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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Sep 15. 2021

오락으로서의 영화

오타쿠에게 사랑은 어려워(2020)

줄거리 

영화는 모모세 나루미(타카하타 미츠키 분)가 이직한 회사에서 소꿉친구였던 야마자키 켄토(니후지 히로타카)를 만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나루미는 평범한 회사원을 연기하고 있지만 사실은 중증의 오타쿠로, 오타쿠라는 사실이 들켜 전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로 더욱더 오타쿠라는 것을 감추는데 혈안이 되었다.


필사적으로 평범한 직장인을 연기하는 나루미와는 반대로, 켄토는 게임 오타쿠라는 것을 숨기지도 않고 회사를 다니고 있는 상황. 그러던 중, 나루미는 뜻밖에도 켄토로부터 사귀자는 고백을 받게 되고 얼렁뚱땅 오타쿠 커플로서의 험난한 행보를 시작하게 되는데...




감상평

나름대로 재미있었다.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일본 영화 특유의 과장된 연출도 크게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았고, 영화 곳곳에 등장하는 <라라랜드>나 인도 영화 내지는 뮤지컬 영화를 보는 듯한, 장면들도 그럭저럭 볼만 했는데 아마 두 사람의 관계만으로 극을 이끌어 나가기에는 서사가 너무 빈약하다 보니, 부득이 이런 방식을 취한 게 아닌지 추측해본다. 아니면 감독이 라라랜드를 엄청 재미있게 봤다던지...


지금부터는 영화에 대한 감상평이라기보다는, 영화론에 대한 이야기에 더 가까운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 <오타쿠에게 사랑은 어려워(이하 오타코이)>는 아무리 좋게 말하더라도 잘 만들었다고 하기는 어렵다. 첫 문장부터 영화의 만듦새가 떨어진다고 이야기했으니 그 이유를 밝혀야 할 텐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는 것일지 막막한 심정이다.


영화 촬영과 제작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으니 결국 영화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그리고 말하고자 하는 바를 얼마나 잘 표현했는가 이 2가지 관점에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데, 이 영화는 말하고 싶은 것도 딱히 없어 보이고, 말하고 싶은 것이 없으니 자연스럽게 '얼마나 잘 표현헀는가'를 따져 물을 수도 없다.


물론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있다. 원작의 재미와 감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배우의 연기를 통해 현실 세계에 가상의 캐릭터를 육화 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모든 영화가 이와 마찬가지의 방식을 취하고 있으므로, 사실 만화를 원작으로 한 실사 영화라고 해서 더 특별히 보여주는 것은 없다.


'오타코이'는 그냥 점과 선으로 만들어진 만화를 영화라는 다른 형태로 만들어서 보여줄 뿐이다. 하필 영화여야 할 이유도 딱히 없었을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보여주는' 영화와, '말하는' 영화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하는데 그것을 구태여 한 마디로 표현하면 '메시지'일 것이다.


'보여주는' 영화들이 관객이 어떤 감정 -즐거움이나 공포 같은- 을 느낄만한 상황을 그때그때 적절히 던져놓는 것에 불과하다면, '말하는' 영화는 상황 자체는 물론, 상황이 이어지면서 만들어내는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궁극적으로 감독의 사유를 읽어내게 한다.


그러니까 즉각적으로 반응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반응하는 이유에 대해서 곱씹게 만든다고 해야 할까.


소위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며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다고 하는 배경에도 그런 류의 영화들이 '보여주는' 영화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오타코이' 역시 '보여주는' 영화다. 원작의 상황을 재미있게 잘 연출했고, 나 역시 이 영화의 그런 점이 좋은 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보여주는 영화'들이 그렇듯이, 그 이상의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지는 않는다. 최소한 원작이라도 잘 재현했어야 했던 것 같은데 괜한 뮤지컬에 분량을 할애하다 보니 너무 급하게 이야기가 마무리된 데다가 원작이 보여주고 싶었던 오타쿠들의 연애가 어려운 이유와 어려울 수밖에 없는 지점이 너무 얼렁뚱땅 묘사되어 난감할 따름이다.


여담

일본 웹과 한국 리뷰를 잠깐 서칭해본 결과, '원작을 전혀 살리지 못했다.'는 평과 '오타쿠를 너무 우스꽝스럽게 표현했다'는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더욱이 영화 곳곳에 삽입된 뮤지컬은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왕왕 있던데, 사실 정말 뜬금없기는 했다.


<라라 랜드> 수준의 완성도를 기대한 것도 아니지만, 배우들의 춤이나 노래도 실소를 자아낼 뿐이지 원작과도 너무 동떨어진 연출이긴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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