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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Sep 16. 2021

정확한 글의 아름다움

<정확한 사랑의 실험>을 읽고

출처 - Yes24


신형철 평론가가 이 글을 직접 볼 일은 없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알게 된다면 과장이 심하다고 이야기할 것 같다. 왜냐하면 지금부터 일방적으로 좋은 말만을 할 생각이기 때문이다. 예전이라면 훌륭한 글을 볼 때면 열등감에 빠져 한참을 헤어 나오지 못했지만, 지금은 경외감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고 어떻게 해야 이렇게 쓸 수 있을지 잠시 고민에 빠진다. 물론 그렇게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는 않는다. 잠깐 고민했다고 그렇게 좋은 문장과, 훌륭한 글을 쓸 수 있다면 아무도 고생하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나에게는 어떤 버릇이 있는데, 처음에는 이 버릇을 두고 '나쁜 버릇'이라고 이야기하려다, 좋은 버릇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쁜 버릇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어떤 버릇'이라고 고쳐 썼다. 좋은 글을 보면 무작정 그 분위기와 느낌을 따라 하려고 하는데, 막상 그렇게 쓰다 보면 도대체 원래의 내 스타일은 어떤 것이었는지 헷갈리고는 한다. 애초에 '나만의 스타일'이라고 할 문장이 없으니 그저 좋아 보이면 따라 하기 급급한 것이 아닌지 생각해본다.


여하간, 신형철 평론가의 <정확한 사랑의 실험>은 <슬픔을 배우는 슬픔>을 읽고 나서 또 다른 글을 읽고 싶어서 구매했다가, 한참을 읽지 않고 방 한 구석에 아무렇게나 쌓아두고 있었다. 그래도 언젠가 읽자고 계속 마음먹었던 건 <슬픔을 배우는 슬픔>을 읽을 때도 그랬지만, 그의 글은 내가 지향하는 '좋은 글'에 아주 닿아있는 글이었고, 그래서 어떻게 해야 이렇게 쓸 수 있을지, 그리고 내가 쓰지 못한다면 차라리 좋은 글을 한 편이라도 더 읽으면 좋겠다는 심정이었기 때문이다.


역시나 그의 글은 무척이나 좋았다. 한 문장 한 문장 무척 공들여 썼다는 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미려한 문장이어서가 아니라, 글 전체를 관통하는 사고의 흐름은 물론 이 문장을 정말 써도 되는 것일지 그런 망설임을 글쓴이 스스로 계속해서 되물은 끝에 비로소 내보일 수 있을만한 문장이어서 '공들였다'는 말이 전혀 부족하지 않아서다. 나는 과연 이렇게 글을 써본 적이 있을까.


물론 글을 쓰기 위해서 고민은 하지만 대개 그 문장을 밖으로 끄집어내기까지 채 몇 초의 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참 쉽게 쓰인 문장, 그리고 쉽게 쓰인 글이 아닌지 나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면 부끄러워진다. 그런 까닭에 나의 글은 지난 세월 동안 몇 번을 써도, 계속해서 부족한 느낌 투성이었던 게 아닐까. 나는 항상 내 글이 어린애의 글 같다고 여겼는데, 그건 생각을 거치지 않고 그대로 입 밖으로 튀어나와서였을 것이다.


종종 수다스러운 것보다 침묵을 미덕으로 여기는 이유도, 때때로 무언가에 대해 아무렇게나 말하는 것은 쉬울지 몰라도 말하지 않아야 할 것을 구분하고 실제로 말로 꺼내지 않는 일이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하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진실로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위해서는 또 얼마나 부단한 노력이 필요할까? 그 앎에 이르기까지의 노력, 그리고 다시 한번 그 앎을 밖으로 끄집어내기까지의 각오 같은 것이 문장에 담겨야만 비로소 좋은 글이 나오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나의 글은 여전히 부족한 것 투성이고, 그것을 고백해본들 무척이나 게으른 변명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조금이라도 더 쓰고, 좋은 글을 보면 무엇이 좋았는지 짧은 식견으로나마 정리해두는 게 전부다. 그래서 이번에도 두서없이 이 책에 대한 나만의 흔적을 남겨보려고 한다. 정확한 글은 이렇게나 아름답구나.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구나.


정작 책에 대해서는 별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는데, 이래서야 서평이라고 할 수도 없고 정말 엉뚱한 소리만 늘어놓은 글이라고 쏘아붙여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어떤 창작물들을 다뤘는지 이야기하는 것보다 창작물을 바라보는 관점과, 글을 대하는 글쓴이의 태도를 말하는 게 훨씬 더 나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는 일부라도 말했으니, 부족하나마 전해졌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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