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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Mar 30. 2021

지하철은 사랑을 싣고

[오늘한편]퇴근

언제나 퇴근은 즐거워

퇴근 시간 5분 전, 주변이 소란스럽습니다. 슬쩍 회사 곳곳을 곁눈질해보면 묘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시간이 되면 언제라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수 있도록 짐 정리와 마음의 준비를 모두 끝낸 동료 분들의 모습이 눈에 띕니다.


퇴근 시간 직전은 생각보다 조용합니다. 마치 폭풍전야라고 할까요. 마침내 다가온 그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정적은 사라지고 순식간에 부산스러워집니다. 오늘 하루도 고생했다는 인사와 함께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퇴근은 언제라도 즐거운 일이죠. 오늘 하루가 어떻게든 끝났다는 느낌과 함께 안도감이 찾아오고 어서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어 집니다. 하지만 아직 완벽히 집에 돌아간 것은 아닙니다. 퇴근길에는 나와 비슷한 모습을 한 직장인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저는 출퇴근 모두 지하철을 이용하다 보니, 버스를 이용하는 분들이 어떤 기분과 감정일지 상상이 잘 가지 않습니다. 둘 다 대중교통이니 별 차이는 없겠다 싶지만, 바깥 풍경을 볼 수 있느냐 없느냐, 혹은 승객들이 붐빌 때의 느낌 같은 세세한 차이가 있을 것 같습니다.


여하간 퇴근길의 직장인들이 어딘가 지쳐있는 듯한 분위기 속에서 멍하니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는 건 비슷할 것 같습니다. 저 역시 별로 재미있는 건 없지만 특별히 할 것도 없으니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아니면 지인들과 연락을 한다든가, 보고 싶었던 영상을 보기도 하겠죠. 종종 책을 읽는 분들도 있습니다.  


매일 같이 반복되는 퇴근길이지만, 사람에 따라 하루를 마무리하는 방식은 천차만별입니다. 스스로는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오늘 하루가 끝났다며 일종의 의식을 치르는 셈입니다. 그러다가 오늘 하루가 끝났다는 걸 불현듯이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하루를 마치는 지하철 방송

오늘이 그런 날이었습니다. 운동을 하러 가기 위해 지하철에 몸을 실었습니다. 붐비지는 않았지만, 앉아서 갈 수도 없는 평소와 같은 지하철이었지요. 음악을 듣는 것도 아닌데 괜히 이어폰을 꽂은 채로 아무런 감흥도 없이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렸습니다.


그러다 문득, 지하철 방송의 내용이 평소와는 조금 다르다는 걸 눈치챘습니다. 오늘 하루도 고생 많으셨고, 무슨 일이 있었든 훌훌 털어버리고 잘 마무리하라는, 아주 평범한 인사였습니다. 보통은 녹음된 목소리가 나오는 게 전부인데 가끔 이런 인사를 접하게 될 때면 괜스레 놀라고는 합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지금 타고 있는 이 지하철도 누군가 매일 같이 운전하지 않았더라면 탈 수 없어을 겁니다. 나의 삶은 누군가의 헌신과 희생으로 지탱되고 있다는 걸 새삼스럽게 곱씹어보게 됩니다. 얼마나 자주 우리의 일상을 채우고 있는 것들에 대해 무감각해지는지.


한마디 말의 따스함

그리고 평범한 말이지만, 지하철 승객들에게 건네는 기관사 분의 배려에도 감사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하루가 비로소 끝났습니다. 기관사 분이 아니었더라면 퇴근길이 더 고단했을 겁니다. 감사의 인사를 해야 하는 건 제 쪽이겠지만, 오히려 고생했다는 말을 들으니 몹시나 감사했습니다.


사실 별 거 아닌 말 한 마디고 퉁명스럽게 뭘 그런 것에 일일이 의미를 부여하냐고 반응할 수도 있습니다. 아마 예전의 저라도 시큰둥하게 넘겼을 겁니다. 그러나 아무 생각 없이 던진 한 마디 말로도 사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후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나의 말은 어떤 울림을 주고 있을까요. 감동까지는 아니더라도 하다못해 누군가에게 조금의 위안이나 힘이 되었더라면. 오히려 누군가를 힘든 게 한 건 아닐지 걱정도 듭니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라도 조금이라도 더 순간순간에 집중하며 살아야 할 텐데. 노력해야 할 따름입니다.


끝으로

어떤 책을 읽고부터는, 쉽사리 교훈이나 반성으로 글을 마무리하는 게 몹시 조심스러워졌습니다. 그도 그럴 게 그 책을 쓰신 분의 말에 상당 부분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인생에서 교훈과 반성은 그리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니니까요. 그러므로 너무도 쉽게 그럴싸한 말로 치닫는 글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오늘은 이런 뻔하디 뻔한 글을 쓴 것은, 별거 아니었던 하루를 뜻깊게 만들어 준 기관사 분에게 제 나름의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얼굴도 모르고 목소리만 들었을 뿐이지만, 그분 덕에 오늘 제 하루가 조금 더 의미 있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시간을 내어 이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도 감사를 전합니다. 오늘 하루도 고생하셨습니다. 내일은 좀 더 좋은 하루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저나, 당신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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