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을 쓰고 싶다
좋은 글을 볼 때마다 나도 이렇게 좋은 글을 쓰고 싶다고 마음을 먹는다.
요즈음에는 거의 비문학만 읽었다. 물론 읽는 동안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기도 하고, 배우는 점들이 많지만 '참 좋다'라고 감탄하지는 않게 된다.
1월에 읽었던 박완서 소설가의 에세이 선집 <모래알만한 진실이라도>를 읽은 후에는 그냥 다 그랬다. 물론 그동안 읽은 책들도 배울 점이 있었다. 다만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은 좀처럼 들지 않았다. 그런 글들은 어딘가 궤가 다르다고 해야 하나.
그러다 뭔가 '좋은 글'을 읽고 싶어서, 구독하고 있던 전자책 애플리케이션을 뒤적거리다가 허지웅 씨가 쓴 <살고 싶다는 농담>을 발견했다. 언젠가 읽으려고 다운로드까지 해뒀는지 이미 나의 서재에 들어가 있었다. 기왕 이렇게 됐으니 어디 읽어볼까 싶었다. 그리고 읽고 있는데 저절로 한 마디가 떠올랐다. 아,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
좋은 글은 단순하다. 글을 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진솔하게 드러난다. 글이 매우 사려 깊어서 읽는 사람을 배려하는 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을 배려하려고 너무 애쓰지 않는다. 누군가 오해할까 지나치게 조심스러워하는 티가 나지 않는다고 해야 하나. 물론 이 한 문장에 얼마나 고민스러웠을지 나로서는 알 턱이 없지만 최소한 이 한 문장과 문단, 그리고 한 편의 글을 쓰기 위해 무언가 억지로 지어내지 않았으리라 짐작하게 된다.
<살고 싶다는 농담>을 읽은 내내 이렇게 잘 쓰인 글은 참 오랜만이라 감탄했다. 그리고 나도 이렇게 좋은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러나 문득, '좋은 글'이란 쓰려고 마음먹는다고 해서 쓰이는 게 아니라는 생각에 미쳤다. 글쓰기만큼 투명하게 그 사람을 드러내는 게 없다. 꾸미면 꾸민 만큼, 꾸몄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래서 너무 꾸민 문장은 이 사람이 대체 뭘 숨기고 싶어 하는지 궁금함이 들 지경이다. 비단 멀끔하게 쓰인 글이라고 해서 곧장 '좋은 글'이라고 할 수도 없다. 오히려 지적인 허영이나 불쾌한 기분이 들게 하는 글도 있다. 그런 글들은 제아무리 잘 쓰였다고 해도 두 번 읽고 싶지 않다.
결국 글쓰기란 사람을 드러내는 일이다. 그렇기에 글은 거울이다. 못쓴 글이든 잘 쓴 글이든 글을 쓴 사람의 태도가 드러나서, 한 편의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에 대해서 조금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좋은 글은 좋은 사람에게서만 나온다. 그리고 이 '좋다'라는 것은 어떤 한 가지로 정의하기 어렵지만 반성하는 태도가 느껴지는 글들은 대체로 좋은 글이었다.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일은 누구에게나 어렵다. 그리고 그 반성이 진솔하기란 더더욱 어렵다. 좋은 글은 이 어려운 일들을 거뜬히 해낸다.
부끄러웠던 기억과 마주할 때 누구든 자기 합리화의 욕망에 시달린다. 부끄러운만큼 조금이라도 아름답게 꾸미고 싶다. 그러나 좋은 글은 그 욕망에 시달렸던 자신도 드러내 보인다. 그리고 이 한 번의 글에서 반성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앞으로의 삶 속에서도 부단히 노력해나갈 것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철저히 기분 탓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느낌을 준다는 것만으로도 참 대단한 글이 아닐까.
그래서 글을 읽고 나면 나도 이렇게 살아야지, 하고 함께 반성하게 된다. 누군가의 반성을 보면서 나 자신도 그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자고 다짐하게 한다. 물론 거저 얻어진 반성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이런 글을 쓸 수 있게끔 나도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싶다.
나는 어떤 글을 써왔을까. 잠깐 떠올려보면 낯간지러운 글들 뿐인 것 같다. 그래서 예전에는 인터넷에 글을 썼다가 지우기를 그렇게 반복해왔나 보다. 지금이라고 해서 부끄럽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냥 둔다.
나도 좋은 글을 쓰고 싶다. 그러자면 좋은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할 것 같다. 치열하게 반성하는 그런 사람이.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