의 기분과 닮아있던 순간이 떠오른다.


달콤했던 휴가가 끝난 후 복귀를 앞둔 군대 시절에 좀 더 가까우려나. 딱 그런 기분이다. 음, 그때랑은 비교도 할 수 없이 사정이 괜찮으니 이 표현도 좀 엄살이 좀 심하군.


휴가가 지나간 자리.

여하간 이 이상한 기분의 정체가 대체 뭘까 고민을 하다가 '시간의 무게'라고 여기기로 했다. 그도 그럴 게 지난 4일을 돌이켜보면 나는 정말 아무 걱정 없이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렇게 무자비하게 흘려보낸 시간의 질량이 이제사 느껴지는 거다.


머릿속도 아주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이런, 오늘 하루가 벌써 끝났잖아. 상관없지, 뭐. 내일은 좀 더 생산적으로 지내면 되니까." 이것도 좀 웃기다. 휴가 때 뭘 더 어떻게 '생산적'으로 지낸단 말인가? 그래서 지금의 이 느낌은 애꿎게 희생된 시간에 대한 죄책감이기도 하다.


푹 쉬면 그걸로 충분한 것을. 나는 알차게 보내야 한다고 꾸짖어오는 내 안의 목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평정을 유지하려 했다. 24일, 25일 그리고 26일. 마침내 27일. 도합 96시간.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시간 핑계로 하지 못했던 걸 얼마든지 해볼 수 있었을 시간들.


4일이 전부 지나간 지금, 그 덜컥 그 무게가 느껴졌다. 세상에나, 4일이 끝나버렸다. 아주 자유롭게 보낼 수 있었던 4일이!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항상 이런 식이었다. 방학이나 휴가, 평소보다 길게 이어지는 휴일 등 뭔가 공짜로 주어진 것 같은 시간을 앞두고 있으면, 주어진 시간을 충실히 보내야겠다고. 내놓고 말하지는 않아도 은근한 기대감에 부풀어 아주 막연하게 '알찬 하루'를 상상하고는 했다.


이 완벽하기 그지없는 계획의 맹점은, 낙관으로만 가득 찬 탓에 현실의 갖은 변수가 고려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자신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계획을 도대체 어떻게 실행한단 말인가? 그러니 항상 만족에 젖어있다가, 끝이 다가오고 나서야 화들짝 놀라는 거다. 도대체 내 시간이 어디 간 거지?


그렇다고 계획이 필요하다느니 자기 계발에 가까운 이야기를 하는 건 마뜩지 않다. 이렇게 휴일을 보낸 건 나의 선택이고, 그로 인한 결과를 불평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정말로 단 1%로라도 후회한다면 도대체 나는 왜 후회할 짓거리를 질리지도 않고 반복하는 것일지 궁금할 따름이다.


인간이 원래 그런 식으로 생겨먹어서라는 답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굳이 휴일마저 *생산적으로* 보낼 필요도 없는데, 괜한 죄책감에 시달리는 척하며 마음의 짐을 덜어내는 것일지도 모르고. 미사여구를 달 필요도 없다. 나는 지금 나로 인해서 덧없이 흘러가고만 시간에 대해서 가책을 느끼는 중이다. 아니, 이것도 지나친 상상이다.


시간의 무게감

어디 휴일만 그런 것 같은가? 업무에 치여서 하루하루 숨 가쁘게 지내다 달력을 들여다보면 대체 언제 시간이 이렇게 지나갔는지 놀랄 때가 있다. 그러면 문득 또 지금과 비슷한 감정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며 가슴 한 편을 스산하게 만든다. 이래도 되나 이렇게 시간이 지나가버려도 되는 건가.


나는 별로 한 게 없는데. 아니, 많은 걸 했다. 열심히 직장을 다녔으며, 운동도 했고, 틈틈이 책도 읽고 글도 쓰고 뭐라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이 너무나 하찮게 보인다. 이제 와서 도저히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지니까, 내가 한 선택이 실제로는 어느 정도의 가치를 지녔든 지나간 시간에 비하면 너절하게 보이는 것일 뿐이다.


쓰고 난 후의 돈이 쓰기 전의 돈보다 더 값어치 있게 느껴지는가 보다. 종종 시간을 돈에 빗대어 표현하기도 하니까 얼추 그런 감각이 아닐까. 심리학 용어를 찾아보면 이런 느낌을 더 멋들어지고 적확하게 설명해줄 단어가 있을 듯한데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 요는 나만 그런 건 아닐 거라는 것.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지나간 것을 더 아까워한다는 거다.


그러니 이 기분 나쁜? 멜랑콜리한 기분의 정체는 월요병이거나 휴일병 뭐 그렇게 이름 붙일 수도 있겠고, 더욱 정확하게는 직장인의 푸념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래, 이제는 받아들여야겠다. 휴일이 끝났다. 뭐, 2020년도 끝나가는 마당에 휴일 좀 끝나면 어떤가.


바이바이 2020년

아직 2020년을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데 벌써 12월은 채 1주일이 남지 않았다. 서른을 앞둔 상황에서도 여전히 그게 실감이 나지 않는데 2020년이 끝난다는 걸 실감하기는 오죽 어렵겠는가. 아마 2021년이 되고서도 당분간은 일기를 쓸때 별 생각없이 2020년이라고 먼저 썼다가, 투덜거리며 고쳐쓸 나의 모습이 선하다.


그러니 먼저 작별인사를 해두려고 한다. 그러면 조금이라도 더 익숙해져있겠지. 휴일이 끝났다고 푸념으로 운을 띄워 놓고는 송년 인사로 마무리하고 나니 그 간극에 글을 쓰는 나조차도 이게 뭔가 싶다.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도저히 논리적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이상한 기분이 드는 날. 그런 날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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