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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Aug 28. 2021

가해와 피해의 딜레마

넷플릭스 오리지널 <D.P>를 보고

요사이, 넷플릭스를 들여다봐도 시큰둥했다. 그렇게나 볼 게 많은데, 볼 게 없다는 이 괴상한 모순. 그러다 공개 예정 콘텐츠에서 <D.P>라는 이름을 봤을 때, 오랜만에 기대감을 가지게 되었다. 원작 웹툰이 연재 중이던 때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도 있었고, 드라마화만 잘한다면 괜찮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고 까먹고 있었는데, 오늘 새벽, 공개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개인적인 일로 울적하기도 하고 맥주 한 캔을 옆에 두고 1화나 보고 잠들까 하다가, 홀린 듯이 정주행을 시작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지금 이 시간. 말도 못 할 먹먹함에 천장을 한참이나 쳐다보다가, 뭐라도 쓰기로 했다.


출처 - 넷플릭스 트위터 공식 계정


군대, 거의 모든 남자들의 악몽.


군대를 호시절로 기억하는 남자는 없을 것이다. 아니,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다. 나이깨나 드신 분이라면, 요즘 군대가 군대냐고 한 소리할 것이고 실제로 윗세대가 군 복무를 했던 당시의 풍속을 감안하면 지금 군대는 군대라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악폐습이라는 단어 하나로는 차마 담아낼 수 없는 끔찍한 일들이 벌어졌던 시절을, 뭘 자랑이라고 그렇게들 이야기하는지 속내는 차마 모르겠지만, 여하튼, 나 스스로 생각해도 나는 그리 나쁘지 않은 시절에 군대를 다녀왔다고 생각한다. 폭력도 폭언도 딱히 없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군대는 나에게 있어 유쾌하지 않은 기억이다. 뭐, 그것도 다 경험이라고 칠 수도 있겠지만 군대의 분위기를 잠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진절머리가 난다. 도대체 왜 그곳에서는, 그 모든 게 '당연하다는 듯'이 돌아갈까?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 당연해지는 곳, 군대.

대한민국 국민, 남자라면 병역의 의무를 져야 한다. 선택할 수 없다. 태어나는 것을 선택할 수 없듯이, 국적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군대에 가게 되었는데, 그곳은 너무도 당연하게 복종을 강요한다. 쉽사리 납득할 수 없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인지라,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상급자의 명령에 하급자는 복종해야 한다. 제아무리 그 내용이 부조리하더라도, 상급자의 행실을 문제 삼지 못한다. 오히려 복종하지 않은 하급자의 잘못이다. 그것도 참지 못하냐고. 상명하복의 위계질서가 무서운 점은 이윽고 해서는 안 되는 것조차 '해야만 하는 것' 그리고 '해도 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명령에 따르지 않았다고 때리고, 욕설을 가하고 추행을 하고 괴롭힌다. 반항은 꿈도 꾸지 못한다. 사회라면 이해할 수 없지만 '군대'라는 폐쇄적인 집단에서는 상식적인 판단이 마비된다. 애초에 군대에서는 상식이란 통하지 않으니, 그에 따라가거나 따르지 못해서 곪아갈 뿐이다.


도망치는 자, 쫓는 자.

<D.P>에서도 저마다의 사정으로 군대에서 도망친 이들이 등장한다. 소위 탈영병이다. 그들의 행동은 군대의 시각에서 바라보자면 여지없이 잘못이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군인 신분으로 부대를 벗어난 것 그 자체만 문제다. 그래서 탈영병을 잡아들이는 이들도 있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D.P 조다.


이들이 어떻게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는가를 규명하고 잘못된 일을 바로잡는 게 목적이 아니다. 탈영 자체가 잘못이니 잡아들이는 것이 D.P의 임무다. 그러나 탈영병을 잡아들이기 위해서는 그 이유를 이해해야만 한다. 인간관계와 일거수일투족을 좇다 보면 필연적으로 '도망친 이유'에 다다르게 된다.


D.P라는 존재 자체의 모순이 거기에 놓여있다. 군대가 이들을 도망치게 만들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면서 이들을 다시 군대로 잡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군대에 있을 수 없어서 빠져나온 이를 부대로 돌려보낸다고 무엇이 해결되겠는가? 현실은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는데. 드라마는 그 모순이 낳은 비극을 담아낸다.


가해와 피해의 딜레마

한때 '참으면 윤 일병, 터지면 임 병장'이라는 말이 있었다. 군에 대한 문제를 이보다 극명하게 나타낸 말은 또 없을 것이다. <D.P>가 보여주는 현실도 이와 마찬가지다. 참다가 참다가 도망쳤을 뿐인데, 그것이 잘못이 된다. 급기야 터졌을 때는 터진 것 자체가 문제가 된다.


그 원인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게 '군대'니까. 그렇게 구타와 폭력은 묵인된다. 가해자들은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는 말로 변명한다. 물론 현실은 복잡해서 피해자와 가해자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 순간이 오기 마련이다. 드라마 역시 가해와 피해의 딜레마가 발생하는 순간까지 밀어붙인다.


피해자는 어느새 가해자가 되어있다.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그 과정들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진짜 가해자는 이 사태를 방관하고 있던 주변과 우리들 자신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잘잘못이 너무나 명백하게 보이는데도 우리는 쉽게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


뭐라도 하기 전에.

<D.P>의 결말에서도 군대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채 끝이 난다. 그리고 더 끔찍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군대가 바뀌지 않는다면 똑같은 참상은 언제고 벌어질 것이다. 요새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아닐 것이다. 어떤 일들은 소리소문 없이 묻히고 만다.


용납되어서는 안 될 것들이 군 내부의 기강이니 하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그러나 군대 내부에서는 중요한 명분에 의해 무마되고 만다. 그렇게 현실에 눈 돌린 사이,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을 최악의 시나리오는 우리를 찾아오고야 만다. 특히나 피해자 자신이 '뭐라도 하는' 순간에 이르러서는, 너무 늦다.


<D.P>는 단순히 군대의 부조리에 날것 그대로의 고발이 아닌, 폭력에 대한 이야기다. 폭력을 내버려두고 묵인한 순간 더 큰 문제를 낳을 뿐이다. 당사자가 어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반드시 이야기해야만 한다. 너무 늦기 전에, 무엇이라도 해야만 한다.


여담

새벽을 꼴딱 세워 <D.P>를 보고, 흥분을 참지 못해 글을 쓰다보니 횡설수설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좀 더 정리한 글을 쓰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또 몇 마디 쓰다가 덮어버릴 것 같아서 이렇게라도 글을 내보이기로 했다.


살다가 드라마를 보면서 이렇게 심장이 아플 정도로 몰입할 줄은 몰랐다. 정말, 6화를 보는 내내, 나 자신도 그 현장에 있는 것 같았다. 흡인력이라는 표현을 오랜만에 써본다. D.P조 두 사람의 캐릭터도 좋았고, 배우 분들의 연기도 발군이었다.


연출도 남다르더라. 이름이 익숙해서 보니, <뺑반>의 한준희 감독이었다. 뼁반도 좋게 봤었는데, 드라마도 정말 좋아서 놀랐다.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곘다.  어차피 많은 사람들이 볼 것 같지만,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보았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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